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에 무마·회유·압박·방치…그리고 죽음
공군총장 사의표명에도 사건은 '현재진행형'

'성추행 피해' 공군 부사관 사망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이성용 공군참모총장이 4일 전격 사의를 표명했지만 사건 자체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고(故) 이모 중사에 대한 성추행 가해자 장모 중사가 강제추행 치상 혐의로 국방부 검찰단의 수사를 받고 있는 데다, 사건 무마를 위한 회유·압박 등 이 중사에 대한 2차 가해자로 지목된 노모 상사 및 노모 준위 등에 대한 군 수사당국의 추가 조사가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뉴스1에 따르면 유족 측은 이 중사의 안타까운 죽음이 최근 언론보도를 통해 외부에 알려진 뒤 군 당국의 사건 수사 속도가 빨라진 만큼 일단 그 추이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일각에선 "피해자가 이미 숨진 상황임을 감안할 때 사건의 진상이 낱낱이 밝혀질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국방부와 공군, 그리고 유족 측 설명을 종합해볼 때 숨진 이 중사가 장 중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시점은 지난 3월2일이다. 당시 충남 서산 소재 제20전투비행단에서 근무하던 이 중사는 상급자 노 상사의 '지시'로 부대 선임인 장 중사와 함께 부대 밖 저녁 회식자리에 참석했다.

이때 이 부대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조치의 일환으로 '회식 금지령'이 내려져 있었다. 그러나 노 상사는 이를 어기고 지인의 개업 축하를 위한 회식자리에 이 중사와 장 중사 등을 불러냈다.

유족 측은 이 회식 참석 인원이 5명 이상이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게다가 노 상사는 "야간 근무를 바꿔서라도 나오라"며 이 중사에게 회식 참석을 강요했다고 한다.

성추행 사건은 이 중사와 장 중사가 회식을 마친 뒤 부대 내 관사까지 함께 차량을 타고 돌아오던 중 벌어졌다. 차량 운전자는 A하사였다.

장 중사는 차량 뒷자리에 나란히 앉은 이 중사의 몸을 만지고 신체 접촉을 시도하는가 하면, 자신의 특정 신체 부위도 이 중사에게 강제로 만지게 했다.

이 중사는 "이러지 말라"며 장 중사의 행동을 제지했으나 장 중사는 계속 추행하려 했고, 반항하던 이 중사는 차에서 내려 관사까지 2㎞가량을 걸어갔다. 그러자 장 중사도 뒤따라 내려 이 중사를 따라갔다고 한다. 유족 측은 이 과정에서 재차 추행 시도가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중사는 이후 성추행 당시 상황이 녹음된 차량 블랙박스 파일을 '증거물'로 공군 군사경찰에 제출했지만, 차량 운전을 맡았던 A하사는 군사경찰 조사에서 "성추행이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성추행 신고와 계속된 회유·압박…남편에도 사건 무마 요구

공군 자료를 보면 이 중사가 직속상관 노 준위를 통해 성추행 피해 사실을 신고한 건 3월3일이다.

노 준위는 3일 오후 9시50분쯤 소속 대대장에게 이 중사의 성추행 피해 신고 사실을 유선 보고했고, 이에 대대장이 오후 10시30분쯤 부대 군사경찰대대장에게 연락하면서 사건이 정식으로 접수됐다.

그러나 유족 측은 이 중사가 장 중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직후 차에서 내려 휴대전화를 이용해 당시 회식자리를 주선한 노 상사에게 제일 먼저 피해 사실을 알렸다고 전하고 있다.

또 유족 측에 따르면 이 중사가 노 준위에게 성추행 피해 신고 의사를 밝힌 시점도 3일 오전으로 공군 측의 밝힌 신고 접수 시각과 10시간가량 차이가 난다. 이 사이 이 중사의 상관들로부터 "없던 일로 해주면 안 되겠느냐"(노 상사) "살면서 한번은 겪을 수 있는 일이다"(노 준위)는 등의 회유와 압박이 이어졌다는 게 유족 측 설명이다.

이들 상관은 같은 부대에서 근무하던 이 중사의 남편(당시 약혼자) B씨에게도 "장 중사의 인생을 생각해 한 번 용서해 주는 게 어떻겠느냐. 이 중사를 잘 좀 설득해 달라"며 사건 무마를 요구했다.

이와 관련 유족 측은 이달 3일 직무유기·강요미수 등의 혐의로 노 상사와 노 준위를 국방부 검찰단에 고소했다. 고소장엔 노 준위도 과거 이 중사를 성추행한 사실이 있다는 내용도 적시됐다.

이 중사는 피해 신고 뒤 청원휴가(3월4일~5월2일)를 냈다. 부대 전속도 요청했다. 그러나 이 중사는 휴가 기간 중에도 대부분 부대 내 관사에 머물렀고 3월5일 부대 군사경찰로부터 피해자 조사를 받았다.

