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냉랭한 이유…南 '비핵화' 오판, '신뢰'부터 찾아야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2018년 9월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악수를 하고 있다. Ⓒ 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2018년 9월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악수를 하고 있다. Ⓒ 청와대

남북이 '한반도 평화'를 약속한 판문점 정상회담이 27일 3주년을 맞았다. 하지만 3년전 남북이 4월 27일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선언’을 채택할 때와 현재의 상황은 전혀 다르다.

4.27 판문점선언을 공동 발표할 때만 해도 남북관계는 탄탄대로를 달릴 것으로 예상됐다. 실제 두차례의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2018년 9월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했을 때 남북관계는 최고조에 달했다.

그러나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나면서 남북관계는 급속하게 얼어붙었다.

상황은 더욱 악화돼 그해 5월 북한은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 참관하에 신형 전술유도 미사일과 장거리 방사포 발사 실험을 했고, 7월 25일에는 ‘북한판 이스칸데르’로 불리는 KN-23 미사일 두 발을 쐈다.

같은 해 8월 16일에는 전날 문재인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를 겨냥,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대변인 담화를 통해  “정말 보기 드물게 뻔뻔한 사람” “삶은 소대가리도 앙천대소할 노릇” 등 도를 넘는 비난을 퍼부었다.

급기야 지난해 6월 16일 북한은 대북전단 살포 등에 대한 우리정부의 대응을 문제 삼아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

올해 들어서는 지난 3월 15일 발표된 조선노동당 김여정 부부장 명의의 담화를 통해  대남 대화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정리, 금강산국제관광국 등 교류협력 관련 기구 해체 검토, 남북군사분야합의서 파기 가능성을 언급해 남북관계가 파국으로 치닫는 양상을 띠었다. 

이처럼 북한이 3년전 4.27 판문점 선언 때와 정반대의 모습으로 우리정부를 공격하는 것에 대해 여러 분석이 나오지만 북한 핵에 관한 부분이 가장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에 핵은 최종, 최대 자위수단이자 대외 정치, 경제 등 전 분야에 걸쳐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최고의 무기인데 남한 때문에 무력화되다시피됐다고 북한은 인식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 입장에선 엄청난 손실을 입고 있는 것을 남한에 대한 책임 추궁으로 무시하거나 무력시위, 비난 등으로 쏟아내고 있다는 설명이다.  

◇ 남북관계 냉각시킨 '하노이 노딜'의 진짜 이유…트럼프-김정의 입장차 

북한이 4.27 판문점 선언 이후 우호적 남북관계에 종지부를 찍고 적대적 관계로 돌아선 결정적 장면은 2019년 2월 '하노이 노딜' 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하노이 노딜 이후 북한은 남한과의 대화를 끊은 채 공세일변도로 급변했다. 북한 사정에 정통한 베이징의 대북 소식통은 "김정은이 트럼프와 하노이에서 2차 북미회담 도중 얼굴이 하얗게 되는 순간을 기억하라"며 "'비핵화'에 대한 미국과 북한의 인식이 전혀 달랐기 때문에 회담은 중간에 깨졌다"고 말했다.

소식통은 "김정은은 비핵화가 아닌 다른 '선물'을 기대하고 하노이까지 왔지만, 트럼프는 '선물'을 준비하지 못하게 되자 이를 감추기 위해 북한 핵을 집요하게 문제 삼았다"며 "북미 2차 회담은 깨질 수밖에 없었다"고 비사(秘史)를 전했다.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인 소식통은 트럼프 대통령이 전할  '선물'에 대해 일본의 대북 교섭자금을 활용하려고 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해 북미회담 수뇌부가 미 대통령 전용기인 에어포스원을 타고 하노이를 향했을 때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보좌관만 일본으로 향한 이유라는 게 소식통의 설명이다.

실제 일본은 하노이 회담이 열리기 전날인 26일 대북 자금을 지원을 할 수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선 김정은 총비서에게 전할 '선물'을 마련하지 못한 셈이었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회담 의제에 없는 얘기를 꺼내며 북한을 당황케 했다. 북한이 영변 핵시설 외에 감추고 있는 핵시설이 다수 있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의제에 없는 예상밖 주장을 하자 김정은 총비서는 당황했고, 휴회 끝에 2차 북미회담은 결렬됐다.

