'세기와 더불어' 논란…이적표현물에서 출판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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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와 더불어' 논란…이적표현물에서 출판까지
  • 뉴스1
  • 승인 2021.05.01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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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30년 만에 반복된 '출판 사태'가 보여주는 남북한
최근 출간된 김일성 주석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표지.
최근 출간된 김일성 주석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표지.

한국 사회에 '돌'을 던지는 항일투쟁사 회고록이 출간됐다.

도서출판 민족사랑방은 지난달 1일 북한 김일성 주석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원전을 그대로 옮긴 8권 분량의 책을 발간했다. 출판사는 서평에서 "뒤늦게나마 우리나라에 소개할 수 있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며 "좌익 세력의 항일 무장투쟁도 항일 투쟁의 혁혁한 공적으로 인정하는 날이 오길 기원한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책의 출판이 민족의 고귀함을 일깨우고 남북 화해의 계기가 된다면 더 말할 나위가 없겠다"는 바람을 전했지만 그보단 논란이 더욱 거셌다. 역사 왜곡, 국가보안법 위반 등 논란 덩어리가 된 북한의 회고록은 한국과 어떻게 다르고 같을까.

◇ 김일성 유소년기부터…한국에 출판된 이적표현물, 북한의 '성경'

세기와 더불어는 1992년 4월15일 김 주석이 자신의 80번째 생일을 계기로 발표한 회고록이다. "나의 생애는 조선의 근대역사에서 민족수난의 비극이 가장 암담하게 중첩되던 1910년대로부터 시작되었다"라며 시작되는 긴 글은 1998년까지 총 8권이 발간됐다. 김 주석 사후에 나온 '계승본' 7~8권은 그의 전언이 담긴 형식으로 만들어졌다.

회고록에는 김 주석 입장에서 쓴 항일투쟁사가 기술됐다. 살던 지역이나 집, 가족과 친구, 함께 조직을 꾸려 활동을 한 동료들의 사진까지 다양한 자료가 실렸다. 북한에서 대외 선전을 담당하는 웹사이트들은 활자와 동영상, 음성으로 회고록을 제공한다. 영어·중국어·러시아어·일본어 번역본도 나와 있다. 김 주석의 '조국과 민족을 위해 바친 한생을 알려준다'는 이 책은 북한에선 성경과 다름없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적표현물이다. 대법원은 2011년 정부의 허가 없이 방북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정모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원심을 확정하면서 그가 소지한 '세기와 더불어'는 이적표현물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앞선 재판부는 이 책이 "북한에서 대외 선전용으로 발간한 김일성 회고록으로 선군정치를 미화하고 수령론에 입각하여 김일성 부자를 맹목적으로 찬양하며 북한 체제의 우월성을 선전하는 내용"이라고 봤고, 대법원도 이는 정당한 판단이라고 판시했다.

북한 김일성 주석(자료사진)
북한 김일성 주석(자료사진)

◇ 북한의 책, 한국과 뭐가 다를까…"김씨 3대 신격화 위한 사상적 무기"

북한에서 최고 지도자를 다룬 도서는 주체사상을 강화하고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로 내려오는 김씨 일가를 우상화하기 위한 사상 교육에 이용된다. 선전물인 만큼 객관성과는 거리가 있다. 인민을 위해 헌신했다는 그들의 일화를 부각하면서 대중의 충성심을 높인다.

김 주석도 회고록 머리말에서 자신의 지나온 한생은 인민을 하늘같이 여겼다고 자부하며 "인민을 믿고 인민에게 의거하면 천하를 얻고 백번 승리하며 인민을 멀리하고 그의 버림을 받게 되면 백번 패한다는 진리, 생과 투쟁의 교훈을 후세에 남기게 되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본받아야 할 삶의 방식을 제시하고 사회주의 사상을 따르라고 촉구하는 셈이다.

