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소비자연맹,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의료소비자 데이터주권' 토론회 개최
법안 10년 넘게 국회 공전…'환자의 의료정보 자기 결정권 우선돼야"

 

한국소비자연맹이 31일 한국소비자연맹 정광모홀에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사례로 본 의료 소비자 데이터 주권’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고 있다. Ⓒ 한국소비자연맹
한국소비자연맹이 31일 한국소비자연맹 정광모홀에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사례로 본 의료 소비자 데이터 주권’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고 있다. Ⓒ 한국소비자연맹

[편집자주] 우리는 불확실성이 극대화된 시대를 살아가고 있으며, 탈산업 사회와 디지털 자본주의가 강화시키는 불평등은 고착화되가고 있는 상황이다. 그동안 국가와 시장이 개인과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주역으로 충분한 역할을 해왔으나 불확실성이 일반화되면서 점차 문제해결에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강한 공동체와 시민사회 영역이 국가와 시장으로 기울어졌던 사회의 균형을 회복시킨다고 말한다. 동시에 국가 뒤에서 소극적 위치에 머물렀던 시민권력과 시민사회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현시대의 문제를 해결해가며 더 나은 세상을 열어가기 위해서는 적극적 시민과 역동적 시민사회가 요구된다. 기획 <시민, 세상을 바꾸다> 는 그러한 개인과 시민사회를 주체로 세우는 작업이다.

 

의료소비자인 국민의 편의와 사회적 비용을 줄이자는 취지로 출발한 ‘실손의료보험(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방안이 10년 넘게 제도화 되지 못하고 있다. 직접 관계기관인 보험업계와 의료계가 맞서고 있는데다 소비자 주권 측면에서 이견이 상충하기 때문이다. 

지난 20대 국회에 이어 21대 국회에서 청구 간소화 법안이 연이어 발의됐지만, 의료계 반발에 부딪혀 통과되지 못했다. 현재 국회 정무위원회에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위한 보험업법 개정안 총 5건이 계류 중이다. 

이런 상황에 한국소비자연맹(회장 강정화)는 31일 의료소비자를 중심으로 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사례로 본 의료 소비자 데이터 주권’을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번 토론회는 소비자 중심의 보건의료 환경을 만들기 위해 조직된 한국소비자연맹 소비자중심건강포럼(대표 오상우 동국대 의과대학 교수) 주)이 주최했다.

토론회는 강건욱 교수(서울대 의과대학)가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서비스와 소비자 권리’에 대해, 장윤정 교수(국립암센터)는 ‘의료정보 제공으로 인한 보험차별 우려와 윤리적 쟁점’을, 이은솔 대표(메디블록)는 ‘개인의 의료정보 주권을 바탕으로 하는 실손보험 청구서비스’에 대해 각각 주제발표를 했다.

이어 김준현 부사장(레몬헬스케어), 김지훈 이사(손해보험협회), 변웅재 변호사(법무법인 율촌), 신성식 기자(중앙일보 논설위원), 정지연 사무총장(한국소비자연맹) 등이 토론자로 참여했다.

◇주제발표 : "의료정보 수요자 중심으로 활용돼야"

첫 주제발표를 한 강건욱 교수는 의료정보는 수요자 중심의 활용이 필요하고, 이것이 1차 목적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 교수는 2020년 실손보험 청구는 1억건 이상으로 혜택을 누리는 소비자가 많지만, 실제 병원 재방문이나 증빙서류 발송 등 번거로움 때문에 실손보험을 청구하지 않는 소비자도 상당하다고 설명했다.

이에 2009년 국민권익위가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권고한 바 있고, 최근 국회에서도 실손보험 간소화를 위한 보험업법 개정안이 다수 발의됐지만 의협에서는 개인정보 유출과 심평원 개입 등을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고 했다.

강 교수는 “의료정보는 공급자 중심의 보호 측면보다는 수요자 증심의 활용 측면이 필요하고, 자신을 위한 1차적 목적으로 사용돼야 한다”며 “이를 위해선 환자가 자기 정보를 언제든 다운로드하고 열람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윤정 교수는 보험차별의 문제와 소비자 보호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장 교소는 “우리나라의 건강보험 보장률은 60%로 다른 선진국에 비해 낮은 편이고, 이에 사보험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게 현실”이라며 “보험 차별을 방지하기 위한 법이 있으나 사보험에서는 질병에 따른 보험 차별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또한 유전자 검사와 연결된 상품 서비스를 하고 있는데, 추후 유전자 정보에 따른 차별이 우려된다고 했다.

장 교수는 “4차 산업의 도래로 건강증진형 보험상품이 확대되면서 건강 관련 데이터가 보험회사로 수집돼 개인의 건강정보가 모아지는 현상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며 “개별 계약자(소비자) 중심의 상품 개발이 활발해지면 열위에 있는 소비자 보호를 위한 패러다임 변화가 요구된다”고 했다.