특히 공군 측 자료엔 이 중사가 휴가 기간 부대에 배정된 성고충 전문 민간 상담관으로부터 총 22차례에 걸쳐 상담을 받은 것으로 기록돼 있다. 그러나 이 가운데 상당수는 단순 전화통화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상담관은 4월15일 이 중사가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내자 민간 성폭력상담소를 통해 2주 간 6차례에 걸쳐 상담과 정신과 진료를 받도록 했다. 그러나 이 중사는 청원휴가 복귀 뒤엔 민간 상담·진료를 받지 못했다.

공군 측은 또 3월4일부터 이 중사와 장 중사에 대해 '피·가해자 간 분리' 조치를 취했다고 밝혔지만, 실제 장 중사가 '파견' 형식으로 다른 부대(경남 김해 소재 5공중기동비행단)으로 나간 건 사건 발생 보름 뒤인 3월17일이었던 것으로 파악됐댜. 이 중사가 휴가를 쓰지 않았더라면 부대 내에서 장 중사를 계속 마주칠 수도 있었단 얘기다.

군사경찰은 성추행 당시 상황이 녹음돼 있는 증거물(블랙박스 파일)을 확보하고도 장 중사를 구속하지 않았다. "부대 내에서 거주하기 때문에 도주 등의 우려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장 중사는 '파견' 당일이던 3월17일 군사경찰로부터 받은 가해자 조사를 받은 뒤 4월7일 기소의견(강제추행 혐의)으로 군 검찰에 송치됐다.또는 기억나고 일부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했음에도 추가 조사는 실시하지 않았다.

장 중사는 이 중사에게 "용서해주지 않으면 죽어버리겠다"는 등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까지 보냈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군사경찰은 이 같은 '2차 가해'의 증거가 될 수 있는 휴대전화 역시 압수하지 않았다.

군 검찰이 장 중사의 휴대전화를 임의제출 형식으로 확보한 건 이 중사가 숨지고 열흘이 지난 5월31일, 이 중사의 사망 사실이 언론보도를 통해 처음 알려진 날이었다.

◇조력 없는 국선변호인…전속 부대에선 "관심 병사" 취급

공군본부 검찰부는 이 중사의 성추행 신고와 관련해 피해자 조사 나흘 뒤인 3월9일 국선변호인(공군 법무관)을 선임해줬다. 피해자 조사 땐 이 중사 홀로 출석했다는 것이다.

또한 공군 측 자료를 보면 이 중사가 국선변호인과 전화 통화를 한 횟수도 4월27일과 5월17일 등 2차례에 불과한 것으로 돼 있다.

뉴스1에 따르면 유족 측은 이 국선변호인이 자신의 결혼과 코로나19 관련 격리조치 등 개인사정을 이유로 이 중사에 대한 법적 조력이란 역할을 사실상 방기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관련 유족 측은 국선변호인에 대한 고소 또한 검토 중이다.

이 중사는 5월3일 청원휴가 종료에 이어 2주 간 자가 격리를 마친 뒤 경기도 성남 소재 15특수임무비행단으로 전속 명령을 받았다. 그리고 같은 달 18일부터 15비행단으로 출근했다.

그러나 유족 측은 "15비행단 간부들도 이 중사를 마치 '관심 병사' 대하듯 하며 2차 가해를 이어갔다"고 주장하고 있다. 유족들은 "이 중사가 20비행단에서 15비행단으로 전속되는 과정에서 '성폭력 피해자 보호 및 비밀유지 의무'가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중사는 지난달 21일 반차 휴가를 내고 남편 B씨와 혼인신고를 한 뒤 20비행단에 있는 남편 관사에 갔다. 그리고 B씨는 야간근무를 마치고 돌아온 22일 오전 숨져 있는 이 중사를 발견했다. 이 중사는 자신의 '마지막 모습'을 휴대전화 카메라에 남겼다고 한다.

이후 부검 등을 마친 이 중사의 시신은 현재 경기도 성남 소재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에 안치돼 있다. 그러나 사망 후 보름이 지났음에도 이 중사의 빈소는 아직 마련되지 않고 있다. 이 중사의 "억울한 죽음"을 풀어주기 전엔 장례식을 치를 수 없다는 부모 등 유족들의 뜻 때문이다.

지난달 31일 언론보도를 통해 이 중사 사건이 소개된 뒤 관련 수사는 국방부로 이관됐고, 성추행 사건 발생 3개월 만인 이달 2일엔 피의자 장 중사가 구속됐다. 그리고 4일엔 공군본부 군사경찰단과 이 중사가 생전에 근무했던 부대들을 대상으로 국방부 검찰단의 압수수색과 조사본부의 현장 수사가 진행되는 등 관련 수사가 계속되고 있다.

김성지 기자 ksjok@korearepo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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