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공무원 실종, 피격 대책회의 국정원 주도에 무게
사건 보고서 무단 삭제 의혹…朴 삭제 부인, '해명 책임론'도

​북한에 의해 피살된 공무원의 형인 이래진 씨와 김기윤 변호사가 5일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서 대통령기록물 압수수색 요청에 앞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북한에 의해 피살된 공무원의 형인 이래진 씨와 김기윤 변호사가 5일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서 대통령기록물 압수수색 요청에 앞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0년 9월 발생한 서해 공무원 피격사건을 둘러싼 진실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논란이 되고 있는 사건은 2020년 9월 22일 밤북측 서해 소연평도 인근 해역에서 어업지도활동을 하던 해양수산부 어업관리단 소속 전남목포시 공무원인 이대준씨가 남측의 해역에서 실종된 뒤 그 지점에서 38km 떨어진 북방한계선 이북의 북한측 해역에서 북한군의 총격에 숨진 사건이다. 이씨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고, 북한군에 의해 불태워졌다는 주장이 제기돼 왔다.

2020년 당시 정부는 자진 월북으로 판단된다고 발표했지만 2022년 6월, 해경과 국방부는 월북 시도를 입증할 수 없다며 2년여만에 결과를 번복했다.

국가정보원은 지난 6일 문재인 정부 시절 발생한 서해 공무원 사건(2020년 9월)과 탈북어민 북송 사건(2019년 11월) 등으로 박지원·서훈 전 국정원장을 고발했다.

국정원은 이날 서해 공무원 사건과 관련해 첩보 관련 보고서 등을 무단 삭제한 혐의로 박 전 원장을 국정원법(직권남용죄) 위반, 공용전자기록 손상죄 등으로 고발했다.

또한 국정원은 서 전 원장을 탈북어민 북송 사건과 관련해, 당시 합동 조사를 강제로 조기 종료했다며 국가정보원법 위반, 허위 공문서 작성죄 등으로 고발했다.

국정원의 고발 직후 박 전 원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그러한 사실이 없다. 자세한 말씀을 드릴 수 없지만, 첩보는 국정원이 공유하는 것이지 생산하지 않는다. 국정원이 받은 첩보를 삭제한다고 원 생산처 첩보가 삭제되는가”라면서 “소설 쓰지 말라, 안보 장사하지 말라”라고 반박했다.

◇ 국정원 - 전 국정원장 '진실공방' 향방은?

서해 공무원 피격사건 관련해 지난 6월 16일 인천해양경찰서와 국방부는 서해 공무원 자진 월북설을 뒤집었다. 자진 월북을 입증할만한 자료를 찾지 못했다는 것으로 사건 당시와 다른 모습이다.

인천해경과 국방부 발표 후에 대통령실 관계자는 “자진 월북 정황이 높다고 발표한 것에 어떤 의도가 있는지 밝히는 것이 중요한데 아직 그 의도는 확인하지 못했다”라며 문재인 정부가 이 사건을 조작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국정원의 발표 이후 검찰, 대통령실, 국민의힘은 국정원에 힘을 보태며 발 빠르게 움직였다.

먼저 서울중앙지검은 7일 박 전 원장 고발 건을 공공수사1부(부장검사 이희동)에, 서 전 원장 고발 건을 공공수사3부(부장검사 이준범)에 각각 배당했다.

대통령실도 같은 날 “검찰 수사를 예의주시하겠다”라면서 “(두 사람이 받는 혐의가 사실이라면) 중대한 국가범죄”라면서 박 전 원장과 서 전 원장의 혐의를 확정하는 듯한 분위기를 띄웠다.

권성동 국민의힘원내대표도 서해 공무원 사건에 대해 문재인 정부가 진실을 은폐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권 원내대표는 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해수부 공무원에 대한 ‘월북몰이’의 본질은 권력에 의한 진실 은폐”라면서 “문재인 정부 대북정책은 굴종적 태도로 사실을 조작하는 ‘종북공정’”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박 전 원장은 6일 “국정원을 정치로 소환하지 말라. 국정원을 과거로 되돌리려는 시도에 단호히 맞서겠다. 전직 원장에게 아무런 조사도 통보도 없이 뭐가 그리 급해서 고발부터 했는지, 이것은 예의가 아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국정원을 정치에 이용하려는 사람을 아예 뿌리 뽑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라며 특정세력을 향해 경고했다.

박 전 원장은7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국정원이 제기한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 관련 첩보 보고서를 무단 삭제한 혐의를 부인하면서 "그러한문건을 본 적도 없고 또 봤다고 하더라도 (삭제를) 지시할 바보 국정원장 박지원도 아니다"라며 "모든 보고서가 메인 서버에 들어가고, 내가 (삭제를) 지시했다 하면 지시한 날도 들어가고 삭제된 것도 (서버에) 남는다"고 항변했다.

결국 여권과 문재인 정부 전직 국정원장 간 '진실공방'은 결국 객관적 자료에 의해 결론이 지어질 전망이다.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박 전 원장이 무단 삭제한 보고서는 고 이대준씨가 북한군 총격에 사망한 뒤 그의 시신이 불태워졌다는 내용과 관련한 군사 비밀 정보와그 과정을 감청한 파일 원본으로 전해진다.

정부 소식통과 군 전문가들에 따르면 군 정보 당국은 신호정보(전자신호와 통신 등으로부터 획득한 정보) 전문 사령부를 두고, 전방과 가까운 지역에 감청부대를 운영하고 있다. 미국 또한 위성 등을 통해 북한군 교신을 감청하고 있다.

이들에 따르면 서해의 감청부대는 2020년 9월 22일 7시간 동안 이씨가 사살되고 시신이 소훼되는 과정을 파악했다. 이러한 내용의북한군 통신은 고스란히 감청정보(SIㆍ특별정보)에 담겼는데 이것이 지워진 것이다.

이러한 조처는 상부의 지시에 따라 이뤄지는 것으로 국정원은 그 주체를 박지원 전 원장으로 특정하고 있는 셈이다.

일각에서는 북한군 통신을 감청한 미국이 자료를 보관해오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뒤 '원본'을 건네 국정원 고발로 이어졌다는 주장을 편다.

박 전 원장은 보고서가 메인 서버에 남기 때문에 (보고서)삭제를 지시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는데 '삭제' 사실은 분명하게 존재하기 때문에 이 부분을 해명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해수부 공무원 이씨의시신이 소각된 직후인 2020년9월 23일 오전 1시와 10시에 청와대 안보실은 국정원장, 국방부 장관 등 관계 장관이 참석한 회의를 열었다. 그런데 당시 국방부는 이씨의 월북 가능성에 대한 의견을 담은 별도 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SI(군 특수정보)를 취급하는 군이 별도 의견을 내지 않았다면 월북의 근거가 되는 보고서나 판단 자료를 만들 수 있는 주체는 국정원뿐이다. 따라서 '표류' 등의 가능성이 제기됐던 1차 회의 보고서가 사라지고 '월북'으로 종결된 과정에 대해 박 전 원장의 해명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박상룡 기자psr21@korearepo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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