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존 우익단체 주도, 현 29일부터 철거 시작…日 시민단체 반발
외교부 "우호 관계 저해않는 방향 해결 기대" 입장만 반복

일본 군마현 조선인 노동자 추도비 현장에서 29일 일본 시민단체 회원들이 철거 반대 집회를 하고 있다.
일본 군마현 조선인 노동자 추도비 현장에서 29일 일본 시민단체 회원들이 철거 반대 집회를 하고 있다.

일본 군마현이 시민단체의 반대에도 조선인 노동자 추도비 철거를 강행했다.

아사히신문은 29일 “군마현이 이날 오전 군마의 숲에서 조선인 노동자 추도비 철거 공사를 시작했다”며 “현은 공원을 폐쇄하고 다음 달 11일까지 추도비 철거를 완료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이 추도비는 2004년 4월 군마현 다카사키시의 현립공원인 ‘군마의 숲’에 세워졌다. 일본 시민단체들이 제국주의 시절 한반도 침탈 역사를 이해하고, 현세대에서 양국 우호를 증진할 목적으로 추도비 설립을 주도했다. 당시 군마현의회는 추도비 설치를 만장일치로 승인했다.

비문엔 일본이 저지른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을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1995년)와 한-일 관계의 새로운 이정표가 된 김대중 전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1937~2000) 전 총리의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1998년)의 정신이 반영돼 있다. 비석 앞면에는 ‘기억 반성 그리고 우호’라는 글이 한글·일본어·영어로 쓰여 있고, 뒷면엔 “일본이 조선인에 대해 크나큰 손해와 고통을 입힌 역사의 사실을 깊이 기억에 새기고 진심으로 반성하여 (중략) 과거를 잊지 말고 미래를 내다보며 새로운 상호 이해와 우호를 바라면서 이 비를 건립한다”고 적혀 있다.

철거 논란이 시작된 것은 아베 신조 2차 내각이 들어선 2012년부터다. 군마현은 2012년 추도비 앞에서 열린 조선인 노동자 추도제에서 참가자가 ‘강제 연행’을 언급한 것을 문제 삼아 장소 제공 갱신을 거부했다.

2014년 6월 자민당 의원이 다수였던 군마현 의회가 도쿄 요코아미초 공원에 있는 ‘간토대지진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 등의 철거를 지속적으로 주장해온 일본 우익단체인 ‘소요카제’(산들바람)가 낸 군마현 추도비 철거 청원을 채택하자 현은 7월 추도비 설치 기간 연장 불허를 결정했다.

그때부터 시민단체와 현 간에 치열한 법정 싸움이 시작됐다. 2018년 1심인 마에바시지방재판소에선 시민모임이 이겼지만, 2021년 보수적 색채가 짙은 도쿄고등재판소에서 판결이 뒤집혔다. 이 판결은 2022년 최고재판소에서 그대로 유지돼 현은 지난해 4월 추도비 철거 명령을 내렸다.

현은 지난달까지 철거해 달라고 시민단체에 요구했지만 이뤄지지 않자 29일 강제 집행에 나섰다. 시민단체 관계자를 포함한 150여명은 전날 철거 반대집회를 열고 추도비에 헌화했다.

‘군마의 숲 조선인 추도비 철거에 반대하는 시민의 모임’의 후지이 야스히토 사무국장은 “현의 철거 집행은 가해 역사를 조장하는 것”이라며 “추도비가 철거돼도 다음 세대에 정신을 이어가는 운동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외교부는 29일 "이 사안이 양국 간 우호 관계를 저해하지 않는 방향으로 해결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일본 시민단체도 반발하는 '강제동원 역사 지우기' 시도에 우리 정부는 미온적 대응을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백민일 기자 bmi21@korearepo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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