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굴욕의 역사 생생히 전해…타산지석 삼아야

가슴 아프고 치욕적인 역사를 돌아켜보고 환기하는 것은 마음 저리고, 아쉽고, 서글픔이 밀려올 수 있다.

우리 역사에서 외세에 의한 백제·고구려 멸망, 고려말 몽골의 침입, 조선시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수모, 근대 일제의 지배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일본제국주의의 36년간 한반도 식민 통치는 '침략은 당했으나 정복당하지 않은' 반만년의 역사에 흠을 낸 시기로, 가장 잔혹한 지배와 가장 강렬한 항쟁이 충돌한 기간이기도 하다.

이 모두 자력부강에 대한 실행의지 퇴색과 주변국에 대한 방비 소홀, 내부의 분열과 나태 등이 겹쳐 발생한 국운 쇠락의 한스런 장면들로, 그러한 역사적 아픔들을 상기하는 것은 증오와 울분을 삼키는 과정을 뛰어넘어 해이해지고 갈라진 민의의 통합과 자성적 분발과 쇄신의 자양분으로 삼기 위함이다.

그런 면에서 일제강점기에 대한 굴욕의 역사를 철저히 기억하고 이에 대한 극복 의지가 북한미술 세계에서는 참으로 선명하고 인상깊게 새겨져 있다. 여기서는 일제 강점기의 미처 몰랐거나 잊혀졌던 역사적 불행의 사실들을 갤러리피코 정형렬 대표의 북한미술 큐레이션을 통해 반추하면서 국난 극복의 의지와 통합의 정신을 되살려 본다.

최동일 화가 '우키시마호 폭침사건' : 지옥의 참상, 그리고 운명의 카르마

최동일 '우키시마호 폭침사건', 150호, 2011년
최동일 '우키시마호 폭침사건', 150호, 2011년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항복한 직후인 24일, 조선인 피징용자를 태운 일본 해군 수송선 우키시마마루(浮島丸)호가 원인 모르는 폭발사고로 침몰했다. 당시 승선자는 1만명 가까이 되고 사망자는 1000여명에서 500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폭발 원인을 두고 일본이 강제징용 증거를 없애기 위해 꾸민 일이라는 주장과 미국이 설치한 기뢰에 의한 것이라는 설이 있으나 분명한 것은 일제의 만행에 따른 비극이라는 점이다. 

작품을 보면 쪼개진 배의 파편에 힘겹게 의지해 서로를 부둥켜 안고서 순식간에 저 멀리 떨어진 가족들을 목놓아 부르기도 하고, 물살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아기엄마의 손목을 부여잡고 필사적인 힘을 다해 끌어 당겨보기도 한다.

그러나 이미 물속에 잠긴 채 시체들이 둥둥 떠다니는 주위의 바다는 해전(海戰)의 장면처럼 난파를 당한 자들의 시한부 목숨을 재촉하고 있다. 짙은 녹청색의 바다는 이렇게 일본의 흉계에 못이겨 죽음의 바다로 변해갔다.

노예의 사슬을 끊고 만신창이가 된 몸을 추스르며 이루 다 형언할 수 없는 부푼 심정으로 꿈결같은 고국으로 향하다 몇 시간만 더 가면 닿을 조국땅에 결국 이르지 못했다. 그들은 항해중인 귀국선에서 난데없는 봉변을 당하면서 거의가 바다에 수장되는 참상의 비운을 겪었다. 

북한에서는 이 사건에 대해 영화를 제작하여 상영하기도 하고 몇 차례에 걸쳐 자체 진상조사를 실시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소수의 시민들이 나서서 위령제를 지낸 것으로 전해진다.

수많은 귀신을 정성으로 섬기는 일본인들은 억울한 죽임을 당한 수천 명의 영령들이 원귀가 되어 몹쓸 짓을 한 일본인들에게 앙갚음하리라는 두려움을 느껴본 적이 없단 말인가? 가끔은 일본에서 일어나는 지진과 쓰나미 피해가 인과응보의 벌이 아닌가 여겨지는 것은 지나친 상상일까?

윤건 화가 '지난날의 할아버지' : 괴롭지만 살아야만 한다는 절박함

윤건 '지난날의 할아버지', 100호, 2011년
윤건 '지난날의 할아버지', 100호, 2011년

윤건 작품의 배경은 산 속 탄광 주변인 것 같다. 인부들의 옷차림새와 산 속 주변이 온통 시커먼 검댕이 묻혀져 있다. 아버지는 이미 어디론가 끌려갔는지 보이지 않고 할아버지와 손자마저 붙들려 3대의 직계 가족이 모두 일제의 손아귀에 잡혀간 신세가 되었다. 

할아버지와 손자는 이를 악물고 버텨 생존해내야 한다는 절박한 일념으로 노예 노동을 수행하고 있다. 각기 한쪽 어깨에는 노끈을 메고 다른 손으로는 운송 수단인 손가마의 손잡이를 힘겹게 부여잡고 있다.

