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이건희 유산 상속 받아 삼성생명 2대주주로 부상
홍라희는 삼성생명 지분 상속 포기했지만 삼성전자 개인 최대주주 돼

지난 2010년 당시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가전전시회(CES 2010)를 찾은 삼성 이건희 회장 가족들. 왼쪽부터 장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장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 전 회장, 부인 홍라희 여사, 차녀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지난 2010년 당시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가전전시회(CES 2010)를 찾은 삼성 이건희 회장 가족들. 왼쪽부터 장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장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 전 회장, 부인 홍라희 여사, 차녀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삼성 일가가 지난달 30일 이건희 회장의 주식 지분 상속을 일단락짓고 '이재용 체제'를 공고히 했다. 이 회장이 보유하고 있던 삼성생명 지분 가운데 절반 가량을 이 부회장에게 몰아준 것이다.

그런데 상속 지분 중 가장 규모가 큰 삼성전자(15조 원) 지분이 법정비율대로 배분되면서 홍 여사는 삼성전자의 개인 최대주주(2.3%)로 올라섰다. 애초 이 부회장의 그룹 지배력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유족들이 삼성전자 지분을 이 부회장에게 몰아주거나, 적어도 홍 여사는 자식들의 이중 상속세 부담을 우려해 삼성전자 지분은 포기할 거란 전망을 벗어났다.

홍 여사가 삼성전자 개인 최대주주로 올라서게 되면서 '포스트 이건희' 시대에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 이재용, 삼성생명 지분 절반 받아 그룹 지배력 강화

애초 재계에서는 이재용 부회장의 삼성전자 지배력 강화를 위해 가족들이 삼성전자 지분을 이 부회장에게 몰아줄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이 부회장이 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삼성물산의 최대 주주이지만 삼성전자 보유 지분은 이건희 회장(4.18%)과 홍라희 여사(0.91%)보다 적은 0.7%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예상을 깨고 이 회장의 삼성전자 주식(4.18%)은 법정비율대로 상속됐다. 홍라희 여사가 9분의 3을, 자녀들이 9분의 2씩 받았다.

이에 따라 홍 여사가 2.3%의 지분율로 삼성전자의 개인 최대주주가 됐다. 이 부회장의 지분율은 1.63%이다.

대신 홍 여사는 이 회장의 삼성생명 지분(20.76%)은 한 주도 받지 않았다.

법정 상속비율이 적용된 게 아니라 이 부회장이 절반을 받고, 나머지 절반은 동생들인 이부진·이서현이 2대 1의 비율로 가졌다.

이에 따라 이 부회장은 삼성생명 지분율이 0.06%에서 10.44%로 높아지면서 개인 최대주주가 돼 그룹 지배력이 강화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그룹은 '이재용→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구조인데, 이 부회장이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이면서 삼성생명의 2대주주로 올라선 만큼 삼성전자 장악이 쉬워졌다는 것이다.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에서는 4대주주다.

홍 여사는 삼성생명 지분 상속을 포기해 아들이 그룹 지배력을 공고히 하는 것을 도왔다는 해석이 나온다.

◇홍라희, 삼성생명 상속 포기하고 삼성전자 개인 최대주주

홍 여사는 삼성전자의 주식은 법정 비율에 따라 자신이 가장 많이 상속받았다. 홍 여사는 이에 그치지 않고 당초 지분이 없던 삼성물산과 삼성SDS 지분도 자녀들보다 많은 법정 비율로 상속받고 두 회사의 주요 주주가 됐다.

물산과 SDS는 이재용 부회장과 장녀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차녀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이 고루 지분을 갖고 있던 회사다. 여기에 홍라희 여사가 새로 주주 명부에 이름을 올린 것이다.

각각이 받은 주식 상속가액도 홍 여사가 5조4000억원으로 가장 많고 이재용 부회장(5조원), 이부진 사장(4조5000억원), 이서현 이사장(4조1000억원) 순이다.

이를 두고 증권가에서는 '의외'라는 반응이 나왔다. 삼성생명 지분을 포기한 것은 아들의 지배구조 강화를 위한 희생으로 보이나 홍 여사가 삼성전자는 물론, 삼성생명을 제외한 나머지 계열사의 지분까지 상속받는 것은 예상치 못한 시나리오였다는 것이다.

홍 여사가 상속세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주식 지분을 많이 받을수록 추후 자녀들이 이중으로 상속세를 부담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 상속세 부담 나누고 가족분쟁 차단…이 부회장 조력자 가능성

홍 여사가 삼성생명을 제외한 나머지 주식을 법정 지분대로 상속받은 것은 12조5000억원 안팎의 상속세 부담을 나누기 위해서라는 관측이 많다.

이건희 회장이 받은 배당금은 삼성 일가 전체 배당금의 60∼70%에 달한다. 반면 삼성전자와 삼성생명 지분을 갖고 있지 않았던 부진·서현 자매는 상대적으로 각각 배당소득이 3∼6% 수준으로 미미해 상속세 부담이 컸을 것으로 관측된다.

이 때문에 홍 여사가 지분을 나눠받아 당장의 상속세 부담을 덜어줬을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 부회장 역시 혼자 삼성전자 주식을 모두 상속받았다면 전자 지분에 대한 상속세만 9조원에 달한다. 여기에 전자 지배의 핵심인 삼성생명 지분까지 합하면 주식만으로 홀로 10조원에 가까운 세금을 부담해야 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시나리오였다.

이번 주식 분할로 주식 상속세분 약 11조원은 홍라희 여사가 가장 많은 3조1천억원을 부담하고, 이재용 부회장 2조9000억원, 이부진 사장 2조6000억원, 이서현 이사장이 2조4000억원씩 골고루 나눠 내게 됐다.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으로 가족간 지분 협의가 충분히 이뤄지지 못한 가운데 분쟁·소송없이 지분 상속하는 방법으로 최대한 법정 지분대로 주식을 나눠갖는 방법을 택했을 것이라는 예상도 많다.

이번에 공개된 상속 결과로 볼 때 이건희 회장은 생전에 유언장을 남기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유족중 누구라도 문제를 제기하면 '세기의 소송'으로 비화되고, 이 회장 유산 사회환원의 의미도 퇴색될 수 있다.

이 회장의 유산으로 알려진 26조원 가운데 주식 19조원을 제외한 7조원상당의 현금과 부동산·미술품 등에 대한 유산 배분 내역은 공개되지 않았다.

앞으로 홍라희 여사가 보유 주식을 활용해 경영권 방어나 계열분리 등 대형 이슈에서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삼성전자의 개인 최대 주주로 올라선 홍 여사가 집안 또는 외부로부터 지배구조가 위협받을 때마다 이재용 부회장의 지원군으로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가 입장에서 삼성전자가 그룹의 핵심이면서 절대적인 배당소득의 원천이어서 딸들의 재산권 보장을 위해 지분을 똑같이 나눠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그 과정에서 홍 여사가 분쟁을 막기 위해 법정 지분 상속을 택해 혹시 모를 딸들의 반란을 막고, 아들의 당장 상속세 부담을 덜어주면서 경영권 안정을 지원하는 조력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상연 기자 lsy@korearepo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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