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영변 핵시설-대북제재 해제'에 '회의론' vs '긍정론'
"2년간 무기고도화 北, 상황 바뀌었다" vs "불가능한 일 아냐"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News1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News1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대화의 장'으로 북한이 나올 것을 촉구하고 있지만 북측은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을 앞세워 북미 대화 재개 기대를 일축하며 그 공을 미국측에 넘겼다. 

북한과 미국이 서로 대화 교착의 원인을 상대에게 돌리면서 당분간 기싸움 형국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교착 국면을 타개하고 북미 대화를 촉진시킬 수 있는 '불쏘시개' 역할로 지난 2019년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불발로 끝났던 '영변 핵시설 폐기와 일부 대북제재 해제' 카드가 다시 거론되고 있다.

외교가에서는 북미 교착의 원인을 제공한 '영변 핵합의 불발' 지점이 적어도 북미 대화의 입구 역할은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긍정적 관측'이 나오는 반면, 향후 북미대화에서 전혀 역할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북미 사실상 "대화 나서라"…서로 공 떠넘기기

바이든 행정부는 '잘 조정된 실용적 접근'(calibrated practical approach)을 기치로 최대한의 '유연성'을 강조한 대북정책을 선보였다. 단 구체 내용은 대외적으로 알리지 않았다.

지난달 초 북한에게 대북정책을 설명하기 위한 목적의 접촉을 제의했지만, 북측은 '잘 접수했다'는 반응만 보인 채 대화의 장으로 나오지 않고 있는 상황.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의 '손짓'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 19일부터 23일까지 4박5일 일정으로 방한한 성 김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평양으로부터 긍정적 회신을 기다린다" "언제 어디서든 조건 없이 만나자"며 북측의 호응을 촉구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바이든 행정부는 또한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가 지난 17일 진행된 제8기 제3차 전원회의 3일차 회의에서 '대화·대결'을 모두 언급한 것을 두고 '긍정적 동향'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김 총비서의 발언은 '흥미로운 신호'라고도 했다.

그러나 북한의 반응은 냉담했다. 김여정 부부장은 22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공개한 담화를 통해 설리번 보좌관의 발언을 겨냥, "조선 속담에 '꿈보다 해몽'이라는 말이 있다"며 "미국은 아마 스스로를 위안하는 쪽으로 해몽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일련의 정황을 두고 북미 간 '대화의 공'을 서로 떠넘기는 모습이 감지되고 있다는 평가가 제기된다. 미국은 '대화를 위한 인센티브 제공은 없다'는 원칙론, 북한은 '명분 부족'이라는 이유로 서로 평행선을 긋고 있다는 것이다.

◇교착지점 '영변 해법'이 출발점되나

일각에서는 이 같은 상황을 타개할 아이디어로 바이든 행정부가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싱가포르·판문점 선언을 계승하기로 한 만큼, '결렬'로 끝난 2019년 2월 북미 정상회담 때로 시간을 되돌려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는다.

김 총비서가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에게 요구했던 '영변 핵시설 폐기-주요 대북제재 교환' 카드를 대화 재개의 '입구'로 삼아야 한다는 것.

특히 바이든 행정부가 트럼프 행정부의 '일괄타결식'이 아닌 '단계적 접근'을 추구하는 만큼, 대화의 시작을 북측이 과거 원했던 지점으로 상정한다면 북한이 호응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인 것이다.

김 총비서는 당시 회담에서 지난 2016년 이후 채택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결의 5건의 해제를 미국 측에 협상 카드로 제시했지만, '영변 핵시설 폐기+알파'라는 미국의 '맞수'로 결국 회담은 결렬됐다.

◇전문가, '영변 핵시설-제재 해제' 두고 '회의론' vs '긍정론'

전문가들은 북미 대화 재개에 있어 영변 '핵시설 폐기-대북제재 해제' 카드가 불쏘시개 역할을 할지를 두고 의견이 갈렸다.

먼저 2년이 넘는 동안 북한의 전략전술무기 수준이 더욱 고도화 됐고, 북측 입장에서도 더 이상 영변 핵폐기와 대북제재 해제 교환 시나리오는 매력적인 협상이 아니라는 '회의론'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북한은 2019년 이후부터 연쇄적으로 전략전술무기 개발에 나섰고 조만간 고도화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까지 선보이면 선제·보복타격 능력이 증강되는 것"이라며 "이러한 상황은 미국의 대북적대시 정책 선 철회를 요구하는 북한이 과거보다 더 많은 것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홍 연구위원은 또한 "미중 전략경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북한은 나름대로의 '전략적 이점'을 활용하려 할 것"이라며 "(중국의 뒷배 등도 고려했을 때) 대북제재 하나에 얽매일 상황이 아닌 것"이라고 했다.

그는 북미 대화 재개를 위한 현실적인 대안으로 '외교적 조치'에 주목하며 "종전선언과 북미 간 대표부 설치 등 낮은 단계로부터의 신뢰 구축은 북한 입장에서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며 "또 부수적으로 인도적 지원과 경제협력 등도 고려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진구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도 "영변 핵폐기와 대북제재 완화가 북한에게 대화 참여 명분이 되기는 어렵다"며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선 철회를 요구하는 북한이 관심을 가질만한 것은 한미연합훈련과 전략자산 도입 등을 포함해 모든 걸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대화할 용의가 있다는 식의 의사가 나오느냐 여부"라고 말했다.

조 교수는 "미국이 조건 없이 만나자고 하는 데, 북한 입장에서 미국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만 얘기할 수 있기 때문에 시큰둥한 것"이라며 "북측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모든 문제까지 논의할 용의가 있다고 표명하지 않는 한 북한은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영변 핵시설 폐기-대북제재 해제 교환' 시나리오가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평가하면서 "다만 영변-제재 해제는 빅딜에 가까운 만큼 바이든 행정부는 더 작은 부분부터 접근하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 센터장은 "바이든 행정부 북한의 핵동결부터 접근할 가능성이 있다"며 "동시에 북한에게는 최종 상태의 비핵화에 대한 약속을 받으려 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북미가 만나면 핵동결과 대북제재 완화가 논의될 가능성이 크다"며 "다만 지금은 서로 기싸움을 하고 있고 8월 한미연합훈련이 있는 만큼 오는 7~8월까지는 북미 대화 재개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덧붙였다.

김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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