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적·관리적 조치, 불법촬영물 유통방지 최소조건…확대해석 여지 적어
'불법촬영물' 인지판단, 공기관으로 전환…해외사업자 규제공백 보완 필요

지난 1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체감규제포럼, 한국인터넷기업협회 등이 기자회견을 개최한 모습.
지난 1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체감규제포럼, 한국인터넷기업협회 등이 기자회견을 개최한 모습.

일명 'n번방 방지법'이라 불리는 전기통신사업법 및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국회 상임위를 통과하자 인터넷업계가 크게 반발하고 있다. 

개정 법률안이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 사업자에게 과도한 의무를 부과하고 국민들이 광범위하게 사용하는 카카오톡이나 밴드 등 모바일메신저 내용까지 모두 들여다보는 '사적 검열'을 조장한다는 것이 인터넷업계의 주장이다. 

이에 <뉴스1>은 법률전문가들과 함께 개정법을 자세히 살펴봤다. 분석에는 최경진 가천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김경환 법무법인민후 대표변호사, 안정상 더불어민주당 수석전문위원이 참여했다.

◇'n번방법' 통과하면 카카오톡-밴드 검열당한다?

개정안의 상임위 통과 이후 인터넷 업계에서 강하게 주장하는 것은 개정법이 '사적검열'을 조장할 가능성이 있다는 부분이다.

인터넷업계는 이번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제22조의5 제2항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부가통신사업자는 불법촬영물등의 유통을 방지하기 위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술적ㆍ관리적 조치를 하여야 한다'는 조항이 인공지능(AI) 기술을 통해 '모든 온라인 게시물'에 대해 사업자가 사적검열을 하도록 유도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이메일, 개인 메모장, 비공개 카페 및 블로그, 클라우드, 메신저 등 비공개 게시물까지 '사적검열'이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법률전문가들은 '지나친 확대해석'이라고 진단했다. 제22조의5 제2항은 '불법촬영물 유통 방지'를 위한 기술적·관리적 조치로 한정하고 있기 때문에 인터넷업계의 우려는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다.  

김경환 변호사는 "개정법을 검토한 결과 해당 조항은 '유통방지'를 위한 조치라고 분명히 규정하고 있어 업계가 우려하는 바와 같은 '확대해석'의 여지가 없다"고 설명했다. 

최경진 교수도 "해당 조항에 나온 불법촬영물은 '모든 음란물'을 의미하는게 아니라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성폭력특별법) 제14조 및 제14조의2 불법편집물, '아동·청소년의성보호에관한법률'(아청법) 제 2조제5호 '아동·청소년용 음란물'로 법적 근거가 명확하게 있는 디지털성범죄물을 의미한다"면서 "이의 유통방지에 대한 기술적·관리적 조치를 규정한 것이기 때문에 적용 범위가 명확해 일반적·포괄적 검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더구나 '유통 방지'를 위한 조치는 이미 전기통신사업법 제22조의3 제1항 제2호, 제22조의5 등에 도입돼 있는 조치다. 정보 삭제, 접속 차단, 검색 차단 등으로 예시돼 있다. 즉 인터넷사업자들이 사적검열이라고 주장하는 법률은 이미 현행법에도 모두 들어있는 내용으로, 업계는 이를 '자율규제'로 이의없이 수행하고 있다.

만약 인터넷업계 주장이 사실이라면 업계는 현행법에 따라 지금도 1대1 카톡 대화방이나 밴드 등 모바일메신저도 모두 들여다보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자율규제 성실히 하고 있는데 또 규제 덤터기?

인터넷업계는 개정안이 네이버, 카카오 등 이미 자율규제를 성실하게 수행해 온 국내 사업자에게만 과도한 규제를 추가하는 법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이에 대해 법률 전문가들은 개정안이 사업자 의무를 일부 완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분석했다. 

