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중 국경 봉쇄의 장기화로 북한 시장에서 중국산 제품을 찾아보기 힘들면서 가격이 폭등한 가운데 지난 16일, 북한 화물열차가 운행을 재개했다. 하지만 코로나19의 재확산과 김정은 북한 총비서의 ‘자력갱생’ 지침으로 전면적인 개방 시기는 더 늦어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해상을 이용한 양국 간 무역과 밀수는 은밀히 진행 중이다.

◇ 중국 물품 실은 화물열차는 의주 방역 시설로

 북∙중 국경 봉쇄가 장기화함에 따라 중국산 수입품을 중심으로 북한 시장 물가가 급등하는 가운데 지난 16일 북한 화물열차가 중국 단둥에 도착했지만, 현지의 한 대북 무역업자는 ‘아직 일반 무역에 관한 육로 개방 움직임은 없다’고 말했다.

이 무역업자는 (1월 16일) RFA에 “북한 화물열차가 중국 긴급물자를 싣고 되돌아가겠지만, 아직 북한 물품은 반입이 안 되는 것으로 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동안 북한이 의주비행장에 방역 시설과 창고를 마련하면서 육로 개방에 대한 기대감이 컸지만, ‘전기 부족으로 가동이 원활치 않다’, ‘코로나비루스의 완벽한 차단이 어렵다’는 등의 소문만 확산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번 화물열차는 의주로 향하고, 긴급 물자는 의주 방역 시설에서 검역 절차를 밟을 예정으로 전해졌다.

북∙중 국경지역에 거주했다 2020년에 탈북한 정미영 씨(가명)도 (1월 6일) RFA에 전면적인 국경 개방 움직임은 찾아볼 수 없다고 말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지난 5일 RFA에 북한이 방역 시설을 마련했음에도 북∙중 간 육로 개방을 하지 않는 이유로 크게 두 가지를 꼽았다. 김정은 북한 총비서의 자력갱생∙국산화 정책과 중국의 코로나 방역 대책이다

임을출 교수는 " ‘중국에 대한 수입 의존도를 줄여라’는 지시가 갖는 의미가 상당히 중요하다. 전혀 중국과 교역을 안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제품 생산 능력을 제고할 수 있는 여건 조성과 관련해 필요한 것은 중국과 교역을 활용하라는 것이 기본 입장이다. 또 지금은 코로나 상황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고, 특히 중국이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사실 방역은 중국 쪽이 더 강력하다. 더군다나 백신 접종도 안 한 북한 사람들이 중국에 와서 어떤 활동을 하기에는 중국 입장에서도 상당히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북한과 중국을 오가는 화교 출신 한 여성도 이에 동의했다. 이 화교 여성은 지난 8일 RFA에 “중국에서는 코로나 확진자가 전혀 없다는 북한의 주장을 믿지 않는 분위기”라며 지난해 7월 북한에서 중국 단둥에 들어 온 화교들과 중국인 사업가들이 곧바로 3개월간 격리조치를 해야 했던 사례를 들었다.

지금 북∙중 국경이 개방된다 해도 북한에서 중국으로 돌아오는 사람은 최소 3주일 이상 국가시설에서 강제격리를 해야 할 텐데 미화로 약 1천 달러 가까운 격리 비용을 모두 자비로 부담해야 하는 상황에서 국경 개방은 무의미하다는 지적도 있다.

또 중국 측 대북 무역업자들 사이에서는 오히려 중국이 육로 개방을 원치 않을 수 있다며 “코로나 대유행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국경이 왜 빨리 안 열리는지 묻는 사람도 지금은 없는 상황”이라고 이 화교 여성은 덧붙였다.

◇ 북, 해상 환적 통해 중국서 건축자재 등 밀수

북∙중 육로가 막힌 상황에서 해상을 통한 중국산 생필품이 북한에서 유통되기도 한다. 공식 무역으로 남포항에 도착한 중국산 물품이 지방까지 전달되면서 제한적이지만 물가 하락을 불러오는 경우도 있다.

이시마루 지로 대표는 "남포로 물건이 들어오긴 한다. 남포로 들어온 물건 중에 중국 쌀 같은 것은 지방으로 유통이 된다"고 말했다. 

북∙중 간 해상밀수도 여전히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선박을 소유한 중국인 선장이 지난해 11월부터 촬영해 RFA에 제공한 동영상에는 중국 랴오닝성(요녕성)과 허베이성(하북성)의 경계에 있는 판진(반금)의 물류 창고에서 선박에 싣기 위한 물건을 반출하고, 이를 배에 실어 바다를 항해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직접 해상 밀수에 가담한 이 선장에 따르면 이 물건들은 공해상에서 북한 선박에 넘기는 것인데 지난해 9월 초부터 해상 밀수가 조금씩 고개를 들기 시작하더니 지금까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 선장의 설명이다. 

