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신청인들, 판매금지 구할 사법상 권리 없어"…신천인들 항고
출협 "北 출판 판금시대 지나"…통일부 "춢판·판매 지켜볼 것"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김일성 회고록<세기와 더불어>의 판매·배포금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이 기각했다. 서울서부지법 민사합의21부(부장판사 박병태)는 13일 <세기와 더불어> 총 8권(도서출판 민족사랑방)의 판매·배포금지 가처분 신청에 대해 기각 결정했다.

<세기와 더불어>는 김일성의 항일투쟁사를 담은 책으로 1992년 4월15일 김일성 80회 생일을 계기로 출판돼 1998년까지 총 8권이 조선노동당 출판사에서 발간됐다. 국내 출판사 민족사랑방 지난 1일 이 책을 발간했고, 현재 예스24·알라딘 등 국내 온라인 서점을 통해 예약판매됐다.

앞서 자유민주주의연대(NPK) 등 단체와 개인들은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로 인정된 김일성 일가를 미화한 책이 판매·배포되면 대한민국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인간의 존엄성·인격권을 침해하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해한다며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에 재판부는 "이 서적의 판매·배포 행위로 인해 신청인들의 명예가 훼손되는 등 인격권이 침해되는 경우에는 행위의 금지를 구할 수 있겠지만, 이 사건에서 서적 내용이 신청인들을 직접적인 대상으로 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특히 "이 서적이 국가보안법상 형사 처벌되는 이적표현물에 해당한다는 사정만으로 이 사건 행위가 신청인들의 인격권을 침해했으니 금지돼야 한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어 "신청인들은 자신들보다 대한민국 국민의 인격권이 침해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이 사건 행위의 금지를 구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인격권은 전속적 권리로서 신청인들이 임의로 대한민국 국민을 대신해 신청할 수는 없다"고 했다.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던 법치와자유민주주의연대(NPK) 등은 같은 날 곧바로 항고장을 제출했다. 또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역시 14일 판매 및 배포금지 가처분 신청을 새롭게 제출할 방침이다.

한편, 국내 출판계를 대표하는 (사)대한출판문화협회(회장 윤철호, 출협)는 환영 논평을 내고  "이번 법원의 결정은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 규정이 더 이상 출판의 자유를 침해하는 장치로 사용될 수 없음을 천명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면서 가처분 신청이 기각된 만큼 조만간 교보문고 등 서점들이 독자를 위해 판매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앞서 언론 보도를 통해 간행물윤리위원회의 유해간행물 심의 대상이 될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자 책을 유통하는 한국출판협동조합은 공급 중단을 통보했고, 교보문고 등에서도 즉각 판매를 중단했었다.

이후 간행물윤리위원회가 불심의를 결정했음에도 경찰과 통일부에서는 출간 경위를 파악해 국가보안법 등의 위반 소지가 있는지 검토하겠다고 나섰다.

이와관련해 출협은 "북한 책이라고 무조건 비판을 쏟아 붓고 '판금' 조치를 내리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먀 "이제는 학술과 남북 교류의 목적을 위해 북한 관련 책들이 학계와 시민사회에 자유롭게 개방되어야 할 때다. 낡은 유해간행물 심의 규정도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통일부 "출간 목적 승인 없어...출판·판매 지켜보겠다"

북한 김일성 주석의 항일 회고록인 '세기와 더불어'의 국내 출간을 두고 논란이 일자 통일부는 책의 반입을 승인한 적이 없다면서도 출판에 대해서는 지켜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종주 통일부 대변인은 지난달 26일 정례브리핑을 통해 한 국내 대형서점이 '세기와 더불어'를 판매 중단한 사실과 관련해 "해당 출판사에 대해 출간을 목적으로 한 반입 승인을 한 사실은 없다"면서 "출판 경위를 비롯해 통일부 차원에서 취할 수 있는 조치가 있는지 파악해보겠다"고 말했다.

통일부에 따르면 이 책은 지난 2012년 '특수 자료 취급 인가기관'(북한 관련 연구를 하는 연구기관 해당)에 판매하기 목적으로 반입 승인을 받은 것 외엔 일반에 판매하기 위한 별도 절차는 밟지 않았다.

이날 이 대변인은 "일부 시민단체가 회고록의 판매, 배포금지 가처분 신청을 이미 법원에 제출했다"며 "경찰과 사법당국에서 관련 조사와 법적 판단이 진행되는 동향을 지켜보겠다"고 언급했다.

<세기와 더불어> 책을 두고 '이적 표현물'이라는 지적과 함께 국가보안법 위반의 소지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자 교보문고에선 판매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이날 교보문고 측은 "이적표현물인 '세기와 더불어'를 구매했을 경우 국가보안법으로 처벌받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고객의 불편과 불안을 최소화하는 차원에서 신규 주문 접수를 받지 않는 것으로 정리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간행물윤리위원회는 28일 전체회의를 열고 대법원이 이적표현물로 규정한 북한 김일성 주석의 항일 회고록을 심의하고 불심의 대상이라고 결론지었다.

오동윤 기자 ohdy@korearepo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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