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 "회동 일정 없다"→하루 뒤 "전화통화"…'中 눈치' 비판 의식했나
'대만 방문'에 中 강력 반발…대통령실 "통화 계획 갑자기 잡은 것 아냐"

윤석열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은 한국을 방문 중인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과 4일 오후 전화 통화를 했다.

대통령실은 전날(3일) 윤 대통령이 여름 휴가 중이라는 점을 이유로 들며 펠로시 의장과 회동 계획이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자 야권은 물론 여권에서도 '중국 눈치보기'라는 비판이 나왔고 대통령실이 이를 의식해 급히 통화 일정을 잡은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다만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같은 의혹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앞서 대통령실은 전날 윤 대통령과 펠로시 의장의 회동 일정이 조율 중이라는 언론 보도가 나오자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양측이 당초 회동 일정을 조율한 적은 있지만 윤 대통령이 지방으로 휴가를 떠날 계획에 회동은 불발됐고 이후 재조율된 적은 없다'는 설명이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대통령이 휴가중이어서 현재로서는 (회동) 계획이 없다"고 했다. 강승규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도 이날 오전 라디오 인터뷰에서 "펠로시 의장의 파트너는 국회의장"이라고 거들었다.

그러자 야권을 중심으로 비판이 쏟아졌다. 외교 정책에서 미국과의 강력한 밀착을 기조로 내건 윤 대통령이 이제 와서 중국 눈치보기를 한다는 게 요지다.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도 "동맹국 미국의 의회 1인자가 방한했는데 대통령이 만나지 않는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가세했다.

실제로 윤 대통령이 휴가 중에도 펠로시 의장과 만난다면 중국의 강력한 반발은 쉽게 예상됐다.

미국 내에서도 반중(反中) 성향이 강한 인물로 평가되는 펠로시 의장의 이번 대만 방문은 주로 지정학적인 관점에서 해석된다. 중국이 극도로 예민해하는 '양안 문제'를 건드려 중국과의 패권 다툼 전면전에 나섰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중국은 주중 미 대사를 새벽에 초치하고 무력 시위에 나서는 등 격하게 항의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통화에서 "윤 대통령이 만약 펠로시 의장을 만난다면 장소는 집무실이 되지 않았겠나"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아무리 서초구 자택에 머무르고 있다고 해도 용산 대통령실로 '출근'해서까지 회동에 나서는 것은 대중 외교적 이득이 크지 않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에 나섰을 때 "중국을 고립하려는 것이 아니다"라며 표면적으로나마 중국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왔다.

하지만 대통령실은 미국의 입장도 동시에 고려해야 했을 것으로 보인다. 당초 펠로시 의장과의 회동이 불발된 것이 윤 대통령의 지방 방문 일정 탓이었는데 지방 방문이 결국 취소된 상황에서 펠로시 의장과 어떤 식으로든 교감에 나설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따라서 대통령실이 회동을 전화 통화로 갈음하면서, 미국과 중국측 모두를 고려한 '절충안'을 선택한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윤 대통령과 펠로시 의장의 이날 전화 통화 계획은 "(갑자기 잡힌 것이) 아니다"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최영범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4일 윤석열 대통령과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통화한 것에 대해 "모든 것은 우리 국익을 총체적으로 고려해 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최 수석은 이날 오후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룸에서 언론으로부터 윤 대통령이 펠로시 의장을 만나지 않는 것이 중국을 의식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받은 것에 대한 대통령실 입장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최 수석은 "우리 정부는 미국 행정부의 외교적 결정을 당연히 존중할 것"이라며 "한미 동맹관계를 최우선에 둔다는 것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고 강조했다.

최 수석은 윤 대통령이 펠로시 의장을 만나지 않는 것이 미중간 균형외교 지점을 찾아가는 것인가란 질문에 "우리나라의 외교노선 수정 신호로 읽는 것은 너무 많이 나간 질문"이라고 일축했다.

한편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은 5일 윤석열 대통령이 방한한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과 직접 만나지 않고 전화 통화만 한 데 대해 "중국의 눈치를 보느라 미국 의회의 대표를 패싱한 것이 어찌 우리 국익에 도움이 되느냐"고 비판했다.

유 전 의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최상의 한미동맹으로 국가안보를 사수하는 것이 모든 일의 근본이고, 그 위에 중국과 호혜의 원칙으로 동반자 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이라며 "미국에 사대(事大)하자는 게 아니라, 미국의 힘을 이용해서 우리의 국익을 지키자는 것"이라고 적었다. 

이어 그는 "미·중 사이에서 양다리 전략이 과연 통하겠느냐"며 "이슈(쟁점)에 따라 미국과 중국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기회주의는 통하지 않는다. 미국도 중국도 바보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유 전 의원은 "과거 진보정권의 '균형자 외교'는 양쪽 모두에게 버림받을 수 있는 위험이 늘 있었다"며 "특히 군사 안보와 경제, 과학기술이 하나로 돌아가는 오늘의 정세에서는 더욱 그렇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펠로시 의장을 만난 외국 정상들은 자신들의 국익을 해치려고 만났다는 것이냐"며 윤 대통령을 재차 비난했다.

나경원 전 의원도 윤석열 대통령이 낸시 펠로시 미국 연방하원 의장을 직접 면담하지 않은 것에 대해 '아쉬운 부분이 있다'고 밝혔다.

나 전 의원은 5일 오전 서울시의원 회관에서 열린 국민의힘 시의원 정책포럼에서 참석해 '펠로시 의장이 왔는데 대통령께서 만나는 게 맞느냐 논란이 있었는데 아쉬운 부분이 있다'는 취지로 말을 했다.

김태훈 기자 thk@korearepo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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