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러시아, 추락하는 푸틴… 우크라戰에 등 돌리는 국민들
엘리트 내부 분열 조짐도…첫 권력 '진공 상태'에 커지는 위기

"반란은 푸틴에게 '실존적 위기'를 촉발할 것."
"푸틴을 뒷받침하던 '국가의 견고함'과 '정치적 안정'이라는 가치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1일 천하'에 그친 러시아 용병기업 바그너그룹의 무장 반란의 여파가 거세다.

뉴스1에 따르면 바그너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벨라루스로 망명하는 것으로 사태는 일단락됐지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진정한 위기는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관측에 힘이 실린다. 2024년 러시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푸틴 대통령의 5기 집권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24일(현지시간)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특별군사작전'을 시행한 지 16개월 만에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최측근이던 용병그룹 바그너그룹이 반란을 선언하면서다.

프리고진은 이날 로스토프나도누를 시작으로 수도 모스크바를 향해 약 1000㎞에 달하는 거리를 진격하며 무장 반란을 일으켰다가 약 36시간 만에 후퇴했다. 프리고진은 벨라루스 정부 중재 아래 크렘린궁과 바그너그룹이 맺은 합의에 따라 벨라루스로 갈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는 프리고진이 벨라루스로 떠나는 조건으로 그와 바그너그룹 전투원들을 처벌하지 않기로 했고, 무장 반란에 가담하지 않은 바그너그룹 용병이 러시아 국방부와 계약을 체결해 활동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러시아 당국은 무장 반란을 촉구한 혐의로 기소된 프리고진에 대한 형사입건을 취하했다. 다만 애초 바그너그룹이 요구한 러시아군 수뇌부에 대한 처벌에 합의했는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푸틴, 내년 대선서 승리할 경우 2036년까지 집권 가능

푸틴 대통령이 프리고진을 암살할 수 있다는 전망과 함께 우크라이나 전쟁에 미칠 영향에도 관심이 쏠리지만, 서방 국가들이 촉각을 세우고 있는 건 다름 아닌 푸틴 대통령이 권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 여부다.

러시아의 차기 대통령 선거는 2024년 3월17일로 예정돼 있다. 러시아 상원은 올해 12월 대선 선거운동을 시작할 예정이며, 푸틴 대통령도 출마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매체 코메르산트는 지난 1월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푸틴 대통령이 관계자들과 차기 대선을 위한 선거 캠프 구성을 논의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올해 70세인 푸틴 대통령은 2000~2008년(3·4대), 2012~2018년(6대)을 거쳐 2018년부터 7대 대통령으로 4선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는 지난 2020년 한 차례 헌법을 고쳐 임기를 '중임 2회'로 제한했지만, 개정된 헌법은 차기 대통령부터 적용된다는 단서를 달며 자신은 법 적용을 피하도록 했다. 만일 그가 2024년 대선에서 당선되면 84세가 되는 2036년까지 12년 더 집권할 수 있게 된다.

◇우크라戰 이후 꾸준히 제기된 실각 가능성

푸틴 대통령의 실각은 우크라이나 전쟁 시작 이후 꾸준히 거론돼 온 주제다. 러시아 안팎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 결과가 그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그간 푸틴 대통령은 '무력 사용'을 지지율 상승의 발판으로 삼았다. 1999-2000년 체첸, 2008년 조지아, 2014년 우크라이나, 2015년 시리아 등 4번의 전쟁에서 연속 승리를 거두며 80%가 넘는 지지율을 확보했다. 러시아 제국의 부활을 꿈꾸는 푸틴 대통령의 야욕을 국민들이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나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은 푸틴 대통령의 23년 통치 중 가장 참담한 실수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번 전쟁은 과거와 달리 러시아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지 않은 데다 젊은 층 사이에서는 군 부분 동원령 등으로 거센 반발을 낳았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 8일 사안에 정통한 소식통 7명을 인용해 "러시아의 정치 및 비즈니스 엘리트 내의 많은 사람이 전쟁에 지쳤고 전쟁이 중단되길 원하지만, 푸틴은 전쟁을 중단하지 않을 것"이라며 "아무도 전쟁과 관련해 푸틴에게 맞설 엄두를 못 내지만, 그의 지도력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은 흔들렸다"고 보도했다.

전쟁이 17개월째 이어졌으나 '이제서야' 반란이 일어난 것은 푸틴 대통령이 그래도 지금까지는 안보와 정치적 안정성을 제공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반란으로 무너지고 있다.

