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정 "기시다 총리 '모종의 경로' 통해 北과 정상회담 타진"
"기시다 행보는 일왕 특명 추진"…北 "일본 정치적 결단 내려야"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조선중앙TV 갈무리)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조선중앙TV 갈무리)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25일 북일 간의 '접촉' 사실을 공개하면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모종의 경로'를 통해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와의 북일 정상회담을 추진한 사실이 알려졌다. 

기시다 총리의 방북 추진과 김정은 총비서와의 정상회담 계획은 북일 간 평화관계 유지와 일본인 납북자 문제 해결 등 외부에 알려진 것과는 다른 '특별한 사안'이 있다. 바로 일왕(日王)의 일제강점기에 따른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 北 김여정, 기시다  총리의 북일 정상회담 추진 공개

김 부부장은 이날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낸 담화에서 "최근 기시다 수상은 또 다른 경로를 통해 가능한 한 빠른 시기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을 직접 만나고 싶다는 의향을 우리에게 전해왔다"라고 주장했다.

기시다 총리는 집권 후 수시로 북일 정상회담 개최 의사를 밝혀왔다. 기시다 총리는 2021년 10월 4일 취임 후 첫 기자회견 모두발언에서 김 총비서와의 정상회담을 제안하면서 장소는 어디든 상관없다는 파격적인 입장을 밝혔다. 

김 부부장의 이번 담화는 일본이 보다 실질적인 제안을 북측에 전달했다는 뜻으로 읽힌다. 김 부부장은 다만 "조일(북일)관계 개선의 새 출로를 열어나가는 데 중요한 것은 일본의 실제적인 정치적 결단"이라면서 "일본이 공화국을 한사코 적대시하며 주권적 권리를 침해하면 우리의 적으로 간주하여 과녁에 들어오게 되어있지 결코 벗이 될 수 없다"고 밝혀 일본의 '전향적'인 태도를 요구했다.

주목되는 것은 김 부부장이 "공정하고 평등한 자세에서 우리의 주권적 권리와 안전 이익을 존중한다면 공화국의 자위력 강화는 그 어떤 경우에도 일본에 안보 위협으로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점이다. 이는 한반도를 강점하고 분단을 초래한 일본을 반드시 응징한다는 북한의 확고한 입장에서 한발 물러선 것으로 일본이 대북 적대 정책을 펴지 않고 북한의 주권적 권리를 존중하면 일본을 무기 등 군사적 공격 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 기시다 총리의 북일 정상회담 추진은 일왕의 '특명'

김 부부장이 밝힌 기시다 총리의 모종의 경로를 통한 북일 정상회담 추진은 사실 일왕(日王)의 특명을 이행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일왕의 부친인 아키히토 일왕은 줄곧 일제강점기에 피해를 본 남북한에 사죄와 보상을 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디. 지난  1990년 5월 24일 노태우 대통령 국빈 방문시 궁중 만찬회에서는 "일본에 의해 초래된 불행한 시기에 귀국 분들이 겪은 괴로움을 생각할 때 저는 통석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특히 북한에 대한 일본과 아키히토 일왕 부자의 입장은 특별한 부분이 있다. 한국과는 박정희 정권 시절인 1965년 6월 한일기본조약을 통해 '청구권·경제협력에 관한 협정' 등 4개 협정안을 체결하면서 일제 강점기 책임과 관련해 한일관계가 상당 부분 정리됐다.

그러나 북한에 대해선 일제 강점기에 따른 책임 이행과 관련해 진행된 것이 없다. 일본의 사죄와 배상 문제 외에 일본이 2차 대전 수행을 위해 발행한 전시채권 상환 문제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북한은 일본의 전시채권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국가 중 하나이다. 

이는 일본이 1945년 8월 15일 공식적으로 항복을 발표할 당시를 전후해  남한과 북한에서 전혀 다른 상황이 벌어진 것과 관련있다.

남한에서는 일본이 항복한 이후 무려 23일이 지난 9월 9일에 미 군정이 본격화됐고, 그 공백 기간 일제총독부가 영향력을 유지하면서 일본인과 금융자산이 순조롭게 일본으로 옮겨갔다.

반면 북한에서는 소련이 1945년 8월 9일 참전을 선언하고 38도 이북의 일제 관동군을 섬멸한다는 목적으로 한반도에 진출했다. 소련군과 김일성 부대는 곧바로 38도선을 봉쇄했고, 일본인과 기관들은 8월 15일 패망 후 북한에 갇히게 됐다.

북한을 지배하게 된 소련 군부는 일제 강점기 행정기관과 은행 등을 장악하고 모든 자료와 금융 자산 등을 몰수했고, 이후 북한에 넘겨줬다. 북한에 대한 일본의 사죄와 배상 문제 외에 전시채권 상환 문제가 남은 배경이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NHK TV 갈무리)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NHK TV 갈무리)

기시다 총리가 총리가 될 수 있었던 이면에는 일왕 측의 힘이 크게 작용했다는 얘기가 있다. 기시다 총리가 취임 첫 기자 회견에서 김정은 총비서와의 정상회담을 제안한 것이나 북한과의 물밑 교섭을 통해 정상회담을 추진한 것은 일왕의 지원에 대한 화답이자 특명(과제)을 수행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아소 다로 일본 자민당 부총재가 작년 5월 11일 방한해 윤석열 대통령을 만난 것도 가장 큰 목적은 일왕의 숙원인 북일문제 해결에 한국이 일정한 역할을 해줄 것을 요청하기 위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의 대북 적대 정책으로 한국에 대한 기대가 물 건너 가면서 일본이 직접 나서게 됐다.

◇ 북일 정상회담 주사위는 일본에…기시다 행보에 달려

김여정 부부장은 이날 담화에서 북한이 아직 북일 정상회담을 위한 분위기 조성이 되진 않았다면서도 여전히 '관심'이 있음을 나타냈다.

김 부부장은 "자기가 원한다고 하여, 결심을 하였다고 하여 우리 국가의 지도부를 만날 수 있고 또 만나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수상은 알아야 한다"고 했다. 이어 "일본이 지금처럼 우리의 주권적 권리 행사에 간섭하려 들고 더 이상 해결할 것도, 알 재간도 없는 납치 문제에 의연 골몰한다면 수상의 구상이 인기 끌기에 불과하다는 평판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라면서 기시다 총리의 직접적인 결단을 거듭 촉구했다.

결국 북일 정상회담의 주사위는 일본에 달렸다. 기시다 총리가 북한이 요구하는 주권적 권리 행사 비간섭, 일본인 납치문제 배제 등을 수용하느냐 따라 북일 정상회담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민대호 기자 mdh50@koreareport.co.kr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코리아리포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