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집권 10년] 20대 불안한 지도자에서 당 총비서로…측근 대신 당시스템 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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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집권 10년] 20대 불안한 지도자에서 당 총비서로…측근 대신 당시스템 활용
  • 민대호 선임기자
  • 승인 2021.11.21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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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택 등 정적 제거하며 노동당 중심 국정운영체제로 정당성 확보
권력 안정화 성공했지만, 비핵화 협상 결렬 뒤 경제난 심화 고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 (연합뉴스TV 캡처)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 (연합뉴스TV 캡처)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는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한 지 13일만인 2011년 12월 30일 인민군 최고사령관에 추대되며 최고 권좌에 올랐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불과 27세에 최고지도자가 된 김정은이 권력장악을 위해 가장 공 들인 것은 노동당 주도 국정운영체제의 부활이었다.

김정은은 지난 10년 동안 노동당을 국정 중심에 두고 절차와 시스템에 따른 통치를 강화해 나가면서 1인지배 체제를 안정적으로 구축했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정치적 기반이나 세력, 경험도 전무했던 김정은에게 노동당 중심 국정운영체제를 확립한 것은 권력장악을 위한 묘수였다.

당 중심 국정운영은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 때도 유효했던 사회주의 국가의 일반적인 통치방식이지만, 김정일의 '선군(先軍) 정치'하에서 유명무실해졌다.

김정일 체제에서는 당 전원회의, 정치국 회의 등 다양한 형태의 당 회의가 거의 열리지 않았고 열렸다 하더라도 보도되지 않았을 정도로 노동당 회의를 통한 정책 결정은 무시돼 왔다.

이에 김정은은 집권 초기부터 노동당 기구의 활동을 부활시키고 남북 및 북미정상회담도, 대남 및 대미 정책도, 간부 인사와 내치도 밀실이 아닌 노동당 협의체를 통해 결정하는 시스템을 정착시켰다.

1980년을 끝으로 35년간 한 번도 열리지 않았던 노동당 대회도 김정은 집권 이후 2016년 제7차 대회를 시작으로 5년에 한 번씩 열리도록 규정했고 당 전원회의나 정치국 회의는 해마다 여러 번 열리며 일상화됐다.

김정은의 정책 지시가 일방적으로 이뤄지는 회의라더라도 중국, 베트남 등 일반 사회주의 국가들처럼 노동당 회의라는 틀 속에서 절차를 밟아간 것이다.

또 '은둔의 지도자'로 불린 아버지와 달리 수시로 주요 국가 행사들에서 직접 연설을 통해 국정운영 상황을 지적하고 향후 방향을 제시하며 1인지배체제의 최고지도자임을 각인시켰다.

김정은은 당 중심 체제로 전환을 통한 '사회주의 정상국가화'를 추구하는 한편으로 1인지배 체제 구축에 걸림돌이 됐던 '김정일 시절의 군부'에 칼을 들이댔다.

김정일 영결식 때 운구차를 호위한 리영호 인민군 총참모장 해임을 시작으로 군부 고위 인사를 수시로 교체하거나 강등 처벌하는가 하면 김정일 체제에서 국정·정책 결정의 중심에 있던 군부를 노동당의 통제 속에 가뒀다. 헌법에서는 아예 선군정치 용어도 빼버렸다.

군부 뿐 아니라 1인지배체제에 위협이라고 판단되면 친인척도 가리지 않고 숙청했다.

김정일의 오른팔로 40여 년을 2인자로 군림한 고모부 장성택 처형(2013년 12월)과 "살려달라"는 편지까지 보냈던 이복형 김정남 독살(2017년 2월)은 젊은 권력자의 잔혹함을 세상에 각인시켰다.

그러면서 최고지도자로서 자신의 지위와 권위를 법적으로 차근차근 다져갔다. 집권 5년 차인 2016년 5월 7차 당대회에서 당의 최고영도자인 노동당 위원장에 추대되면서 사실상 선대와 동급의 지위를 확보했다.

