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대북 적대정책 철회 의사…北에 공 넘기며 '대화' 기대
남북미 관계, 21일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 결과에 촉각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과의 '기 싸움'에서 밀리면서 다음 선택이 주목받고 있다. 미국의 대북 태도에 따라 남북관계, 미중관계도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 바이든 정부 출범 초 '강경' 사라지고 '외교'에 방점

올해 초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한 뒤 북미는 서로 탐색전을 펼쳤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북정책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발표했고,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는 적대시 정책 철회를 요구하며 '강대강·선대선' 원칙으로 미국을 상대하겠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물밑 신경전이 이어지던 북미 외교 관계는 지난 3월 수면 위로 떠올랐다. 미국이 먼저 북한과의 접촉을 시도했다고 발표하고 북한이 이 사실을 확인하면서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은 당시 담화를 통해 2월 중순 미국의 '접촉 시도'를 언급하며 '대조선 적대시 정책'이 철회되지 않는 이상 접촉에 응할 필요가 없고 앞으로도 '무시'하겠다고 선언했다.

북미 갈등은 미국이 대북 정책 검토를 마무리했다고 발표함과 동시에 다시 표출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이미 북한과의 '기 싸움'에서 밀렸다. 솔직히 "패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이든 정부 출범 초만 해도 미국은 북한을 한 수 아래로 보고 당당하게 상대해갈 것을 밝혔다.  사키 백악관 대변이은 1월22일(현지시간) 언론 브리핑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북한의 핵과 탄도미사일, 다른 확산 관련 활동이 세계 평화와 안전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글로벌 비확산 체제를 훼손한다고 보고 있다는 점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며 “우리는 미국인들과 동맹국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새로운 (대북) 전략을 채택할 것”고 말했다.

미국이 대북정책으로 언급한 '새로운 전략'에 대해 사키 대변인은 “현재 진행 중인 대북 압박과 미래 외교 가능성 등에 대한 한국과 일본, 다른 동맹들과 긴밀한 협의 속에 북한의 현 상황에 대한 철저한 정책 검토로 시작된다”고 했다. 다시말해 북한에 대해 '압박'과 '외교'적 접근을 병행하겠다는 의미다.  

당시 블링컨 국무장관은 역대 정부의 대북 정책이 개선되지 않고 더 악화됐다고 언급하며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나오도록 압력을 가하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어떤 외교적 이니셔티브가 가능한지 살펴보겠다"고 밝혔다.

바이든 정부가 북한에 대해 압박과 외교를 병행하겠다는 전략에 대해 국내외 전문가들은 '압박'에 무게를 뒀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이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TV토론 등에서 북미회담의 성과를 부정하고,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를  '폭력배(thug)'라고 지칭하는 등 대북 강성 입장을 보였기 때문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김 총비서와 정상회담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진 않았지만 "핵 감축 사전 합의"를 정상회담의 전제 조건으로 내걸 정도로 북핵 문제에 완고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던 미국의 대북 태도에 이상징후가 보인 것은 바이든 신정부의 국내외 정책이 대부분 공개된데 반해 대북정책은 출범 후 3개월이 지났는데도 윤곽조차 나오지 않은 것이다.

 마침내 바이든 정부 출범 100일만인 지난달 30일(현지시간) 공개된 대북정책은 바이든 대통령이 대선 전후에 밝힌 강경 입장과는 전혀 동떨어진 방향에 맞춰졌다. 한마디로 '강공' '압박' 등 대북 강경책은 사라지고  '외교'를 중심으로 한 완화된 대북 전략이 수립된 것이다.

사키 대변인은 북핵 문제에 대해 "일괄타결 달성에 초점을 두지 않을 것이며, 전략적 인내에 의존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혀 도널드 트럼프 전 정부와 버락 오바마 전 정부의 대북 정책을 거부한 것으로 평가됐다.

북핵 문제에 대한 트럼프 정부의 '일괄타결'이나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는 사실상 북한을 '압박'하는 전략이다. 바이든 정부가 앞선 두 정부의 북핵 정책을 거부한 것은 '대화'로 문제를 풀어가겠다는 메시지로 해석된다. 

◇ 북한의 강력 반발에 美 대북 적대정책 후퇴…미국 양보 의아

북한이 미국의 대북정책을 정면으로 문제삼자 미국이 크게 물러서는 모습은 매우 이례적이다. 이전 미국 정부는 북한을 압박하고 달래기도 하면서 대북관계에서 주도권을 행사하는 모습을 보였다. 직전 트럼프 정부나 그 이전 오바마 정부 때도 성과는 그다지 없었지만 북한을 압박하며 미북관계를 주도해갔다. 

그런데 대북정책을 완료했다고 밝힌 후 보인 바이든 정부의 대북 태도는 북한에 끌려다니는 듯한 양상마저 보이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출범 100일만에 대북정책을 밝히자 북한은 곧바로 반격에 나섰다. 권정근 북한 외무성 미국 담당 국장은 2일 담화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첫 의회 연설을 언급하며 "미국의 새로운 대조선정책의 근간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 선명해진 이상 우리는 부득불 그에 상응한 조치들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며 시간이 흐를수록 미국은 매우 심각한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취임 후 첫 의회 연설 이후 에서 "북한과 이란의 핵 프로그램은 미국과 세계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며 "우리는 동맹국과 긴밀히 협력해 외교 및 엄중한 억제력으로 양국 위협을 해결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권 국장은 "미국이 아직도 냉전시대의 시각과 관점에서 시대적으로 낡고 뒤떨어진 정책을 만지작거리며 조미(북미)관계를 다루려 한다면 가까운 장래에 점점 더 감당하기 어려운 위기를 겪게 될 것"이라며 "확실히 미국 집권자는 지금 시점에서 대단히 큰 실수를 했다"고 말했다.