두 사람의 어깨에는 핏자국이 선연하다. 소년은 갈기갈기 찢어진 옷 사이에 피자국이 보이는 어깨에는 더 이상 밧줄을 걸쳐 메기가 고통스러웠는지 다른 어깨 위로 옮겨 둘러메고 있다. 

할아버지는 힘이 다해 가는 듯 눈을 감고 헤어진 옷 주위로 물들은 핏자국이 보이지 않는 같은 어깨 위에 통증이 덜한 목 부위로 밧줄을 끌어당겨 메고 내려가고 있다. 소년은 눈을 부릅뜨고 결연한 의지를 다지며 굳센 표정을 짓고 있다. 빗방울과 땀방울이 얼굴에 동시에 흘러내리고 있어 사실적인 생동 묘사의 압권을 느끼게 하고 있다.

실제 얼굴에 하얀 거머리가 꿈틀거리는 듯 섬뜩한 지경이다. 갈대와 들꽃만이 일제의 검은 마수가 아직 영향을 못 미치는 존재로 남아있는 듯 자신들의 고유한 본 색깔을 유지한 채, 두 사람이 질벅거리며 끌고가는 괴로운 행보에 위안을 줄 뿐이다. 

김원철 화가 '일제시대 인부모집' : 군수공장 중노동에 내몰린 어린이들

김원철 '일제시대 인부모집', 120호, 2010년
김원철 '일제시대 인부모집', 120호, 2010년

노역장에 끌려온 어린 인부들, 그리고 이들을 예의주시하며 위로 지나가고 있는 또 다른 두 사람이 보인다. 안경과 모자를 쓴 일본인과 그를 따라가는 일제의 친일파 시종 끄나풀의 감시의 눈길이 빗줄기 사이로 번뜩인다.

이 그림은 조선 화인데도 여백의 미가 없이 유화처럼 모든 부위를 색면으로 꽉 채웠다. 북한에서 사실주의 유화와 같이 지면에 여백 없이 색채 표현으로 모두 채우는 사실주의 조선화의 또하나의 주요한 흐름으로 정착된 사례이다. 

마치 우리 민족을 포위 압박하고 있는 답답한 현실을 숯칠을 하듯 거멓게 묘사하여 암흑의 시대적 환경으로 표현하려 했던 것처럼 보인다. 검정 바위산과 그 너머로 어두운 절벽을 배경으로 조선의 어린 소년들이 자신들의 몸을 지탱하지 못할 정도로 무거운 큰 바위를 노끈으로 동여멘다.

둘이서 힘에 부치는 듯 목 위로 걸쳐 메고 온몸으로 죽을 힘을 다하여 간신히 들어올린 후 나르기 직전인데, 걸음을 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작품 속의 배경은 군수시설을 건설하는 장소인 것 같다. 

거짓으로 인부를 모집하거나 강제 노역에 끌고와 짐승처럼 혹독하게 부리고 노임도 거의 주지 않았으면서 패전 직후에는 이들을 제 나라로 돌려보내지 않고, 나중에 이런 일에 대한 기밀을 누설할까 겁내 이들을 집단 사살하거나 한꺼번에 파묻어 생매장해 죽이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던 일제의 만행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고용필 화가 '위안부의 슬픈 역사' : 아비규환의 현장, 잊지 말아야 할 역사

고용필 '위안부의 슬픈 역사', 80호, 2001년
고용필 '위안부의 슬픈 역사', 80호, 2001년

북한 주제화의 두가지 주요 흐름인 항일의식과 반미주의 중에서 위 작품은 위안부와 관련된 항일의식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총화적인 작품으로서 가상의 실상에 대한 진한 여운을 남기고 있다.

흩날리는 눈보라 속에 조선의 가녀린 소녀들이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블랙홀 같은 어둠의 군용 트럭의 장막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내동이쳐진 할머니의 통곡과 아비규환의 울음바다 위에서 정처없이 쓸려가는 누나를 못가게 붙잡으려고 맨발로 뛰쳐나가는 어린 남동생의 절규는 탐욕스런 눈빛을 번득이는 일본군들의 악마적인 기세와 삼각 대칭축의 구도를 이루며 비대칭적인 일방적인 힘겨루기를 당하고 있다.

그리고 왼쪽에서는 정든 강아지의 충직한 저항의 울부짖음이 들려오며 반대편 저 멀리에서는 삽날을 치켜세운 할아버지의 핏발서린 항거가 양 날개처럼 펼쳐지며 사력을 다하는 몸부림이 전개되고 있다.

정신대 혹은 위안부라는 용어는 일제의 잔인무도한 만행을 교묘히 은폐시키고 본질을 흐리는 일본의 입장을 대변한 일본식 어휘가 아닐 수 없다.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에서 사용하는 ‘일본군 성노예’가 끔찍한 사태의 핵심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정확한 표현이라 할 것이다.

김태훈 기자 thk@korearepo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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