한 탈북민은 방송에서 북한 주민들은 김 주석의 회고록을 손으로 베끼면서 달달 외우고 그 내용으로 경연까지 치른다고 설명했다. 지도자 신격화를 위해 선택·미화·과장한 내용을 진리처럼 내재화시키는 과정이다. 이러한 북한의 세뇌는 작년 발간된 김정은 당 총비서를 다룬 도서 '위인과 강국시대'에서도 확인된다. 이 책은 지난 10년 집권 동안 김 총비서의 치적으로 내세울 내용을 취사 선택하고 그를 '위인'으로 내세운다.

북한에서 출판·보도물은 '사상적 무기'다. 신문·방송·통신 등 북한 언론매체는 "당의 수중에 장악된 예리한 사상적 무기"로 북한의 사상과 통치이념을 실현해 인민대중에 대한 사상교양자적 역할, 조직동원자의 역할, 문화교양자적 역할 등을 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우리 당의 출판·보도물은 온 사회의 김일성주의화에 이바지하는 위력한 사상적 무기"라고 규정한 바 있다. 출판신고제를 채택하고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는 우리와 가장 다른 부분이다.

◇ 지도자의 회고록 출간, '치적 집중·왜곡 논란'은 남북한 닮은꼴

지나온 삶의 궤적을 남기고자 하는 나라 지도자들의 마음은 남북한 공통으로 보인다.

3대에 걸쳐 권력이 세습된 북한에서 이들을 다룬 도서의 수는 상상 이상이다. 김 주석의 자료를 모아놓은 '김일성전집'은 100권으로 완간됐고, '김정일전집'은 최근 34권이 출판됐다.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김 주석처럼 자신의 회고록을 작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씨 3대 부자의 담화를 담은 노작모음집이나 일화 등을 쓴 정치도서도 꾸준히 나온다.

역대 한국 대통령의 회고록 표지 모음(자료사진).
역대 한국 대통령의 회고록 표지 모음(자료사진).

한국 역대 대통령들도 재임 뒤 회고록을 남겼다. 윤보선·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전 대통령 모두 7명이 회고록을 발간했다. 이 중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회고록은 사후에 나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섰던 2007년에 자서전을 출간했다.

한국 전 대통령들의 회고록은 대체로 치적 홍보에 집중했다는 부정적 평가를 받는다. 회고록을 억울함을 호소하며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쓰면서다. 발간 뒤 내용때문에 정치권이나 사회에 적지 않은 후폭풍이 밀려오기도 했다.

'사실 왜곡'으로 사회적인 논란을 빚은 대표적 사례로는 전 대통령 전두환씨가 발간한 전두환 회고록 1권 '혼돈의 시대'가 있다. 법원은 5.18 민주화 운동 등에 대한 왜곡된 서술을 한 전씨의 회고록에 대한 출판·배포를 금지해 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인 바 있다. 역사 왜곡, 사회적 논란 측면에서 나타나는 남북의 씁쓸한 닮은꼴이다.

◇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고발·수사…멀고도 가까운 거리

세기와 더불어는 국내 출간이 뒤늦게 확인된 다음 파장이 일었다. 보수단체의 고발장을 접수한 서울경찰청 안보수사대가 수사에 착수했고 지난 27일에는 시민단체 법치와자유민주주의연대(NPK) 등이 낸 김일성 회고록 판매·배포 금지 가처분 신청에 대한 첫 심문기일이 진행됐다. 교보문고 등 국내 서점은 판매를 중지했다.

그러나 파장의 정도는 과거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덜해 보인다.

지난 1994년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 뒤 한 출판사가 세기와 더불어를 국내출판하려고 했었을 때는 출판사와 인쇄소 두 곳이 압수수색을 받았고 출판사 대표가 구속됐다. 반면 이번 약 30년 만에 반복된 출판 사태는 사회가 변해온 만큼 양상이 달라졌다.

야당인 국민의 힘은 "대한민국 국민의 의식이 향상된 현시점에서는 국민에게 판단을 맡겨도 충분하다", "허구에 속아 넘어갈 국민 수준이 아니다"라며 회고록 출판을 허용하라는 태도를 취하기도 했다. 배척하며 시간이 지나는 동안 생각보다 가까워졌고, 그러나 여전히 먼 북한과의 거리를 보여주는 듯하다.(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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