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조 규모 한국형 차세대 구축함 사업 입찰 앞두고 '고발' 등 이례적 갈등 격화
경조사 챙겨온 사이지만 한화오션 출범 후 조선업 경쟁 시작…특수선 사업 '경영능력 시험대'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이 '한국형 차세대 구축함'(KDDX) 사업을 놓고 고발을 불사하며 정면충돌했다. 재계 대표적 '절친'인 김동관(41) 한화 부회장과 정기선(42) HD현대 부회장이 양측에서 이 싸움을 이끌고 있다.

10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한화오션은 지난 4일 KDDX 관련 군사기밀 유출 과정에서 HD현대중공업 임원이 개입한 정황을 수사해 달라며 경찰에 고발장을 냈다. 최근 방위사업청이 HD현대중공업에 대한 심의에서 입찰 배제에 못 미치는 행정지도 처분을 한 데 대한 반발이다.

앞서 HD현대중공업 직원 9명은 2012~2015년 KDDX 관련 군사기밀을 방사청과 해군본부에서 몰래 취득해 회사 내부망을 통해 공유한 혐의(군사기밀보호법 위반)로 재판에 넘겨져 지난해 11월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방사청은 대표나 임원의 개입이 확인되지 않은 점 등을 들어 입찰 배제 징계는 무리라고 봤다. 이에 보안감점(-1.8점)에 이어 KDDX 사업 자체를 포기해야 할 위기에 몰렸던 HD현대중공업은 한숨 돌리게 됐다.

그러자 한화오션은 고발장 제출 이튿날(5일) 기자회견을 열고 '군사기밀을 열람·촬영한 것을 상급자들이 알고 있었다'는 취지의 증인신문조서까지 공개하며 "임원이 개입한 정황이 명백하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HD현중은 이례적으로 방사청을 상대로 이의 제기를 한 데 이어 지난 14일 법원에 방사청을 상대로 우선협상자 지위 등을 다투는 가처분소송까지 냈다. 방사청의 평가와 감점 기준 등을 법정에서 다퉈보겠다는 것이다. 업계에선 “절대적인 ‘갑’의 위치인 방사청을 상대로 소송을 내면 미운털이 박힐 수도 있지만, HD현대가 배수진을 칠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다”고 한다.

그 속사정의 핵심은 HD현대가 떠안고 있는 ‘1.8점 감점’ 조항이다. HD현중은 2013년 자사 직원들이 해군 면담에서 한화오션(당시 대우조선해양)이 제작한 KDDX 개념설계도(3급 군사기밀)를 몰래 촬영해 보관한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1.8점 감점을 받게 됐다. 감점은 최소 2025년 11월까지 모든 군함 입찰 때 적용된다. 그간 소수점 단위 차이로 입찰이 갈린 점을 고려하면 HD현중으로선 감점 조항을 안고선 모든 입찰에서 승산이 거의 사라지게 된다.

재계는 경영 승계를 진행 중인 두 오너 3세의 경쟁을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다. 서로의 경조사를 신경 써 챙길 만큼 친한 사이지만 한화가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해 조선업에 진출하면서 충돌은 예견돼 왔다. 일반 상선은 HD현대중공업 등 3개 조선사를 보유한 HD현대가 우위에 있지만 군함 등 특수선 분야는 양강 구도다.

또 두 사람은 비슷한 시기에 경영 전면에 나선 터라 경영 능력을 입증해야 한다. 특히 한화오션 출범을 이끈 김 부회장이 애착을 보이고 있다. 정 부회장도 그룹 주력이 조선이라는 점에서 자존심이 걸려 있다.

현재까진 김 부회장이 먼저 웃고 있다. 한화오션은 지난해 출범 후 울산급 호위함 배치Ⅲ 5·6번함에 이어 3600톤급 중형잠수함 장보고Ⅲ 배치Ⅱ3번함 건조사업까지 모조리 수주했다. HD현대중공업은 이 과정에서 '감점 페널티'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법원 가처분신청까지 내는 등 민감하게 반응했다.

더구나 KDDX 수주전은 이전과는 다른 '큰 판'이다. 2030년까지 7조8000억 원을 들여 6000톤급 한국형 차세대 구축함 6척을 건조하는 초대형 사업이다. 하반기 입찰 예정인 1번함을 따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양사 모두 특수선 수주 잔량이 내년 이후 고갈된다는 점도 경쟁을 키우는 대목이다. 재계 관계자는 "두 회사 경영자의 능력과 실적이 다 걸린 사안이어서 쉽게 물러서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연 기자 lsy@korearepo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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