◇ "남한의 '비핵화' 오판, 남북 ·북미 관계 꼬이게 해"

'하노이 노딜'의 근본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면 북한핵의 '비핵화'와 맞닿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두 차례에 걸친 김정은 총비서와의 정상회담에 나선 것도 '북한 비핵화'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 스스로 '비핵화(핵포기)'라는 용어를 사용한 적이 없다. "세계 평화를 위해 북한을 포함해 모든 핵은 사라져야 한다" "전 세계가 핵을 없앤다면 북한도 제거할 수 있다"는 게 북한의 입장이다. 다시말해 북한은 핵을 보유한 이상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핵포기'란 개념의 '비핵화'라는 용어는 한국측에서 나왔다. 정확히는 오판이나 혹은 의도된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단어이다. 

그 계기는 2018년 3월 5일 문 대통령의 대북특별사절단대표단으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정원장이 방북해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를 면담하면서다.

 정의용 실장 등 특사단은 다음날인 6일 귀환해 춘추관에서 브리핑을 갖고 “4월 말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제3차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기로 했고,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밝혔다”고 했다. 또한 북한이 비핵화 문제 협의 및 북미 관계 정상화를 위해 미국과 허심탄회한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용의를 표명했다고 했다.

정 실장은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했으며,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북한의 체제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는 점을 명백히 밝혔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김정은 총비서가 특사단을 만난 자리에서 “북미대화 의제로 비핵화도 논의할 수 있다”며 북미대화에 적극적으로 임할 용의가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혔다고 전했다. 정 실장은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김 위원장이) 비핵화 목표는 선대의 유훈이며, 선대의 유훈에 변함이 없음을 분명히 밝힌 점”이라고 말했다.

정의용 실장과 서훈 원장은 그해 3월 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나 방북 성과에 대해 설명하면서 김정은 총비서의 북미정상회담 제안 의사와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 실장 등이 전한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그대로 믿고 북한과의 정상회담을 제안했다. 

그러나 당시 정 실장의 발언은 북한이 생각하는 '비핵화'를 전혀 잘못 이해한데 따른 것이다. 김정은 총비서가 정 실장 표현처럼  비핵화를 언급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설령 그렇더라도 북한의 '비핵화'는 현재까지 남한이 인식하고 있는 것과 전혀 다른다. 

북한이, 김 총비서가 말하는 '비핵화'는 '핵을 보유한 모든 국가들이 핵을 포기할 경우 북한도 핵을 포기할 수 있다'는 의미로 사실상 어떠한 경우라도 포기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것이 선대의 유훈이며 김 총비서는 "선대의 유훈은 변함이 없다"고 밝힌 것이다. 

북한돠 30년 가까이 교역을 해온 장백산 해외동지원사업단 이사장은 "북한은 핵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현재 진행중이거나 앞으로의 핵은 미국등 국제 상황에 따라 중단할 수 있지만 기존의 핵을 양보하는 일은 없다"고 단언했다. 

장 이사장은 "북한은 핵을 보유할 때와 그렇지 못한 경우의 차이를 너무 잘 알고 있다"며 "'고난의 행군기'에 수많은 아사자가 나왔음에도 기어이 핵을 개발한 북한이 그런 핵을 양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 집권 당시 북한 비핵화의 포괄적인 방안을 담은 이른바 '페리 프로세스'를 주도했던 윌리엄 페리 전 미국 국방장관을 비롯해 트럼프 행정부 초대 댄 코츠 미 국가정보국(DNI) 국장 등 미국의 많은 북한 전문가나 정보 수뇌들은 북한이 핵을 포기할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북한 김정은 총비서가 두차례에 걸쳐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나온 것은 '비핵화(핵포기)' 때문이 아니라 미국의 북한, 북핵에 대한 입장을 확인하고 교섭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해서였다. 즉, 북핵 비핵화에 대해 미국과 북한은 전혀 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고, 북미회담이 결실 없이 막을 내린 결정적 이유다. 

북한은 그렇게 된 원인이 남한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세계가 '비핵화' 를 주목하면서 보유핵에 근거해 대외적으로 정치·경제적 힘을 발휘하려고 했던 북한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북한으로선 엄청난 손실이고, 남한을 적대시하게 된 배경이다.

 김정은 총비서는 지난 1월 5~7일 열린 노동당 8차 대회 사업총화 보고에서 "(남북관계가)판문점 선언 발표 이전 시기로 되돌아갔다"라며"남조선 당국의 태도 여하에 따라 북남관계가 다시 3년 전 봄날과 같이 온 겨레의 염원대로 평화와 번영의 새 출발점으로 돌아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4.27 판문점선언이 경색된 남북관계를 깨고 3년 전 봄날 속에 부활하기 위해서는 '비핵화'에 대한 오류부터 바로 잡아 남북한이 신뢰를 회복하는 게 급선무인 상황이다.

민대호 선임기자 mdh50@korearepo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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