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일괄타결·오바마의 전략적 인내 '폐기'…'단계적 접근' 제시
대북정책 구체적 내용 없어…北 '시간' 불리, 공세로 나올 수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30일(현지시간)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한 지 꼭 100일 만이다. 이날 공개된 대북정책은 핵심 키워드를 중심으로 한 개략적인 얼개로, 향후 어떤 실질적인 구체성을 더하며 본격 실행에 옮겨질지 관심을 끈다. 

◇ 美, 실용주의·단계적 대북 접근…구체적 안(案) 불투명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에어포스원 기내 브리핑에서 대북정책 검토 마무리 사실을 확인한 뒤 목표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면서 "일괄타결 달성에 초점을 두지 않을 것이며, 전략적 인내에 의존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역대 미 정부가 추구했던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하지만, 과거 정책을 답습하지 않고 새 길을 모색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특히 일괄 타결과 전략적 인내를 모두 부정한 것은 도널드 트럼프 전 정부와 버락 오바마 전 정부의 대북정책을 사실상 거부한 것으로 평가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집권 초 이른바 '화염과 분노'로 상징되는 대북 긴장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다가 한국 정부의 지속적인 설득 속에 두 번의 역사적인 북미정상회담을 이끌었다. 하지만 2019년 하노이 회담에서 북한이 핵 프로그램 전체를 테이블에 올려놓지 않았다는 이유로 중간에 회담을 깨고 나왔다. 

한 번도 시도되지 않았던 톱다운 방식의 대북정책이 정상 간에 한 번 틀어지면서 2년 넘게 북미 관계를 얼어붙게 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런 부작용을 간파하고 톱다운 형식은 물론 일괄타결론이 더는 유효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바이든 대통령은 자신이 부통령으로 몸담았던 오바마 전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 정책을 지워버렸다. 북한이 대화 테이블에 나올 때까지 관여를 최소화하며 압박만을 지속하는 전략적 인내는 사실상 북한을 방치함으로써 오히려 북한이 핵보유국 지위에 오르게 된 결과를 가져온 실패한 정책으로 판단한 것이다. 

트럼프·오바마 전 정부가 제재 중심의 대북 압박을 지속하면서도 관여의 문제에서 극과 극이었다는 점에서, 바이든의 '제3의 길'은 압박 속에서 관여의 수준을 달리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는 지난해 10월 22일 대선 TV토론에서 김정은 위원장을 만날 것이냐는 질문에 바이든 대통령이 “핵 없는 한반도를 위해 핵능력을 축소하는 데 동의하는 조건”이라고 말한데서 유추해볼 수 있다. 이는 빅딜이 아닌 핵능력 축소 수준에서도 북‧미 정상회담이 가능하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시말해 바이든 정부는 트럼프 정부식의 빅딜이 아닌 핵능력을 단계적으로 축소하는 스몰딜을 지향하고 있으며,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 정책과 다른 관여의 확대를 통한 실용주의를 지향해 북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사키 대변인 역시 "우리의 정책은 북한과의 외교에 열려있고 (외교를) 모색하는 실용적이고 조정된 접근법"이라고 강조한 것과 맥락을 같이한다.

◇ 바이든식 전략적 인내 재현될 수도…北 공세 가능성, 남북미중 회담 주장도 

바이든 행정부는 대북 압박을 지속하는 가운데 실무 수준에서의 접촉부터 시작해 북한과의 대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바이든 정부는 관여 실행 방안 등 구체적 내용을 언급하지 않았다.

물론 바이든 행정부가 일괄타결에 부정적 입장을 밝힌 것은 단계적 해법으로 무게 중심을 옮길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그러나 제재 해제와 비핵화 조치를 둘러싼 주고받기식의 단계론을 미국이 채택할지, 그렇다면 어느 수준까지 고려할지는 미지수다.

이와 관련   "우리의 접근법은 싱가포르 등 이전 합의에 기초할 것"이라는 익명의 정부 관계자 언급을 소개한 WP의 보도는 주목할 만하다.  