장 교수는 “보험상품 개발, 가격 산출, 보험료 심사 청구 등 의료정보 활용 시 차별적 요소와 편향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며 “사회적 정책 안에서 편향성을 어디까지 수용하고 어떻게 소비자 권리를 보호할 지에 대한 협의와 개인 정보에 대한 관리 감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은솔 메디블록 대표는 기술발전으로 인해 개인의 의료정보 위변조를 막아 의료주권이 신장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현재 실손보험 청구 프로세스는 개인 의지대로 서류 발급·선별 제출이 가능하나 의료 기관 방문 등으로 접근성과 휴대성이 떨어지고, 보험사 입장에서는 위변조 가능성과 데이터 입력 비용 부담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최근 등장한 온라인 서비스는 블록체인, DID(Decentralized Identifiers, 신원 확인 기술), 영지식 증명(Zero knowledfe proof) 등 최신 기술과 결합해 비대면으로 서류발급.선별 제출하고, 보험사는 의료기관 등에 별도의 확인 없이 위변조 검증을 하고 자동화된 시스템으로 빠른 보험료 지급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패널토론 : "청구 간소화 필요…소비자 주권 보호돼야" 

김준현 부사장(레몬헬스케어)은 "“청구 간소화는 환자 입장에서 언제 어디서나 서류없이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는 이점이 있어 재사용율이 높지만 현재 발의된 법안은 병원 대리 청구, 심평원 개입 등 핀테크 기업에 제약을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부사장은 ”정부에서는 서비스 규범, 규율 등만 정하면 개인 중심의 서비스를 이뤄낼 수 있다고 본다“며 ”보험사에서는 여전히 전산화되지 않은 부분이 많아서 전향적으로 핀테크 서비스를 수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변웅재 변호사는 청구 간소화에서 의료 데이터의 소비자 권리를 인정한다면 소비자 편의에 좋은 제도라면서도 소비자가 의료 정보에 대한 지식이나 경험이 없어서 잘못 관리하면 노출 위험이나 오용이 우려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소비자의 자기결정권에만 의존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소비자단체가 역량을 키우거나 등 전문성을 갖춘 기관에서 소비자의 의료정보 관리를 지원해줄 수 있는 제3의 조력 서비스가 필요”고 주장했다. 

김지훈 이사는 청구 간소화의 필요성과 함께 앞서 거론된 개인정보 유출이나 보험차별 문제에 의문을 제기했다.

김 이사는 “의료데이터는 개인의 민감 데이터와 전국민 보건의료 빅데이터 두 가지로 구분해 논의해야 한다”며 “실손보험 데이터는 개인의 민감 데이터로 보험료 지급 등 목적으로 개인에게 동의 받아서 오래 전부터 보험사가 제공받고 있는 정보로 청구 전산화로 새로운 데이터를 제공받는 것은 아니다”며 보험사의 개인정보 유출이 과도한 우려라고 밝혔다.

또한 “보건의료 빅데이터는 보험사가 국민의 새로운 위험을 보장하고 유병자를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목적으로, 원데이터가 아닌 통계정보 수준이므로 보험차별이 불가능한 구조”라고 주장했다.

김 이사는 핀테크업체를 통한 청구 간소화에 대해서는 “핀테크 업체에서 일일이 동네 병의원에 연결해서 청구하기 쉽지 않으므로 심평원 같은 국가기관에서 일률,일괄적으로 하는 방향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신성식 논설위원은  "청구 간소화는 소비자 편익 측면에서 매우 효과적”이라며 “소비자 데이터 주권에서는 개인이 동의한 정보에 대해 종이나 전산이나 크게 달라지는 게 없다”고 밝혔다. 

신 논설위원은 “진료 정보는 데이터 주권 측면에서 보면 소비자가 자신의 데이터를다운로드 받고 관리할 수 있는 것은 긍정적으로 보인다”며 “소비자단체가 의료소비자와 실손보험 오남용에 대한관심을 더욱 갖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지연 사무총장은 "소비자에게 보험료 청구의 편의성을 높이고 사각지대를 없애는 것이 중요하다”며 “디지털 사회에서 소비자 데이터 주권을 위해선 소비자 신뢰 구축이 가장 중요한데, 데이터경제에서 알 권리, 선택할 권리는 중요한 가치”라고 말했다.

정 사무총장은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로 소비자 측면에서의 우려는 병력과 유전력등 보험 차별, 소비자 자기결정권 침해 등이 있으므로, 이에 대한 감시자 역할을 한국소비자연맹이 지속적으로 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는 보통 앱을 통해 이뤄지는데 고령소비자에 대한 고려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임인영 기자 liym2@korearepo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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