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南 대통령 정상회담 약속 안 지켜…북한 큰 어려움 겪어"
김대중 '북한판 마셜플랜', 盧10.4 선언· 文 '백두산 등정' 약속
김정은 "남한은 동족 아닌 적대 국가…통일 논의 안해"
北, 남북공동연락사무소·금강산 시설 등 남북교류 상징 없애

지난 2020년 6월 16일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장면.(조선중앙TV 갈무리)
지난 2020년 6월 16일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장면.(조선중앙TV 갈무리)

북한이 2020년 폭파하고 방치한 개성공단 내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건물을 완전히 치웠다. 미국의소리(VOA)는 9일 미국 민간 위성 서비스 '플래닛 랩스'가 사무소 위치 상공에서 지난달 24일 촬영한 위성 사진을 근거로 지난해 8월 촬영한 위성 사진에서는 건물 뼈대가 남아 있었는데 이제는 찾아볼 수 없다면서 이같이 전했다. 

북한은 2020년 6월 공동연락사무소와 개성공단 종합지원센터 건물을 폭파했고, 폭파 잔해는 내버려 뒀다가 지난해 4월께 정리를 시작했다.

북한이 공동연락사무소 등을 폭파하고 잔해까지 치운 것은 역대 남한 정부에 대한 북한의 달라진 시각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북한 매체는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인 2022년 6월부터 줏대 없이 미국을 추종한다며 ‘괴뢰’ 정부라고 표현한데 이어 12월에는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 담화에서도 ‘괴뢰’라는 호칭이 나왔다.

김정은 총비서는 2022년 12월 26∼31일 진행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6차 전원회의 '보고'에서 남한을 적으로 규정했고, 김여정 부부장은 2023년 7월 담화에서 남한을 ‘대한민국’으로 표현해 ‘동족’과 구분지었다. 김정은 총비서는 12월 30일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북남 관계는 더 이상 동족관계, 동질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관계”라고 규정했다.

이같은 북한 수뇌부의 대남 인식 변화는 남북교류의 상징인 공동연락사무소 폭파에 이어 잔해까지 완전히 제거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 김대중·노무현·문재인 대통령 대북 '약속 불이행'은 무엇?

북한이 대남관계를 완전히 단절하기로 한 것에 대해 우리 정부와 많은 전문가들은 ‘북란 탓’으로 돌리지만, 북한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과 남북관계 이면을 잘 알고 있는 전문가는 북한 나름의 ‘이유’에 주목한다. 남북정상회담이라는 남북 최고 수뇌부의 합의 사항을 남한 정부가 이행하지 않은 점이다.

2000년 6월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의원장의 평양에서 만나는 모습(왼쪽), 2007년 10월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평양 정상회담. Ⓒ청와대
2000년 6월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의원장의 평양에서 만나는 모습(왼쪽), 2007년 10월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평양 정상회담. Ⓒ청와대

남북이 분단된 후 정상회담은 김대중‧노무현‧문재인 대통령 때 이뤄졌다.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은 김대중 대통령 시절인 2000년 6월 13~15일 평양에서 열렸다.

북한 사정에 정통한 베이징 소식통에 따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0년 6월 김대중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것은 표면적으론 동족 간 통일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것이지만 그 이면에는 김대중 정부의 대규모 대북 지원 약속, 일명 '북한판 마셜플랜'이라는 밑그림이 있었다.

소식통은 "북한은 김대중 정부의 약속을 믿고 30년이상의 계획을 세우고, 개성공단을 위해 북한 전력군단을 옮기는 등 모든 조치를 다했는데 남한 정부가 결국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정일 위원장은 “대통령이 그런 것도 못하느냐”며 대로했고, 큰 충격을 받아 건강이 악화됐으며, 북한의 계획경제는 파탄이 났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그는 "'김정일-노무현' 정상회담도 유사한 과정을 거쳤다"면서 "노무현 정부가 10.4선언과 함께 북한에 약속한 것을 이행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김‧노 정상회담의 약속에 대해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은 채 "노무현 정부의 정권 재창출과 관련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김정은 총비서가 올 초 조선인민군 창건일인 2월 8일 건군절에 국방성을 방문해 한 연설에서 "동족이라는 수사적 표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국 괴뢰들과의 형식상의 대화나 협력 따위에 힘써야 했던 비현실적인 질곡"이라고 표현한 것은 김정일 시대 남북 정권 차원의 대화·협력에서 비롯된 북한의 참상을 일컫는 것이라고 소식통은 설명했다.

중국의 또 다른 대북 소식통은 2018년 9월 18일부터 20일까지 3일간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후 문재인 정부가 ‘약속’을 이행하지 않아 북한이 완전히 돌아서게 됐다고 전했다.

그해 9월 19일 김정은 총비서는 문재인 대통령의 숙소인 백화원으로 찾아와 2번째 정상회담을 가졌다. 배석자가 없는 단독 정상회담이 약 70분정도 진행됐고, 두 정상은 평양공동선언 합의문에 서명했다. 이어 송영무 국방부장관과 노광철 인민무력상이 9·19 남북군사합의서에 별도로 서명했다.

