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공작 '리명원' 실존인물과 만나
출장 계획서·보고서에 관련 내용 없어

호남(왼쪽에서 두번째) 무역성 참사는 2007년 10월 2차 남북정상회담 이틀째에 열린 경제인(대기업 총수) 간담회에 북측 대표단의 일원으로 참석했다.(MBC 화면 캡처)
호남(왼쪽에서 두번째) 무역성 참사는 2007년 10월 2차 남북정상회담 이틀째에 열린 경제인(대기업 총수) 간담회에 북측 대표단의 일원으로 참석했다.(MBC 화면 캡처)

한국가스공사가 2019년 남북에너지협력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북한 고위급 인사와 비공개 회동을 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철규 국민의힘 의원(강원 동해·태백·삼척·정선)은 9일 한국가스공사 소속 A차장이 2019년 11월29일부터 12월1일까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출장에서 북한 인사와 만나 에너지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이 의원에 따르면 A차장은 남북에너지협력사업 추진을 위해 북·러간 교육 및 산업연계에 따른 에너지산업 협력방안 모색과 접경지역 산업 및 무역현황 파악을 위해 2019년 블라디보스토크로 출장을 갔으며, 첫날인 11월 29일과 마지막날인 12월 1일 두 차례에 걸쳐 북한 고위급 인사인 리호남을 만났다. 리호남은 영화 '공작'의 '리명운'의 실재인물로 알려졌다.

이 의원실에 따르면 리호남은 A차장에게 "러시아 가스를 싸게 구해 팔면 가스공사에서 구매가 가능한지" 의견을 물었고, A차장은 이를 거절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신 A차장은 북한 내 PNG(파이프라인천연가스)사업 가능성과 원산·갈마지구 개발 관련해 가스발전소 장점을 소개, "1년이면 가스발전소를 지을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이 의원실은 A차장이 이같은 대화내용을 직접 설명했다고 밝혔다. 다만, A차장의 출장 관련 보고서에는 이같은 내용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의원실에서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당시 출장계획서와 국외출장보고서에는 리호남과 만남은 명시되지 않았다.

이 의원실은 이에 대해 "출장계획서, 출장결과보고서에 위 사안들이 누락돼 있다. 철저히 비밀로 진행됐다"며 "공기업 차장이 단독으로 북측 고위인사를 만난 것은 비상식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 출신인 채희봉 가스공사 사장 지시가 있었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가스공사가 북측인사와 접촉한 다음날(12월2일) 당시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북한이 역점 개발 중인 원산·갈마 관광지구 개발문제도 논의하자고 제안했다"며 "(북측 인사와의 만남은) 정부차원의 원산·갈마 지구 개발을 위한 것 아닌가"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나 이 의원이 밝힌 A차장의 대화내용 중 가장 의문시 되는 것은 리호남에 관한 부분이다. A차장이 만난 북한 고위급 인사가 리호남이라는 점과 대화 내용이 사실과 모순되기 때문이다.

1953년생인 리호남은 리철, 리철운 등으로 불렸으며 김일성대를 졸업 후 오랫동안 남북 경제협력 사업에 관여한 인물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초까지 주로 베이징에 머물며 외자 유치 등의 사업을 전개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7년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밀사로 파견된 안희정 전 충남지사를 베이징에서 만나기도 했다.

앞서 1997년 북풍 사건 당시 국가안전기획부 대북 공작원으로 알려진 흑금성(박채서)의 대북사업 협력 파트너인 북한 대외경제위원회 처장의 실제 모델이기도 하다. 이를 영화화한 게 ‘공작’이다.

이 의원에 따르면 A차장은 2019년 블라디보스토크 출장에서 리호남을 만났다. 리호남은 김정일 시대 말 남북경협을 총괄하던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와 관계 기관 사람들이 당과 군부에 의해 밀려날 때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오랫동안 행방이 묘연했던 리호남이 2019년 A차장을 만났다면 다시 업무에 복귀한 것으로 해석되지만 그가 실제 리호남인지는 알 수 없다.

또한 리호남의 주 활동무대는 베이징이었는데 블라디보스토크라는 점도 의문이다. 설령 리호남이 중국을 떠나 러시아 관련 대외사업을 주관한다면 그의 이력에 비춰 모스크바에서 활동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리호남이 제시했다는 가스 사업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러시아 에너지 사업, 특히 가스사업은 러시아 정부가 직접 관장하는 게 일반적이다. 

A차장은 북한 내 PNG(파이프라인천연가스)사업 가능성과 원산·갈마지구 개발 관련해 가스발전소 장점을 소개, "1년이면 가스발전소를 지을 수 있다"고 제안했다고 하는데, 대북경협은 미국과 사전에 협의해야 할 필요가 있는 사안이다. A차장의 제안은 현실성이 없고 위험한 제안이기도 하다.

민대호 선임기자 mdh50@korearepo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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