러시아의 친(親)정부 성향 싱크탱크인 정치학 연구소의 세르게이 마르코프 소장은 "그가 항상 자랑스러워했던 것은 러시아 국가의 견고함과 정치적 안정"이라며 "그것이 그들(러시아 엘리트와 국민들)이 푸틴을 사랑한 이유다. 그리고 이제는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밝혀졌다"고 뉴욕타임스(NYT)에 말했다.

러시아 독립신문 네자비시마야 가제타의 편집자 콘스탄틴 렘추코프도 NYT와 BBC에 "푸틴이 권력을 잡음으로써 안정을 제공하고 안보를 보장한다는 생각은 반란과 함께 대실패를 겪었다"며 "한 달 전까지만 해도 푸틴이 무조건 출마할 것이라고 확신했다면, 이제 엘리트들은 더 이상 안전하다고 느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전했다.

이어 "이제 모든 엘리트 그룹은 2024년 대통령 선거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할 때"라며 "그들은 쿠데타 전까지 그랬던 것처럼 푸틴에게 의존해야 하는지 자문할 것이다. 아니면 좀 더 현대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사람을 생각할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러시아 최대 독립언론인 메두자(Meduza)도 러시아 행정부와 가까운 소식통을 인용해 "이제 푸틴이 권력을 모으기는 더 어려울 것"이라며 "러시아 엘리트 사이에서는 시스템을 재건하려는 시도가 더 많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로비키' 내에서 분열 거론

러시아 엘리트들 사이에서 존재해온 갈등과 분열이 이번 반란을 계기로 본격화할 경우 실각의 위험은 더욱 커진다.

푸틴은 '실로비키(siloviki)'를 대거 요직에 기용해 왔다. 러시아어로 '제복을 입은 남자들'을 뜻하는 실로비키는 옛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 후신인 연방보안국(FSB)을 비롯해 정보기관, 군, 경찰 출신 인사를 일컫는다.

푸틴 개인의 정보요원 출신 배경에서 비롯된 실로비키는 올리가르히(러시아 신흥재벌)와 경쟁하게 됐고, 또 기술 관료들로 인해 균형을 맞췄다. 여기에서 푸틴은 모든 결정의 최종 중재자였다. 그는 후원과 박해라는 시스템으로 엘리트 구성원 누구도 한 분야 이상에서 권력과 영향력을 얻을 수 없도록 했다.

푸틴 대통령은 자신의 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한 일종의 '비난 게임'으로 이 실로비키 간 갈등을 부추겨 왔다. 대표적인 예로 지난해 10월 세르게이 수로비킨 육군 장군을 총사령관으로 임명했다가,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열세에 몰리자 불과 3개월 만에 발레리 게라시모프 총참모장을 총사령관으로 교체했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의 이 같은 통치술은 반란으로 권력의 진공 상태가 된 상황에서는 힘을 잃을 수밖에 없다.

온라인 매체 더 컨버세이션은 "궁극적으로 푸틴만이 부하들 사이의 분쟁을 중재할 수 있다. 이는 푸틴에게 도전할 수 있는 권력 기반을 구축하려는 부하들의 능력을 제한할 뿐만 아니라 정치 체제에서 그의 중요성을 강화한다"며 "이러한 정치 체제는 자신의 영향력과 권력을 유지하는 것이 목표인 평시에는 매우 효과적이지만, 갈등이 임박하거나 완전한 전쟁의 시기에는 오히려 골칫거리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도 그간 실로비키를 비롯한 엘리트 내부에서 쿠데타의 기반이 형성되고 있다고 본 전문가는 드물다. 반대로 말하면 예측 불가능했던 일이 일어난 지금은 그 어떤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다는 의미다.

카네기 러시아 유라시아센터 선임 연구원 타티아나 스타노바야는 지난 6월 푸틴 대통령과 엘리트 간 긴장이 강화되고 푸틴 대통령의 지지 기반은 취약하지만, 이들이 푸틴 대통령에게 대항하거나 쿠데타를 일으킬 확률은 극히 낮다고 전망했다.

스티븐 홀 전 미국 중앙정보국(CIA) 러시아 작전 총괄책임자는 USA투데이에 "푸틴이 그룹(실로비키)의 지지를 잃으면 거의 즉시 쫓겨날 수 있다"며 "그들이 이 문제와 관련해 어떻게 생각하고 그 결정까지 얼마나 오래 걸릴지 예측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전했다.

이상연 기자 lsy@korearepo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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