같은 해 6월 최고인민회의에서는 국정 전반을 운영하는 국무위원회를 신설하고 자신이 위원장이 됐으며, 김정일 시대에서 최고통치기구라는 비정상적 역할을 했던 국방위원회를 폐지했다.

특히 2019년 개정헌법을 통해 그동안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에게 부여됐던 '대외적 국가수반'의 지위를 자신에게로 돌렸다.

그런가 하면 지난 1월 당 제8차 대회에서는 헌법상 김정일에게 '영원히' 부여했던 총비서 직책을 차지하며 노동당의 최고지도자임을 명확히 했다.

최근 노동신문에는 김일성·김정일에 한정했던 '수령' 호칭을 김정은에 사용하는 사례가 두드러지는 등 정치적 위상을 계속 강화하는 동향이 감지된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김정일 때는 계엄령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군이 모든 것을 끌고 가는 비정상적 상황이었는데 김정은은 당 중심 체제를 복원해 체제를 안정화하고 통치의 정통성을 확보했다"고 말했다.

이어 "10년을 경과하면서 김정은 체제가 명실상부하게 제대로 작동하는 안정적인 구조가 만들어졌고 권력 엘리트층도 세대교체가 거의 이뤄졌다"며 "이제는 김정은표 정치가 작동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김정은의 지난 10년은 핵·미사일 개발과 먹고 사는 문제 해결에 주력했다.

2013년 '경제건설 및 핵무력건설 병진노선'을 내세운 그는 생산방식에 시장경제 요소를 도입하고 투자 유치를 위해 다수 경제특구를 설치하는 등 개방적인 면모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자본과 인프라 모두 부족한 여건에서 성과는 미미했다.

4차례의 핵실험과 미국 본토를 사정권에 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등 자위적 국방력 강화라는 명목으로 계속된 핵·미사일 고도화는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로 돌아와 북한의 숨통을 조였다.

경제상황 및 대외환경이 더욱 악화하자 김정은은 2017년 11월 29일 '핵 무력 완성'을 선언한 이후 '핵·경제 병진' 노선을 접고 돌연 '경제건설 총력집중'으로 선회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에 핵심 실세로 떠오른 여동생 김여정을 파견했고, 이후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을 하면서 일시적으로나마 한반도에 훈풍이 찾아왔다.

아버지가 물려준 가난한 나라에 좌절했던 김정은은 경제발전과 핵을 맞바꾸겠다는 의지로 2018년 6월 트럼프 대통령과 사상 첫 북미정상회담을 하는 '담판 외교'에 나서며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2019년 2월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에서 빈손 귀국의 상처를 입은 그는 같은 해 10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실무협상 이후 더는 미국과 대화에 응하지 않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세계를 휩쓸었고, 방역 역량이 취약한 북한은 전염병 유입을 막기 위해 국경을 전면 봉쇄하면서 언제 다시 밖으로 나올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생명줄인 중국과 교역마저 위축된 가운데 주민들은 일상화된 식량난과 재해, 제재 장기화로 극심한 3중고에 시달리고 있지만, 김정은은 "우선 강해지고 봐야 한다"며 국방력 강화를 핵심 국가정책으로 거듭 천명했다.

또 내부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절대적 충성을 강조하며 '김정은주의'라는 독자적인 통치이념을 구상하고 있지만, 현재 있는 자원만을 최대한 활용하려는 자력갱생과 주민의 희생만 요구하는 지금의 방식으로는 국가 발전에 한계가 분명해 보인다.

결국 김정은이 인민에게 약속한 "사회주의 부귀영화"는 자력갱생이 아니라 비핵화 협상을 통한 제재 완화와 남북 협력 등으로 북한에 외부 자원이 유입돼야만 가능하다고 전문가들은 주장한다.

이런 현실을 잘 알고 있을 김정은이 앞으로 더 나은 10년을 위해 미국과 다시 '세기의 담판'을 하는 중대 결심을 할지 주목된다.

민대호 선임기자 mdh50@korearepo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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