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관계 경색 국면 장기화…美 "대화 하자"vs 北 "변해야 만난다"
외교당국자 "한미·한미일 회담서 현실적 방안 논의… 바이든 친서 가능성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

 

미국에 조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한 올해도 북미관계는 장기 교착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조기에 대북정책 검토를 완료한 바이든 정부는 북한에 조건 없는 대화를 거듭 제의하고 한국과 함께 대북 인도주의 지원, 종전선언 등 대북 외교 방안을 모색했다. 하지만 북한은 적대정책 철회를 주장하며 호응하지 않았다. 

◇ ‘트럼프 시대’와 결별을 선언하며 출범한 바이든 행정부

올해 1월 20일 출범한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시대'와 차별화를 선언해 대북정책에서 이전 정부와는 다를 것이 예견됐다.

전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를 직접 만나는 등 전례 없는 정상외교로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시도했지만 실질적인 진전을 이루지 못한 채 북미관계는 오랫동안 멈춰버렸기 때문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출범 100여일 만인 4월 말, 대북정책 검토 완료를 선언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대응을 비롯한 산적한 국내 현안과 다른 주요 대외 사안에 밀려 진전 가능성이 낮은 북한 문제는 우선순위에서 밀려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지만, 비교적 빨리 새 정부의 대북 기조를 내놓은 것이다.

핵심은 ‘세밀히 조정된 실용적 접근을 통해 북한과의 외교를 모색한다’는 것이었다. 바이든 행정부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가 목표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일괄타결’이나 바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의 ‘전략적 인내’와도 다를 것이라고 강조했다.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관여 의지는 5월 21일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좀 더 구체화됐다. 과거 북 핵 6자회담 수석대표와 주한대사,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를 지내고, 2018년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준비에도 깊이 관여한 국무부의 대표적인 한반도 전문가 성 김 대사를 대북특별대표로 전격 임명한 것이다.

이 때 발표된 한미 정상 공동성명에는 2018년 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 공동성명 등 기존 약속을 존중하고 바이든 대통령이 “남북 대화와 관여, 협력을 지지한다”는 입장이 명시됐다.

또 “북한의 인권 상황 개선을 위해 협력한다”면서도 “북한 주민들에 대한 인도적 지원 제공을 계속 추진하기로 약속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 같은 메시지는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에 유화적 제스처를 보인 것으로 해석됐다. 게리 세이모어 전 백악관 대량살상무기 조정관은 당시 바이든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대북 제재 이행의 중요성 등 북한이 불쾌할 만한 주제를 언급하지 않은 점에 주목하며, 대북 관여에 대해 가능한 긍정적이려는 바이든 대통령의 노력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했다.

◇ 북한, 미국에 '대북 적대정책 철회' 선결 조건 지속

북한은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한동안 눈에 띄는 대미 메시지를 내놓지 않았다. 김정은 총비서는 바이든 행정부 출범 약 5개월 만인 6월에서야 첫 대미 메시지를 발표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방송' 은 18일 "(김정은 총비서는) 특히 새로 출범한 미 행정부의 우리 공화국에 대한 정책 동향을 상세히 분석하고, 금후 대미관계에서 견지할 적중한 전략전술적 대응과 활동 방향을 명시했다”고 보도했다.

김정은 총비서는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국가의 존엄과 자주적 발전 이익을 수호하고 평화적 환경과 국가의 안전을 담보하려면 대화에도 대결에도 다 준비돼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특히 대결에는 더욱 빈틈없이 준비돼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당시 전문가와 언론 등은 김 총비서가 미국에 적대적 표현 없이 ‘대화 준비’를 언급한 점을 들어 바이든 행정부와 대화 가능성을 열어 놓은 것으로 분석했다.

미국 정부도 김 총비서의 언급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특히 대북특별대표로서 처음 한국을 찾은 성 김 대표는 북한에 ‘조건 없는 대화’를 제안하며 “북한이 미국의 제안에 긍정적으로 반응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미국과 북한이 일단 만나서 서로가 원하는 모든 의제를 테이블에 올려놓고 논의하자는 제안이었다.

하지만 북한은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 리선권 외무상 등 연이은 고위급 담화를 통해 미국의 기대를 서둘러 일축했다. 그러다 7월 말, 남북 통신연락선이 13개월 만에 전격 복원되고 이 과정에서 남북 정상이 여러 차례 친서를 교환한 사실이 공개되면서 정세 반전의 신호인지 잠시 관심이 쏠리기도 했다.

그러나 북한은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문제 삼으며 곧바로 통신선을 다시 차단했고, 미국을 향해서도 ‘대북 적대정책 철회’가 대화의 선결조건임을 거듭 확인했다.