북∙중 간 해상 밀수 사정에 밝은 중국 단둥의 무역업자에 따르면 밀수를 통해 북한에 들어가는 물품은 건축 자재가 주를 이룬다. 

물론 밀수품 중에는 식용유와 설탕, 조미료, 냉동 쇠고기 등 식료품이 포함됐지만, 양이 많지 않은 데다 일반 서민용이 아닌 평양 특권층 또는 고위층을 위한 것일 가능성이 크고, 일부 품목이 시장에 유통된다 해도 운송비가 반영된 비싼 가격 탓에 아무나 구매하지 못할 것이라고 이 무역업자는 덧붙였다.

임을출 교수는 올해 북한의 사업 방향이 ‘농업 생산 증대’와 ‘새로운 농촌 건설’임을 고려할 때 북한이 비료와 건축자재, 일부 생활필수품 등을 중국에서 제한적으로 정식 수입할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임 교수는 "아무래도 대대적인 건설 사업이 일어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비료, 건축자재와 같은 것들이다. 이런 부분들은 어느 정도 중국과 교류를 통해서 확보하려 할 것"이라며 "물가 안정에 필요한 필수 생활 품목들도 제한적으로 수입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김정은 총비서는 국내에서 생산 가능하다면 중국에 의존하지 말라는 확고한 입장이 있기 때문에 아주 단계적∙점진적이고, 단기적으로 꼭 필요한 필수재 중심으로 교역이 재개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 코로나 이후 북한 시장에 대한 중국 영향력 줄어

북∙중 국경 봉쇄의 장기화에 따른 중국산 생필품의 품귀 현상과 고물가는 당장 북한 주민들이 직면한 어려움이다. 반면, 중국에서 수입하는 물품이 매우 적기 때문에 코로나 대유행 이후 중국이 북한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게 줄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임을출 교수는 "그동안 북한 경제를 공부하는 대부분 사람도 중국이 북한 시장 물가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얘기를 많이 해 왔다. 특히 중국에 공급을 의존해 왔기 때문인데, 지금은 전혀 다른 국면이 펼쳐지고 있고, 특히 코로나의 등장이 오히려 북한 내 공급 능력을 더 강화하는 데 기여했다고까지 보고 있다"고 말했다. 

단둥의 대북 무역업자에 따르면 앞으로 북한의 시장 물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북∙중 국경지역의 중국 측 물가가 크게 오르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돼지고기와 닭고기 등 육류가 지난해보다 5% 이상 올랐고, 옥수수와 밀가루, 쌀 가격 등도 상승했지만, 중국 당국의 물가 억제 정책으로 인상 폭이 크지 않다는 평가도 있다. 이는 북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물가 인상에 대한 국민들을 불만을 잠재우려는 중국 당국의 노력 때문이란 분석도 제기됐다. 

이런 가운데 북∙중 국경의 육로 개방은 코로나 대유행이 잠잠해지고, 북경 동계올림픽이 끝나면 본격적인 재개 여부를 검토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 경제 전문가인 미 한미경제연구소(KEI)의 트로이 스탠가론 선임 국장은 지난 10일 RFA에 북∙중 국경이 다시 열려도 일정 기간은 부분 개방만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트로이 스탠가론 국장은 "북한은 화물 열차 복귀를 위해 노력해왔다. 북한이 방역장을 지은 것을 볼 때 화물열차 운행 재개를 위한 준비는 이미 됐다고 생각하낟. 하지만 중국에서 코로나19가 재확산함에 따라 열차 운행은 언제든 중단될 수 있다. 만약 북한에서 무역을 위해 개인 트럭이 다닌다거나 개인 교류가 바탕이 된 다른 종류의 무역은 계속 연기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일정 기간은 완전한 국경 개방이 이뤄지지 않고, 부분 개방만 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코로나 기간 이어진 국경 봉쇄로 물자와 현금이 부족해진 상황에서 국경 개방이 늦어질수록 북한의 경기 침체는 더 깊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많은 북한 주민들이 북∙중 국경 개방을 통한 육로 무역의 재개로 시장 물가 안정화와 생활 수준 향상을 바라고 있지만,  그 소망이 당장 실현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민대호 기자 mdh50@korearepo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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