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라토리엄 파기 시사했던 北…IRBM 발사로 레드라인 다가서
규탄하면서도 존재감 드러내기로 풀이…文, 임기 끝까지 대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2018년 4월 27일 오전 판문점 평화의 집 2층 회담장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 기념촬영을 하며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청와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2018년 4월 27일 오전 판문점 평화의 집 2층 회담장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 기념촬영을 하며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 초부터 공을 들여온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종전선언→평화협정 체결→항구적 평화체제)가 완전히 멈출 위기에 놓였다.

북한은 30일 중거리탄도미사일(IRBM)을 발사함으로써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를 위배했을 뿐만 아니라, 미국이 세워둔 레드라인(red line)에 가깝게 다가섰다. 핵실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를 기준으로 한 레드라인에 대해 북한은 지난 20일 모라토리엄(유예) 파기를 시사한 바 있다.

우리 또한 문 대통령이 2017년 취임 100일 기자회견 당시 레드라인에 대해 "ICBM을 완성하고 거기에 핵탄두를 탑재해 무기화하는 것"이라고 규정했었다.

북한은 올해 들어 이날까지 무려 7번째 무력시위에 나섰다. 2017년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을 당시 하루가 멀다 하고 미사일을 쏘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각자의 책상에 있다는 핵 버튼 크기를 자랑하던 위기 시점과 닮아있다. 북한이 IRBM급 이상의 탄도미사일을 시험발사한 것은 2017년 이후 이번이 처음이기도 하다.

북한의 연이은 도발에도 북측을 국제 대화의 테이블로 이끌고자 말을 아꼈던 문 대통령도 이날만큼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긴급 전체회의를 소집해 대응했다. 뒤이어 서훈 국가안보실장 주재 NSC 상임위 회의까지 열렸다. 그동안의 대응이 NSC 상임위로만 열렸던 것을 감안하면 형식 면에서부터 대응 수위를 높인 것이다.

청와대는 이에 대해 북측이 레드라인을 넘지는 않았지만 단거리 미사일에서 중거리 미사일로 그 강도가 높아졌고, 설 연휴 코로나19 변이인 오미크론으로 가뜩이나 불안한 국민정서 또한 고려해 대통령이 직접 경고의 메시지를 내는 의미가 있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은 전체회의에서 "2017년도에 중거리 탄도미사일 발사에서 장거리 탄도미사일 발사로 이어지면서 긴장이 고조되던 시기와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이번 행위가 유엔 안보리 결의에 위배되는 것임을 강조하는 동시에 회의 참석자들을 향해 "북한이 그동안 대화 의지를 표명하면서 핵실험,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유예 선언을 지켜왔는데, 중거리 탄도미사일 발사라면 모라토리엄 선언을 파기하는 근처까지 다가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 바, 관련 사항들을 염두에 두고 논의하기 바란다"고 지시했다.

NSC 상임위에서도 입장 표명의 수위가 올라갔다. 새해 들어 이어진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우려' 또는 '유감' 표명 정도로 입장을 갈음했던 NSC 상임위는 "오늘 북한의 중거리 탄도미사일 발사는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안정에 대한 국제사회의 외교적 해결 요구와 유엔 안보리 결의에 대한 도전으로서 규탄한다"고 말했다.

표현의 수위가 '우려→유감→깊은 또는 강한 유감' 등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규탄'은 매우 높은 수준으로 북측에 비판의 목소리를 낸 것으로 읽힌다.

청와대와 정부는 문 대통령이 지난해 9월 유엔총회에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 종전선언'을 언급한 후 문 대통령 임기 내 이를 달성하기 위해 당사국들과의 접촉면을 늘리며 협의를 이어왔다.

이 과정에서 북측이 종전선언에 대해 호응을 표하고 끊어졌던 남북 통신선이 복원됐으며 미국과 종전선언 문구가 협상됐다거나 중국 또한 호응하고 있다는 소식들이 전해졌으나 끝내 이 이상의 결과물은 도출되지 않았다.

내달 열리는 중국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종전선언이 성사될 가능성까지 전망됐으나 미국의 베이징 올림픽 외교적 보이콧, 북한의 올림픽 불참 등이 겹쳐 없던 일이 됐다.

청와대는 북한의 연이은 미사일 발사를 '존재감 드러내기'로 보고 있다. 지난 27일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뉴욕타임스(NYT) 보도를 인용해 "중국은 올림픽에 집중하고 한국은 대통령선거 정국이고 미국은 우크라이나 등의 상황에 집중하는 시점에 자신의 존재감, 의도를 나타내기 위해 발사하는 의미가 있다고 (NYT는) 분석하고 있고 '38노스'도 비슷한 취지의 의견을 보도한 바 있다"고 언급했다.

북한이 미국 본토를 때릴 수 있는 ICBM 발사로 직행하지 않고 그와 가깝지만 선은 지킨 IRBM을 선택했다는 점은 이런 분석과 맞닿은 점이 있다. 결국엔 북측이 대미(對美)대화를 무력시위로 요청하고 있다는 뜻인 셈이다.

문 대통령은 임기 끝까지 북측을 국제사회 대화 테이블로 이끌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을 전망이다. 이날 회의에서 문 대통령은 "북한은 긴장 조성과 압박 행위를 중단하고 한미 양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대화 제의에 호응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뉴스1과 통화에서 "대통령은 임기 마지막까지 한반도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해 다음 정부가 좋은 상황에서 출발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늘 강조한다"며 "북한의 의도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시계는 멈추지 않고 갈 수 있고 무엇보다 다음 정부를 위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상룡 기자 psr21@korearepo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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