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강조하며 '공' 넘긴 한미회담에 반발 가능성
美 대북특별대사 임명…비공식 접촉에도 촉각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

"공은 북한 코트에 있다. 북한이 실제로 관여를 하고자 하는지 기다리며 지켜보고 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23일(현지시간)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외교적 해법을 재차 강조하며 북한의 호응을 주문했다. 이날 발언은 지난 21일 문재인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의 첫 한미정상회담 이틀 후 나온 점에서 주목된다. 

그러나 북한은 한미정상회담이 끝난 뒤에도 아직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북한의 '침묵'을 놓고 여러 해석이 나올 법 하지만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선 가장 관심사인 북한핵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 또한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에 대한 적대정책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대북 제재 완화등 '행동'으로 보여준 것도 없다.

북한 입장에선 선뜻 반응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주목되는 것은 블링컨 장관이 "공은 북한 코트에 있다"고 말한 점이다. 한미 정상의 공동성명만 보면 북한에 건네진 '공'은 감춰져 있는 것으로 비쳐진다.

따라서 한미정상회담 이후 북한의 반응은 공동성명에 나타난 것보다 미국이 건넸다는 '공'에 상응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 '비핵화' 문제에 크게 물러선 韓美…북한 대응 주목 

이번 한미정상회담의 가장 큰 의제는 미국이 밝혔듯 '북한'이었다. 물론 백신이나 반도체도 주요 현안이지만 두 나라 정상까지 나설 정도는 아니다.

북한과 관련해선 여러 논의가 나올 수 있지만 '비핵화' 문제가 최대 현안이다. 하지만 한미 두 정상은 이 부분에 대해 특별히 대응하지 않고 일반론적인 합의에 머물렀다.

한미 두 정상은 공동성명에서 “2018년 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 공동성명 등 기존 남북·북미 간 약속에 기초한 외교와 대화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정착을 이루는데 필수적이라는 공동의 믿음을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싱가포르 공동성명에는 한미 양국이 2018년 판문점 선언을 지켜간다는 내용이 있어 이번 정상회담에서 북한핵에 대한 입장은 4·27판문점선언에 담겨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4·27판문점선언 중 '비핵화' 부분은 "남과 북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하였다"고 돼있다. '한반도 비핵화' 이전에 '완전한 비핵화'가 전제돼 있다. 즉, 핵을 보유한 전 세계 핵보유국들이 핵을 내려놓는 '완전한 비핵화'가 됐을 때 북한도 핵을 양보할 수 있다(한반도 비핵화)는 것으로 사실상  '북한 비핵화'는 불가능에 가깝다. 

따라서 한미 정상이 '비핵화' 문제를 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 공동성명을 준용한다는 것은 북한에 크게 양보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또한 판문점선언에는 문 대통령이 비핵화 대화의 ‘입구’로 제안했던 종전선언 등이 담겨 있어 정상회담 공동성명은 북한에 크게 불리한 것이 없다. 

바이든 대통령이 회견에서 성 김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대행(주인도네시아 대사)을 대북특별대표로 임명한 것도 북한과의 대화에 열려있는 태도를 보여준 것으로 북한이 반발할 이유가 없다.

◇ 美 새 대북정책 '행동'으로 보여야…美 태도따라 北 공세 취할 수도

한미 양국은 정상회담을 통해 백신 협력과 한국의 대미 반도체 투자 등 가시적인 성과를 홍보했지만, 정작 이번 회담의 주의제인 '북한'과 관련해선 특별한 결과물이 나오지 않았다. 다시말해 북한에 대한 '유인책'은 없었다.

대북 제재 완화나 적대시 정책 철회 등 북한이 요구하는 전향적인 입장 변화는 나타나지 않았고, 오히려 북한을 포함한 국제사회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관련 결의를 이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간 북한이 반발해 온 인권문제 또한 원칙적 수준으로 공동성명에 언급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 성사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와 정상 회담이 가능하지만 비핵화에 관해 북한의 상당히 진전된 약속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가 어떤 약속을 한다면 나는 그를 만날 것"이라며 "우리가 만나는 데 대한 약속이 있다면 이 약속은 그의 핵무기에 관한 논의가 있다는 것이어야 한다"고 밝혔다.

북한은 보유핵은 결코 포기하거나 양보하지 않기 때문에 이 부분이 진전돼야 북미 정상회담을 할 수 있다는 바이든 대통령의 말은 김정은 총비서와의 정상회담을 피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대화는 강조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새로운 셈법 없이 '공'만 넘긴 한미의 태도에 북한이 반발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강대강·선대선' 원칙을 천명하고 미국에 선 변화를 주장해 온 북한 입장에서 이번 한미회담 결과는 성에 차지 않는 결과로 여겨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북한은 바이든 행정부를 향해 "발편잠(편한 잠)을 자고 싶은 것이 소원이라면 시작부터 덧없이 잠 설칠 일거리를 만들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경고했던 것처럼 도발 담화로 또다시 자신들의 대미 원칙을 강조할 수 있다. 도발로 존재감을 과시하며 미국의 변화를 끌어내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바이든 대통령이 "북한 문제에 잘 알고 있다"면서 임명한 성 김 대북특별대표와 비공식적 접촉에 나서리란 관측도 나온다. 북한과 직접 협상한 경험을 지닌 익숙한 인물인 김 대행을 특별대표로 임명한 것을 북한도 긍정적 메시지로 받아들일 것이라는 평가다.

앞서 북한은 한미회담 전 대북정책 검토 결과를 설명하겠다는 미국 측 제안에 "잘 접수했다"라고 반응한 것으로 알려진 바 있다. 실무 수준의 답변이기는 하지만 그간 접촉 시도에 무대응으로만 일관했던 북한이 반응을 보였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는 해석이 제기됐던 대목이다.

이런 상황에서 주목되는 것은 앞서 블링컨 장관이 말한 "공은 북한 코트에 있다"고 한 점이다. 아직 '공'의 실체는 알려진 바 없으나 북한에게 '당근'이 될 수 있는 '숙제'라는 말이 돌고 있다.

베이징의 정통한 대북소식통은 "북은 한미정상회담에서 특별히 나온 게 없다는 입장"이라며 "블링컨이 말한 '공'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있다"고 전해왔다.

북미 간, 남북 간 대화 가능성은 북한의 태도에 떠ㅏ라 매우 유동적인 상황이다.

민대호 기자 mdh50@korearepo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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