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묵 추상화 새 지평 열어…독보적 작품세계 평가
초기 색묘추상, 중기 수묵추상, 말기 색채추상으로 진화

북한이 최고로 자랑하는 불세출의 국보화가 정영만이 일본과 중국을 비롯하여 세계적인 추상화가로 추앙받고 있다. 그는 인생 후반부에 금강산의 수려한 장중미를 기백넘치게 단순화시켜 그려냄으로써 북한미술에 수묵 추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놓았고, 금강산을 더욱 빛내고 수호하는 호랑이 라는 뜻의 '금강범'이라고 불렸다.

1980년대 후반 한쪽 폐를 잃고 위궤양과 심장병 등으로 고통을 겪으며 화가로서의 활동 중지를 권유받는 시점부터 그의 수묵 산수 추상화가 시작된다.

아이러니하게도 북한에서 그의 그림 자체가 독보적으로 존귀하게 평가받았기에 그의 색다른 강렬한 추상화풍에도 그의 인기는 사후에도 지속적으로 절정을 유지하고 있다.

북한의 1세대 이후로 모든 화가 중에서 최고 화가 반열로 자리매김한 정영만의 작품세계는 시기별 특성이 담겨있다. 초기의 동일 계열 색조로 통일된 색묘 추상 작품부터 중기의 완전 수묵 추상화와 말기에 색채가 포인트로 가미된 부분 색채 추상화의  대표작들을 북한미술 전문가인 정형렬 피코갤러리 대표의 평론을 통해 감상해본다.

1984년 '집선봉의 여름' : 구상과 추상 사이…반추상의 채묵화풍

정영만 '집선봉의 여름', 132x49.5cm, 1984년
정영만 '집선봉의 여름', 132x49.5cm, 1984년

정영만 화가의 금강산 사랑은 구상화풍에서 추상화풍으로, 채색화에서 묵화로 변천을 하며 전개된다. 1970년대에는 화려한 구상 풍경의 디테일한 실경산수화가 두드러진다. 그런데 1980년대 중후반으로 접어들면서는 구상과 추상의 과도기의 경계를 타면서 추상풍의 간결함과 신비스러운 기상이 요소요소에 넘쳐흐른다.

이 작품을 보면 그렇다. 여름철의 시원함을 강조하려는 듯 전반적인 녹색 기조의 운해가 요동을 치며 넘실거리고 산맥들은 검정색의 굵고 힘에 넘치는 날카로운 선과 명암이 회색조의 바탕면과 색묘법의 조화를 이루어 색감의 무게감을 견고하게 안착시키고 있다.

왼쪽에 빼곡한 산맥들의 밀집과 돌출적인 부각은 오른쪽의 광활한 여백과 명징한 대칭을 이루며 화면의 극적인 분할을 꾀하고 있다. 또한 산맥들의 표면에 있는 왼편의 나무들은 평이한 구상풍의 나무들로 배치한 반면, 오른편과 정상의 나무들은 추상풍의 단순한 표식처럼 처리해 놓고 있어 그 내부에서도 다양한 대비를 꾸며 놓아 감상자 편의 시각에서도 단조로움을 회피시키려는 묘미를 안겨주고 있다.

그런데 조선미술박물관 도록에는 정영만의 산수화 중 1990년대의 추상화가 실리는 대신 1980년대 중반 반추상의 그림이 올라가 있다. 국가 출판부의 편집자 입장에서 중도성을 고민한 흔적이 엿보인다. 그의 개성을 살리면서도 지나친 파격의 추상화는 배제하여 교과서적인 스탠스를 유지하려는 나름 타협의 산물을 선보인 것 같다.

1994년 '금강산' : 추상 표현주의적 형세 파노라마…전형적이면서 변형적 

정영만 '금강산', 중기
정영만 '금강산', 중기

정영만 화가는 1990년대부터 추상풍의 시커먼 묵화로 과감한 변모를 시도하게 된다. 1980년대까지는 채색화, 1990년대 초중반에는 묵화로, 그리고 1990년대 후반에는 채색화풍이 일부 다시 살아나면서 묵화와 결합된 채묵화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이 작품의 경우 정영만 금강산도의 가장 전형적이고 대표적인 구도의 상징적 그림이다. 다만 가로와 세로 비례에 있어 세로의 길이가 상대적으로 길어서 그림의 형세와 각도에 다소 색다른 변형을 가한 특성을 지닌다.

키가 커서 마치 피사의 사탑처럼 머리를 치켜올리며 하늘을 향해 갈구하고 호소하는 것처럼 구름이 구렁이같이 산의 하단부를 휘감아 돌며 산의 허리 윗선과 정상의 위용을 유난히 돋보이는 형세다. 또한 산의 각도를 45도에서 좌측으로 좀더 틀어서 밝은 빛의 반사면의 폭을 줄이며 산의 키 높이와 첩첩산중의 깊이감을 좀더 강조하려는 듯 배치하였다.

정영만 화가는 자신의 말년에 이를수록 화가로서의 정체성을 최고조로 끌어올리며 자신의 죽음에 대비하여 예술혼을 더욱 불살랐다. 1990년대 초반부터 1990년대 후반까지 금강산 산운도(山雲圖), 즉 문인화를 즐겨그린 선비들이 먹붓으로 활달하게 그린 산맥 크로키의 전범(典範)을 완결시키고 집대성한 것을 그의 필생의 가장 중요한 업적과 보람으로 여긴 듯하다.

1998년 '금강산' : 현지 수요 맞게…'채색 가미' 채묵화 선보여

정영만 '금강산', 71x64 cm, 1998년
정영만 '금강산', 71x64 cm, 1998년

정영만 화가는 1938년생으로 1999년에 작고한다. 생존시 화가는 1995년과 1996년에 이어 1998년에 일본에서 열린 평화미술전람회에 참가했고, 80여점에 달하는 작품을 가지고 1998년에 4월 6일부터 12일까지 일본에서 개인전람회를 진행했다.

북한과 달리 일본에서는 채색주의 회화를 지향하고 선호했기 때문에 정영만 화가는 이러한 일본의 수요를 전시회에서 반영시켰다. 그는 이런 류의 채색이 겸비된 추상 채묵화를 만년에 즐겨 그렸다. 이 그림도 그의 만년에 일본 전람회에서 전시된 작품으로서 만수대창작사에서 판매된 작품이다.

대각선 구도의 역동적이고 불안정한 산맥에 V자 형의 균형을 이루는 반대편의 부분적인 대칭구도의 산세는 부채꼴 형태의 골짜기 형세를 창출하면서도 공간 확장감을 펼쳐주고 있다. 맞물려 있는 금강산맥들은 톱니처럼 연결된 거대한 철옹성 같이 견고하고 다이나믹하게 묘사되고 있고, 이 화면에서의 금강산은 초록빛 망토를 걸친 검정 복장의 나그네처럼 보인다.

날카롭고 거친 절벽과 거침없는 비탈진 산세의 활달함, 기하학적 구성의 속사포 같은 소묘력, 극명한 명암 대비의 돌출적인 입체 표현과 칼날 같은 윤곽면의 빛 반사 효과 등을 한결같이 체험하면서 우리는 여러 곳에 언급된 그에 대한 극찬의 언사들이 결코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어렴풋이 공감할 수 있다.

김태훈 기자 thk@korearepo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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