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보로 비칠까 봐 먼저 대화 제의 못하는 분위기" 평가도

싱하이밍(邢海明) 주한중국대사의 이달 초 이른바 '베팅' 발언으로 한층 더 심화된 한중 간 경색 국면이 당분간 쉽게 풀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내달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리는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관련 외교장관회의를 계기로 한중 외교장관들이 만나 관계 개선을 모색할 가능성을 점치고 있지만, 최근 정부 안팎의 기류를 봤을 땐 이마저도 '장담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많다.

이외 관련 한중관계에 밝은 한 소식통은 29일 "한중 양측 모두 선뜻 대화 제의를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대화를 먼저 제의한다면 양보하는 모양새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내달 13~14일 자카르타에선 한·아세안, 아세안+3(한중일), 동아시아정상회의(EAS),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등 외교장관회의가 잇달아 열릴 예정이다.

이번 회의엔 우리나라에선 박진 외교부 장관이 참석하며, 중국에선 친강(秦剛) 외교부장의 참석이 유력시된다. 특히 회의 기간 한중 외교장관이 모두 참석하는 행사가 예정돼 있는 만큼 이를 통해 두 사람의 첫 대면도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외교부 당국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아세안 관련 외교장관회의 계기 한중회담 개최 여부에 대해 "아직 정해진 게 없다"고 밝혀 두 사람의 만남이 단순 '조우'에 그칠지, 아니면 정식 양자회담이 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리 정부는 작년 5월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대(對)중국 외교 기조를 '할 말은 하는 외교' '당당한 외교'로 잡았다. 여기엔 과거 정부에서 '북한 관련 문제에 지나치게 매몰된 나머지 중국과도 불평등한 관계를 자초했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전날 열린 자유총연맹 창립 제69주년 기념행사에서 "북한만 쳐다보고 중국으로부터 무시당한 우리 외교가 (이제) 국제규범을 존중하는 5대양 6대주의 모든 국가들과 긴밀히 협력하는 '글로벌 중추외교'로 발돋움했다"고 평가한 것도 이 같은 인식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이와 관련 우리 대통령실은 앞서 싱 대사의 '베팅' 발언 논란 당시 "(대사) 직분에 어긋난 부분이 있다"며 강한 불만을 표시하면서 중국 당국의 "적절한 조치"를 요구하기도 했다.

싱 대사는 이달 8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우리 정부의 '한미동맹 강화·바전' 기조를 겨냥, "일각에선 '미국이 승리하고 중국이 패배할 것'이라는 데 베팅하는 것 같은데, 이는 분명히 잘못된 판단"이라고 말해 내정간섭 논란이 일었다.

즉, 싱 대사 건과 관련해 중국 측의 '결자해지'(結者解之·일을 저지른 사람이 해결해야 함)가 필요하다는 게 우리 정부의 입장인 셈이다.

그러나 중국 친 부장은 이른바 '전랑(戰狼·늑대전사)외교'로 불리는 중국의 공세적 외교방식을 대표해온 인물이란 점에서 내달 아세안 관련 회의를 계기로 박 장관과 만나더라도 "우리 정부의 기대나 바람에 부합하는 언행을 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이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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