권 국장은 바이든 대통령의 발언과 관련해 "미국이 반세기 이상 추구해온 대조선 적대시 정책을 구태의연하게 추구하겠다는 의미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면서 "전대미문의 악랄한 대조선 적대시 정책과 항시적인 핵공갈로 우리를 위협해온 미국이 우리의 자위적 억제력을 '위협'으로 매도하는 것 자체가 언어도단이며 우리의 자위권에 대한 침해"라고 규정했다.

북한은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 철회 요구를 트럼프 전 대통령 때부터 일관되게 주장했다. 권 국장이 바이든 대통령의 연설과 대북정책에 대해 강력하게 비판한 것은 북한이 일관되게 요구해온 '적대정책 철회'에 부합하는 입장을 보이지 않는데 따른 반발로 분석된다. 

미국은 2일(현지시간) 바이든 대통령의 대북 정책 기조를 문제삼은 북한의 반발에 대해 적대가 아닌 해결을 목표로 한다는 입장을 보이며 크게 물러섰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이날 미 ABC방송 인터뷰에서 "우리의 대북 정책은 적대를 목표로 한 것이 아니다"라며 "이는 해결을 목표로 한 것이고,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궁극적으로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말했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안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장관이 3일 런던에서 열린 G7 외교·개발장관회의 참석을 계기로 회담을 깆고 있다. Ⓒ외교부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안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장관이 3일 런던에서 열린 G7 외교·개발장관회의 참석을 계기로 회담을 깆고 있다. Ⓒ외교부

◇ 블링컨, 북한에 공 넘겨…한국 '중재자 역할' 주목

서로에게 '태도 변화'라는 공을 넘기고 '말'로 외교전을 진행하면서다.

"북한이 외교적으로 관여할 기회를 잡고, 한반도 비핵화라는 목표를 향해 나갈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있는지 살펴보기를 바란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3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정책 검토 완료와 관련한 질문에 미국은 한반도 비핵화 목표를 향한 북한과의 외교전 준비를 마쳤다며 북한에 '공'을 넘겼다.

블링컨 장관은 "이제 우리는 북한과의 외교에 열려 있는 '조정된 실용적 접근법'이라 불리는 정책을 마련했다"며 "북한이 말하는 것뿐만 아니라 앞으로 수일, 수개월 실제로 어떤 행동을 하는지 볼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러한 기반 위에 관여할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북한이라고 생각한다"고도 덧붙였다.

이는 윤곽이 드러난 바이든 행정부의 새로운 대북 정책에 대해 북한이 '대조선 적대시 정책'이라고 규정하며 맹비난한지 하루 만에 나온 발언이다.

블링컨 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결단을 내리고 북미 대화의 장으로 나올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미국에 변화를 촉구하는 것은 북한도 마찬가지로, 북한은 주요 계기마다 담화를 발표하면서 '선 행동'은 없다는 점을 피력하고 있다.

미국과 북한이 '기 싸움'을 벌이며 평행선을 달리면서 좀처럼 '접점'을 찾기 어려운 형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블링컨 장관이 3일 오전(현지시간) 영국 런던 시내 그로스베너호텔에서 회담을 가진 것이 주목된다. 블링컨 장관이l 런던에서 열린 주요 7개국, G7 외교·개발장관회의에 참석한 것은 당연하지만 한국 외교 장관이 G7 외교·개발장관회의에 참석하는 것은 처음있는 일이다.

두 장관 회담 후 한미 양 측은 한미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개최될 수 있도록 긴밀히 협력하기로 했고, 코로나19 백신 협력을 비롯해 우리나라의 신남방정책과 미국의 인도·태평양 지역 구상 간 연계협력을 구축해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미국과 한국의 정보관계자 등에 따르면 두 장관은 대북정책에 대해 심도있는 논의를 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 정보관계자는 "미국이 북한을 직접 상대하는 데 부 담을 갖고 있어 한국이 대신 모종의 역할을 맡을 수도 있다는 얘기가 돌았다"고 전했다.

이들 정보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문재인 대통령이 꽉 막힌 북미관계에 돌파구를 열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한 정보관계자는 "한미정상회담이 있기 전 한국과 북한 간에 대화 채널이 열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미국이 대북정책에서 새 전략'을 마련한 만큼 북한과의 관계개선에 나설 의도가 있고, 북한 역시 외부적으론 공세를 취하고 있지만 미국이 적대정책을 바꾸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에 비춰 대북제재 완화를 기대하고 있다. 양국이 서로 원하면서도 망설이는 상황에서 한국이 중재자로서 연결고리를 만드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임기말 "남북관계 개선에 최선의 노력을 하겠다"고 신년 기자회견에 밝힌 문 대통령의 의지가 어떻게 현실화될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백민일 기자 bmi21@korearepo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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