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王 일제강점 과제 해결 기대… 관방장관 '납북자 문제' 거론해 물거품
김여정 "북일 정상회담 우리 관심사 아냐…먼저 문 두드린 것은 일본"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조선중앙TV 갈무리)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조선중앙TV 갈무리)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26일 "조일 수뇌회담(북일 정상회담)은 우리에게 관심사가 아니다"라며 "일본과 그 어떤 접촉도 교섭도 외면하고 거부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북일 정상회담 가능성을 언급한 김 부부장이 하루 만에 태도를 바꾼 것은 일본 정부 당국자가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를 거론했기 때문이다.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관방장관은 전날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와 관련해 "납치 문제가 이미 해결됐다는 (북한 주장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라고 말했다.

이는 김 부부장이 전날  기시다 일본 총리가  '모종의 루트'로 정상회담을 제안한 사실을 공개하면서 "일본이 지금처럼 우리의 주권적 권리 행사에 간섭하려 들고 더 이상 해결할 것도, 알 재간도 없는 납치 문제에 의연 골몰한다면 수상의 구상이 인기 끌기에 불과하다는 평판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라며 기시다 총리의 결단을 거듭 촉구한 것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김 부부장은 지난달 15일 담화에서도 기시다 총리의 북일 정상회담 추진 의사에 화답하는 듯한 모양새로 납북자 문제를 거론하지 않아야 정상회담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낸 바 있다.

김 부부장은 이날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한 담화를 통해 하야시 관방장관의 전날 발언을 언급하며 "일본은 새로운 북일관계의 첫발을 내디딜 용기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김 부부장은 일본이 "해결될 수 없고 해결될 것도 없는 불가 극복의 문제들을 붙잡고 있다"라고 비난하면서 강경한 기조로 '대화 거부' 의사를 밝혔다.

◇ 기시다 총리의 북일 정상회담 추진은 일왕의 '특명'

김 부부장이 밝힌 기시다 총리의 모종의 경로를 통한 북일 정상회담 추진은 사실 일왕(日王)의 특명을 이행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일왕의 부친인 아키히토 일왕은 줄곧 일제강점기에 피해를 본 남북한에 사죄와 보상을 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디. 지난  1990년 5월 24일 노태우 대통령 국빈 방문시 궁중 만찬회에서는 "일본에 의해 초래된 불행한 시기에 귀국 분들이 겪은 괴로움을 생각할 때 저는 통석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특히 북한에 대한 일본과 아키히토 일왕 부자의 입장은 특별한 부분이 있다. 한국과는 박정희 정권 시절인 1965년 6월 한일기본조약을 통해 '청구권·경제협력에 관한 협정' 등 4개 협정안을 체결하면서 일제 강점기 책임과 관련해 한일관계가 상당 부분 정리됐다.

그러나 북한에 대해선 일제 강점기에 따른 책임 이행과 관련해 진행된 것이 없다. 일본의 사죄와 배상 문제 외에 일본이 2차 대전 수행을 위해 발행한 전시채권 상환 문제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북한은 일본의 전시채권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국가 중 하나이다. 

이는 일본이 1945년 8월 15일 공식적으로 항복을 발표할 당시를 전후해  남한과 북한에서 전혀 다른 상황이 벌어진 것과 관련있다.

남한에서는 일본이 항복한 이후 무려 23일이 지난 9월 9일에 미 군정이 본격화됐고, 그 공백 기간 일제총독부가 영향력을 유지하면서 일본인과 금융자산이 순조롭게 일본으로 옮겨갔다.

반면 북한에서는 소련이 1945년 8월 9일 참전을 선언하고 38도 이북의 일제 관동군을 섬멸한다는 목적으로 한반도에 진출했다. 소련군과 김일성 부대는 곧바로 38도선을 봉쇄했고, 일본인과 기관들은 8월 15일 패망 후 북한에 갇히게 됐다.

북한을 지배하게 된 소련 군부는 일제 강점기 행정기관과 은행 등을 장악하고 모든 자료와 금융 자산 등을 몰수했고, 이후 북한에 넘겨줬다. 북한에 대한 일본의 사죄와 배상 문제 외에 전시채권 상환 문제가 남은 배경이다.

기시다 총리는 2021년 10월 4일 취임 후 첫 기자회견 모두발언에서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와의 정상회담을 제안하면서 장소는 어디든 상관없다는 파격적인 입장을 밝힌 것이나 해외에서 북한과 접촉하며 북일 정상회담을 추진해온 것은 일왕의 특명을 이행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관방장관이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를 꺼내 북한과의 접촉·교섭을 어렵게 한 것은 일왕의 대의와 크게 어긋난 결과다.

관방장관의 발언은 사전에 기시다 총리와 조율된 것은 아닌 듯하다. 따라서 기시다 총리 측에서 북한과의 대화에 다시 나설 가능성이 높지만 돌아선 북한이 어떻게 반응할 지는 미지수다.

결국 일본의 대북 태도 변화와 일왕의 진의를 북한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북일 간 대화 여부가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민대호 기자 mdh50@korearepo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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