당초 법률 초안 제22조의5 제2항에는 사업자가 불법촬영물을 '자체적으로 인식할 경우'라는 조항이 있었다. 초안의 내용이 그대로 통과됐다면 불법촬영물의 '인지 여부'의 판단을 사업자에게 전가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에 국회는 법안심사 과정에서 이 문제제기를 받아들여 '자체적으로 인식할 경우'라는 조문을 삭제했다. 대신 '대통령령으로 정한 기관 단체의 삭제 요청에 지체없이 해당 정보의 삭제-접속차단 등 유통방지에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조항으로 교체된 상태다.

안정상 수석은 "당초 n번방 방지법이 여러개 발의돼 이를 병합심사하는 과정에서 법률(초안)에는 '불법촬영물 등에 대해 (사업자가)'자체적으로 인식'한 경우에는 지체 없이 해당 정보의 삭제, 접속차단 등 유통방지에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었지만 이 내용이야말로 사적검열을 조장할 수 있고 헌법과 통신비밀보호법 등을 침해할 소지가 있으며 사업자에게 과도한 의무를 지울 수 있어 법안 심의과정에서 삭제했다"며 "개정안은 이같은 내용이 전혀 없는데 인터넷협단체 측에서 초안만 보고 개정안은 제대로 검토하지 못한 듯하다"고 토로했다. 

최경진 교수도 "규제는 포괄적이면 불확실성을 초래하기 때문에 구체적이고 명확해야 한다"면서 "기존 현행법에 있던 (피해자 등에 의한) 신고, 삭제요청 외에 대통령령으로 정한 기관의 삭제요청에 지체없이 필요조치를 취하라는 조항은 오히려 '불법촬영물'에 대한 판단의 여지를 사업자에서 정부기관으로 전환한 것이기 때문에 사업자의 부담이 줄어든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아청법에 관한 불법촬영물 규정은 해외의 경우 우리나라보다 몇십배 더 강력하며 우리나라 법이 약한 측면이 있다"면서 "이번 개정안으로 (공공기관의 삭제요청 등)불법촬영물에 대한 대응 수위는 높이면서도 이를 사업자가 직접 하지 않고 기관의 요청에 따르도록 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텔레그램 못잡고 네이버-카카오만 잡는다?

반면 아무리 규제를 강화한들 텔레그램 같은 해외사업자는 못잡고 네이버-카카오 같은 국내 사업자만 옥죌 것이라는 인터넷업계의 주장은 일견 타당하다. 그간 해외 사업자에 대한 행정력이 닿지 않는 문제를 겪어왔기 때문.

이를 위해 상임위를 통과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 제5조의2에는 '역외규정'이 도입됐다. 역외규정이란 '국외에서 이뤄진 행위도 국내 시장 또는 이용자에게 영향을 미칠 경우 법을 적용한다'는 규정이다. 

이에 대해 김경환 변호사는 "그간 구글, 페이스북, 넷플릭스를 비롯해 이번 n번방 사태의 텔레그램까지 국내법을 무시하고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는 모습이 여러번 연출됐기 때문에 국내 사업자들의 우려도 일견 이해는 된다"면서도 "그렇다고 해외사업자에 대한 규제집행력이 보장될 때까지 우리도 규제하지 말라는 주장은 불법촬영물 유통을 방치하고 용인하자는 주장으로 해석될 수 있어 신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안정상 수석도 "물론 역외규정 신설만으로 완전한 법 실효성을 담보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안 수석은 "그간 해외 사업자들이 역외규정이라는 이 최소한의 규정마저 없었기 때문에 불법촬영물 유통과 같은 일이 벌어져도 처벌하거나 삭제를 강제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었다"면서 "이번엔 그 법적 근거를 마련한 것이며 역외규정 적용으로 규제기관은 좀 더 적극적으로 불법정보 유통에 대한 법적 조치에 나설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경진 교수와 김경환 변호사도 "역외규정이 실효성을 가지려면 국제공조가 필수적"이라면서 "해외사업자를 규제할 수 없다고 해서 국내 사업자도 동일한 잣대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은 다소 무책임하며 n번방 사태로 인한 사회적 폐해를 외면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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