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씨 부친 '국내서 처벌 희망' 분석…미국 재판시 중형 불가피
국내재판 시작되면 인도 불가…19일 법원심사 전에 기소될지가 관건
아버지 고소가 아들에 불리할수도…유죄증거 미국 수사당국에 양도 가능

서울중앙지검
서울중앙지검

세계 최대 아동 성 착취물 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 운영자인 손정우의 부친이 아들을 범죄수익은닉 등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손정우의 아버지 손 모씨는 지난 11일 서울중앙지검에 아들을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혐의 등으로 고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신(손정우의 아버지)의 개인 정보로 가상화폐 계좌를 개설해 범죄수익금을 거래·은닉했고, 모친(손정우의 조모) 병원비를 범죄수익으로 지급해 모친 명예를 훼손했다며 자기 아들을 고소한 것이다.

아들 손씨는 특수한 브라우저를 사용해야 접속할 수 있는 다크웹(Dark Web)에서 아동 성 착취물 공유 사이트를 운영하며 유료회원 4000여 명으로부터 수억 원 상당의 암호화폐를 받고 아동음란물을 제공한 혐의 등으로 기소돼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앞서 검찰은 아들 손씨를 범죄인 인도 절차에 따라 미국으로 송환하기 위해 지난달 27일 형기를 마치고 출소할 예정이었던 손씨에 대해 인도구속영장을 청구해 신병을 확보했다.

손씨에 대한 범죄인 인도심사 청구사건의 심문기일은 오는 19일 열린다. 재판부는 인도심사 청구를 받은 후 2개월 안에 인도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인도심사는 단심제라 불복 절차가 없다.

재판부가 인도 허가 결정을 내리고 법무부 장관이 승인하면 미국의 집행기관이 한 달 안에 국내에 들어와 당사자를 데려간다.

이런 상황에서 손씨의 부친이 아들을 직접 고소했다. 형법상 친족 사이에는 범인 은닉 또는 도피 방조를 해도 처벌을 하지 않게 돼 있다. 손씨 부친의 고소 배경이 주목되는 이유다. 

◇국내 '일사부재리 원칙' 다른 국가에도 적용되나?…범죄인 인도에 부적용, 예외 있어

이처럼 희한한 고소는 미국으로의 범죄인 인도 심사(19일)를 앞둔 아들을 한국에서 처벌받게 하려는 아버지의 '고육책'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하나의 범죄를 이중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일사부재리(一事不再理) 원칙에 기대 아들이 미국에서 처벌받지 않도록 하려는 포석이란 얘기다.

손정우의 부친이 고소장에 적시한 범죄수익금 거래·은닉 혐의는 미국 수사당국이 손정우에 대한 범죄인 인도를 요청하면서 제시한 범죄 혐의와 거의 동일한 내용이라는 점이 이런 분석에 힘을 싣는다.

손씨는 미국 연방대배심에 의해 2018년 8월 아동 음란물 배포 등 6개 죄명·9개 혐의로 기소됐다. 다만 이중처벌 금지 원칙에 따라 범죄인 인도와 관련해서는 돈세탁 혐의만 심사 대상에 올랐다.

미국 자금세탁방지법에 따르면 유죄가 인정될 경우 자금세탁 규모가 50만 달러 이상이면 최대 징역 20년, 50만 달러 미만이면 최대 징역 10년을 선고받게 된다.

반면 우리나라에서 범죄수익은닉 혐의로 유죄가 인정되면 5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 상대적으로 처벌 수위가 낮다.

손정우 부친은 이달 4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아들의 미국 송환을 막아달라는 취지의 글을 올린 바 있다. 같은 날 아들의 범죄인 인도심사 사건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20부에 같은 취지의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이번 고소가 미국송환을 막기 위한 의도였음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결국 미국이 자국법으로 처벌하겠다고 나선 손정우의 범죄수익은닉 혐의를 한국 검찰이 먼저 수사하면 일사부재리 원칙에 따라 범죄인 인도를 저지할 수 있다는 게 손정우 부친의 셈법이었을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 검찰 수사가 시작되면 손정우에 대한 범죄인 인도 절차도 중단될 수 있을까?

우선 엄밀히 따진다면 일사부재리 원칙은 한국 사법체계 내에서만 적용되기 때문에 일각에서 제기된 전망과 달리 국제형사공조 절차인 범죄인 인도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한국 사법체계를 통해 이미 처벌된 범죄인이더라도 미국 등 다른 국가의 사법체계에서는 얼마든지 다시 처벌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한국의 '범죄인 인도법'이 일정한 상황에서는 범죄인 인도를 반드시 거절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손정우가 이 사례에 포함되는지를 살펴야 한다.

범죄인 인도법 7조는 '필수적 인도 거절' 사유로 ▲ 인도범죄(인도심사 대상 범죄)에 관해 대한민국 법원에서 재판이 계속 중이거나 재판이 확정된 경우 ▲ 대한민국 또는 청구국의 법률에 따라 인도범죄에 관한 공소시효 또는 형의 시효가 완성된 경우 ▲ 범죄인이 인도범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없는 경우 등을 규정한다.

손정우의 경우 공소시효가 완성되지 않았고, 범죄 혐의도 상당 부분 확인됐다는 점에서 두 번째와 세 번째 사유에 해당할 여지는 없다. 오직 검찰이 손정우를 19일 이전에 전격 기소해 재판이 시작되는 상황에서만 첫 번째 사유가 적용돼 범죄인 인도가 불가능하게 된다.

즉, 검찰이 손정우 수사를 서둘러서 법원의 범죄인인도 심사 전에 기소까지 한다면 법원은 범죄인 인도법 15조에 따라 '인도 거절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이 경우 손정우가 자발적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자수하지 않는 한 미국 사법당국의 처벌을 받을 가능성은 없어진다.

결국 이달 19일로 예정된 법원의 범죄인인도 심사 전에 검찰이 수사와 기소 절차를 마무리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검찰이 이례적으로 수사와 기소를 서두르면 범죄인 인도가 무산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범죄증거 수집을 위해 압수수색을 실시하고, 고소인·참고인 등을 불러 진술을 확보하는 데에만 최소 1주일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검찰이 통상적인 절차대로 사건을 처리할 경우 사나흘만에 기소까지 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아버지의 고소가 손정우에게 오히려 불리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법원은 범죄인 인도 심사에서 범죄인과 검찰 측 진술을 듣고 인도를 허가할지 여부를 결정하는데, 친족에 의한 이번 고소가 사실상 '혐의 자백'으로 여겨져 허가 결정의 한 이유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범죄인 인도가 결정되면 향후 미국 법원에서 진행될 손정우 재판에도 아버지의 고소 사실이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아버지가 작성한 고소장 내용이 재판에서 유죄 근거로 활용될 수 있을 뿐 아니라, 고소장에 기재된 가상화폐 계좌 등 증거들을 미국 수사당국이 건네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범죄인 인도법 17조는 인도범죄에 관한 증거로 사용될 수 있는 물건 중 대한민국 영역에서 발견된 것은 청구국에 양도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이에 대해 법무부 국제형사과 관계자는 "실무적으로는 범죄인 인도가 요청된 혐의와 관련해 우리 수사당국이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증거물이 있으면 인도를 요청한 당사국에 양도하고 있다"면서 "고소인의 진술이나 가상화폐 계좌 등도 범죄인 인도법에 따라 당사국에 건넬 수 있는지는 검토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김성지 기자 ksjok@korearepo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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