이와 함께 신형 장거리 순항미사일, ‘극초음속 미사일’,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SLBM) 등을 연이어 발사했고, 이를 ‘도발’로 규정한 미국을 향해 ‘이중기준’ 적용이라며 날을 세웠다. 바이든 정부의 대화 제의에 호응하지 않은 것이다.

미국은 이에 대해 “미국은 북한에 적대 의도가 없다”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또 한국 등 역내 동맹국과의 긴밀한 공조를 강조하며 대북 관여 방안을 모색했다.

실례로 식량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대응을 비롯한 대북 인도 지원 협력에 대한 한미 간 논의는 ‘마무리 단계’까지 진전된 것으로 전해졌다.

또 미국과 한국은 문재인 대통령이 9월 유엔총회 연설을 통해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와 비핵화의 입구’로 거듭 제안한 ‘종전선언’에 대해서도 협의를 이어갔다.

특히 10월에는 워싱턴과 서울에서 북 핵 수석대표는 물론 안보실장, 정보당국 수장에 이르기까지 각 급의 회동이 잇따르며 진전 여부에 관심이 쏠리기도 했다.

그러나 한미 간에는 종전선언 문안 협의가 사실상 마무리됐다는 보도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북한이 호응하지 않아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북한은 종전선언 자체에 대해선 “흥미 있는 제안”이라고 하면서도 미국이 적대정책 철회와 관련된 ‘구체적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 측에 따르면 북한은 한미 연합훈련 중단과 제재 완화를 선결조건으로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이 이와 관련해 먼저 전향적인 입장을 취할 것이라는 신호는 없다.

특히 북미 협상의 핵심 쟁점이었던 제재와 관련해 바이든 행정부는 ‘기존 유엔 제재의 완전한 이행’에 거듭 방점을 찍고 있다.

다만 제재를 포함해 ‘온갖 종류의 문제들과 관심사를 매우 전향적이고 창의적이며 유연하고 열린 자세로 협상장에서 논의할 수 있다’는 것이 바이든 정부의 입장이다.

다시 말해, 미국은 북한이 주장하는 제재 완화 등 ‘적대정책 철회’ 문제도 일단 협상장에서 논의하자는 것이지만, 북한은 자신들이 제시한 선결조건에 대한 ‘구체적인 행동’을 먼저 요구하고 있다.

결국 ‘누가 먼저 양보할 것인가’를 놓고 줄다리기하며 바이든 정부 첫 해 북미관계는 제자리걸음에 머물고 있다.

이에 더해 지난해부터 지속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 상황 역시 북한의 대외 기조에 직간접적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 꼽힌다.

북한은 지난해 1월 말부터 코로나 유입 차단을 이유로 국경을 전면 봉쇄한 뒤 여전히 이 조치를 유지하고 있다.

미 해군분석센터(CNA) 켄 고스 선임국장은 22일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코로나 국면이 북한 정권에는 ‘고립’의 명분을 제공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고스 국장은 북한은 자신이 바라는 무언가를 미국이 협상테이블에 올려 놨다면 코로나에도 불구하고 올해 미국과 관여할 용의가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은 그럴 용의가 없고, 따라서 북한에겐 코로나 국면이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을 때까지 대화를 거부하고 고립을 계속 유지할 ‘좋은 핑곗거리’가 되고 있다고 고스 국장은 설명했다.

바이든 행정부 역시 북한의 호응이 없는 상황에서 굳이 ‘새로운 구상’을 시도할 여건이 아니라는 분석도 있다. 로버트 갈루치 전 국무부 북 핵 특사는 23일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과 대화 재개를 정말로 원한다면 다소 극적인 무엇인가를 해야 할 것”이지만 미중 경쟁, 다시 불거진 러시아-우크라이나 문제, 코로나 변이 재확산, 이란 핵 합의 복원 등 다른 현안으로 여력이 없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갈루치 전 특사는 현재 바이든 대통령의 관심은 분산돼 있다며, 바이든 행정부가 어느 시점에 북한 문제에 집중하겠지만 현재는 그럴 이유가 없는 상황에서 ‘북한 관련 새로운 동북아 구상’에 나설 적기가 아닌 것으로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은 ‘세계 인권의 날’이었던 지난 10일 북한 리영길 국방상과 중앙검찰소 등을 제재 명단에 추가했다. 바이든 행정부에서 나온 첫 대북 제재 조치인데, 이에 대해 북한은 이례적으로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북한은 이달 하순 노동당 전원회의 소집을 예고한 가운데, 김정은 총비서가 2022년 새해 미-북 관계를 가늠해볼 수 있는 대외 메시지를 발표할지 주목된다.

김태훈 기자 thk@korearepo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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