그런데 19일 오후 일정에 없던 문 대통령의 백두산행이 발표됐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백두산 방문은 김 위원장(김정은)의 제안을 문 대통령이 받아들여 이뤄졌다"고 밝혔다.

북한에서 최고지도자가 외국의 수반과 함께 백두산을 찾는 일은 처음이었다. 북한 전문가인 장백산 해외동포지원사업단 이사장은 “북한에서 백두산은 ‘혁명의 성지’ ‘백두혈통’ ‘역사의 시원’ 등 상징성으로 인해 최고지도자들은 큰 정치적 행사나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산행을 한다”고 말한다. 

김정은 총비서가 문 대통령과 함께 백두산 등정을 한 것과 관련해 장 이사장은 “김 총비서와 문 대통령 간에 무언가 ‘특별한 약속’이 있었고, 백두산 등정은 그 ‘약속’ 이행을 확실하게 해두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해석했다. 

실제 김 총비서와 문 대통령의 백두산행은 19일 갑자기 결정됐고, 김 총비서가 백두산행을 먼저 얘기했다는 청와대 발표에 따르면 문 대통령이 ‘큰 선물’을 북한에 약속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 

9월 평양정상회담 직후 남북은 정상 간 합의사항 이행을 명목으로 남측은 천해성 통일부 차관이, 북측은 전종수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이 주 1회 정례회의를 갖기로 했다.

당시 통일부와 언론은 천 차관과 전 부위원장의 회의에서 철도·도로·산림협력 등 남북 정상 간 합의에 따른 다양한 교류 현안이 논의될 것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문 대통령과 김 총비서가 백두산까지 동행해 다짐한 ‘약속’ 이행이 핵심이었다는 게 대북 소식통의 전언이다.

그러나 천 차관과 전 부위원장의 회의는 초기 몇 차례를 끝으로 더이상 진행되지 않았다. 2019년 3월 개성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 북측 인원이 철수하면서 ‘천해성-전종수’ 라인도 가동을 멈췄다.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가 ‘약속’을 이행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와 부인 리설주 여사가 지난 2018년 9월 20일 오전 백두산 천지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청와대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와 부인 리설주 여사가 지난 2018년 9월 20일 오전 백두산 천지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청와대

◇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삶은 소대가리" 이면은

‘천해성-전종수’ 라인의 대화가 멈춘 이후 남북관계는 최악으로 흘러갔다. 2019년 4월 12일, 북한은 문재인 정부에게 '오지랖 넓은 중재자 행세 말라'며 북미대화에 끼어들지 말고 경제협력만 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해 8월 15일 문 대통령은 광복절 축사를 통해 ‘평화경제’라는 구상을 내세워 경제 협력을 제안했지만, 북한은 조평통을 통해 “남조선 당국자의 말대로라면 저들이 대화 분위기를 유지하고 북남협력을 통한 평화경제를 건설하며 조선반도(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소리인데, 삶은 소대가리도 앙천대소할 노릇”이라며 조롱했다.

김정은 총비서는 2019년 10월 금강산 관광지구를 방문해 남북 교류의 상징인 금강산 남측 시설 철거를 지시해 ‘남북관계 지우기’에 나섰다. 이에 대해선 2028년 9월 평양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이후 백두산까지 등정하며 다짐한 '모종의 약속'을 지키지 않은데 대한 일종의 '본보기'라는 분석이 있다.

남북관계 냉각기기는 이듬해인 2020년으로 이어져 6월 4일 김여정 부부장이 대북전단 살포에 비난 담화를 발표한데 이어 9일엔 남북 통신연락 채널을 폐기하고, 16일 개성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해 남한 정부에 대한 북한의 분명한 입장을 보여줬다.

이후 북한은 문재인 정부의 어떠한 제안에도 응하지 않고,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 尹정부 '천안함 사건' 부각에 北 "결코 안해…민족 갈라놔"

윤석열 정부 들어 한미동맹 강화와 대북 강경책으로 남북관계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멀어졌다.

김정은 총비서는 작년 12월 30일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북남 관계는 더 이상 동족관계, 동질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관계,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로 완전히 고착됐다”고 평가했다.

북한은 남한의 역대 정권들을 박정희 대통령 시대를 제외하고 미국에 끌려다니는 '괴뢰'로 규정하고 그런 남한과는 상대를 하지 않겠다는 게 김 총비서의 발언(노동당의 입장) 취지라고 장 이사장은 진단했다.

장 이사장에 따르면 북한은 자신들의 소행이 아닌 ‘천안함 사건’에 대해 윤석열 정부가 유독 들춰내고 국내외에 선전하는 것을 보고 더이상 같은 민족으로 동행할 수 없는 상대로 여기게 됐다고 한다.

장 이사장은 “북한은 남북정상회담을 했던 김대중‧노무현‧문재인 대통령의 이면과 실체를 반드시 밝힐 것”이라며 “이후 남북관계가 어떻게 진행될 지는 장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다만  북한이 '괴뢰'라고 한 것은 남한 정권을 말하는 것이고, 일반 국민을 상대로 한 것은 아니라는 게 장 이사장의 설명이다. 북한이 남한 정부와는 대화·협력을 하지 않지만 민간 차원의 비정치적 교류는 열려있다는 것이다. 

박종진 기자 krjjp@korearepo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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