이는 트럼프 정부의 최대 대북정책 성과로 꼽히는 북미 '싱가포르 합의' 정신을 이어가겠다는 의미다. 싱가포르 합의는 북미 간 새로운 관계 수립, 한반도의 지속적·안정적인 평화체제 구축,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한국전 참전 유해 송환 등 4개 항을 담고 있다.

트럼프 정부 마지막 대북특별대표였던 스티븐 비건 전 국무부 부장관도 작년 12월 고별 방한 당시 "싱가포르 정상 합의가 나아갈 길"이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바이든 정부가 싱가포르 합의를 인정하는 토대에서 대북 관여를 시작할 경우 북한 역시 이에 호응해올 가능성이 없지 않다. 이 경우 한국 정부가 북미 협상에 개입할 공간이 생기면서 한반도에 또다시 훈풍이 불 여지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바이든 정부가 국제질서에 따른 제재·압박을 강조하고 있고, 북한이 이에 반발하는 상황에서 미국의 관여 정책이 먹힐지는 예단할 수 없다. 특히 바이든 정부가 인권 문제를 그 어느 정부보다 강조하는 터여서 북한과의 접점 찾기가 쉽지만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바이든 정부는 트럼프 정부의 고립주의를 지양하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그리고 인권 등 미국과 가치를 공유하는 동맹과 의 연대를 통해 중국과 러시아 등 권위주의 진영에 대응하는 전략을 지향하고 있다. 

그러나 바이든 정부는 중국과 북한에 대해 시기나 내용 측면에서 다른 정책을 펴왔다.  바이든 정부는 출범 이전부터 중국을 제1의 위협이자 경쟁상대로 규정했으며, 출범과 동시에 대중 견제정책을 본격화했다.

반면  바이든 정부는 출범 이후 100일간이나 대북정책을 재검토하는 과정을 거쳤다. 또한 재검토 단계를 설정한 대외분야는 사실상 북한이 유일하다. 그럼에도 대북정책의 구체적 내용은 아직 나온 게 없다.

북한이 원하는 것은 외교의 테이블로 나갈 수 있는 충분한 명분과 실리의 확보지만 바이든 정부의 대북정책은 이를 제시하고 있지 않다.

북한은 지난 1월 노동당 제8차 대회를 개최해 자력갱생노선을 채택했으며, 이는 대북제재에 맞선 장기적인 버티기 전략을 의미한다.

북한은 바이든 정부에게 적대정책 철회를 요구했고,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대화란 일체 없다고 못박았다. 그런데 바이든 정부의 대북정책이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아 북한의 대응도 불투명하다.

때문에 미국 정치권 일각에서는 '바이든식 전략적 인내'가 시작되는 게 아니냐는 말도 나오고 있다. 그럴 경우 불리한 쪽은 북한이다. 점차 심각해지고 있는 경제난, 식량난에다 코로나19로 인해 교역이 대폭 줄어들어 개선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시간'은 바이든 행정부에 있는 셈이다.

따라서 바이든 정부의 새 대북정책이 공개된 게 전부라면 북한은 공세로 전환할 가능성이 높다. 시간의 무게를 견디기 어렵기 때문이다. 

북한과 미국 간에 뿌리 깊은 불신이 있는데다 바이든 정부의 대북정책이 '알맹이'가 없는 상황에선 북미 양국이 협상을 통해 핵심 현안들에 대해 접점을 찾는게 불가능에 가깝다.  

이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북핵 4자회담이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정 센터장은 "결국 북미 간에 대타협이 이루어지기 위해 서는 미국의 입장을 잘 이해하면서 미국을 설득할 수 있는 한국과 북한의 입장을 잘 이해하면서 북한을 설득할 수 있는 중국이 참여하는 미중과 남북한의 북핵 4자회담 개최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백민일 기자 bmi21@korearepo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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