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중앙통신은 지난 1월 5일 평양에서 노동당 제8차 대회가 개막했다고 6일 보도했다.(사진=조선중앙TV 캡처)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1월 5일 평양에서 노동당 제8차 대회가 개막했다고 6일 보도했다.(사진=조선중앙TV 캡처)

 

집권 10년 차를 맞은 김정은 정권은 북한 내에서 선대와는 차별화되는 독자적인 사상 체계를 정립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정보원은 2021년 10월 28일 비공개로 진행된 국정감사에서 ‘북한에서 내부적으로 ‘김정은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등 독자적 사상체계 정립을 시작했다’고 보고했다.

이와 관련해 통일부 차덕철 부대변인은 국가정보원의 국정감사 하루 뒤에 “김정은 위원장 집권 10년 차를 맞아 정치적 위상을 강화하는 동향이 지속적으로 파악되고 있다”며 “제8차 당대회를 계기로 김정은 위원장을 노동당 총비서로 추대하고, 「당규약」 개정을 통해 수반으로 지칭하면서 사실상 선대 수준의 정치적 위상을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노동신문이나 조선중앙통신을 비롯한 북한 매체에서 ‘김정은주의’라는 표현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만약 국가정보원의 국정감사 보고 내용이 사실이라면 김정은 정권 출범 이후 북한이 10년 동안 유지하던 이른바 ‘김일성-김정일주의’가 머지않아 새로운 이데올로기인 ‘김정은주의’로 대체될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하다.

그렇지만 이러한 예상은 북한이 2021년 1월 개최한 제8차 당대회에서 “노동당은 김일성-김정일주의당”이고 “노동당은 김일성-김정일주의를 유일한 지도사상”으로 삼는다고 규정한 대목과 잘 연결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통일연구원 김갑식 통일정책연구실 선임연구위원과 장철운 통일정책연구실 부연구위원)은 8차 당대회가 끝난 지 1년도 지나지 않아 북한 내에서 새로운 지도사상, 즉 이데올로기가 ‘김정은주의’라는 비교적 구체적인 표현으로 회자되고 있다고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한다.

 물론, 북한이 머지않아 당대표자회나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개최해 「당규약」에서 당의 지도사상과 관련된 부분을 수정할 수도 있지만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김정은 정권 출범 이후 당대회가 아닌 절차를 통해 「당규약」을 개정한 사례는 2012년 4월 제4차 당대표자회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김정은주의’가 북한의 명실상부한 새로운 이데올로기로 「당규약」에 명문화되기 위해서는 제9차 당대회까지 기다려야 할 것이다. 그런데 김정은 시대 들어 북한은 5년 단위로 당대회를 개최하는 관행을 다시 만들어나가고 있다. 다시 말하면, ‘김정은주의’가 「당규약」에 명문화돼 새로운 이데올로기로서 정당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2026년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이 역시 현실적이지 않아 보인다.

일반적으로 이데올로기는 한 국가 또는 사회에서 정치적 지배의 정당성 확보, 정치적 목표 설정과 정책 노선 제시, 주민 설득 및 동원 등을 추진할 수 있는 사상적 밑거름으로 기능한다. 특히, 북한을 비롯한 수령제 사회주의 국가에서 이데올로기는 수령만이 제시할 수 있으며, 수령의 후계자만이 고수․관철 및 발전․풍부화할 수 있는데, 이로 인해 사회주의 국가에서 이데올로기 문제는 최고지도자의 정치적 위상과 직결되는 사안이라고 할 수 있다. 당-국가체제를 기반으로 하는 사회주의 국가의 기본적인 이데올로기는 ‘마르크스-레닌주의’인데, 북한에서도 정권 수립 초기의 이데올로기는 ‘마르크스-레닌주의’였다.

그러나 김일성 주석이 수령의 위상을 차지하는 과정에서 김 주석이 독자적으로 창시했다고 선전되는 ‘주체사상’이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대체하는 새로운 이데올로기로 채택됐다. 김정일 시대에는 김정일 위원장이 주창한 ‘선군사상’이 북한의 이데올로기로 제시됐고, 김정은 시대 들어서는 지금까지 ‘김일성-김정일주의’가 새로운 이데올로기로 자리매김해왔다.

북한의 이데올로기 관련 논의로 돌아가면, 국가정보원은 다양한 경로로 취합된 많은 정보를 심층적으로 분석한 뒤 국정감사에서 ‘김정은주의’라는 표현이 북한 내에서 사용되고 있으며, 이를 주요한 근거로 삼아 김정은 정권이 선대와 차별화되는 독자적인 사상체계를 정립하기 시작했다고 보고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김정은주의’라는 표현은 북한 역사에서 확인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의 변화, 즉 김일성 주석의 주체사상 및 김정일 위원장의 선군사상과 부드럽게 연결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어감상으로는 ‘김정은주의(-ism)’보다 ‘김정은사상(thought)’이라는 표현이 더욱 적절해 보인다. ‘김정은사상’이라는 표현은 ‘김정은주의’ 라는 표현보다 현재 중국에서 강조하는 ‘시진핑 사상’과도 더욱 잘 어울리는 것처럼 보인다.

이와 관련된 단초는 2021년 11월 중순 평양에서 개최된 제5차 3대혁명선구자대회에서 일정하게 찾을 수 있다. 이 대회는 폐막하면서 “3대혁명의 기치높이 전면적으로 발전된 사회주의강국을 하루빨리 일떠세우자”라는 제목의 호소문을 채택했는데, 호소문은 “현 시기 사상혁명의 중핵적인 문제, 최우선 과제는 전당과 온 사회를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의 혁명사상으로 일색화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기에 나타난 ‘김정은의 혁명사상’은 아마도 김정은 위원장이 지금까지 제시했고, 앞으로 제시할 여러 가지 사상적 측면에서의 담론을 포괄적으로 지칭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김정은 정권이 출범한 이후 지난 10년 동안 ‘김일성-김정일주의’라는 이데올로기를 바탕으로 인민대중제일주의, 우리국가제일주의, 자강력제일주의 등이 제시됐던 것처럼, 앞으로 선대와 차별화되는 김정은 체제만의 독자적인 이데올로기를 정립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담론이 추가로 제시될 수 있으며, 이러한 내용을 총론적 차원에서 ‘김정은의 혁명사상’이라고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여러 담론이 축적되고 숙성되는 경로를 거쳐 김정은 정권이 공식화할 수 있는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제시될 것이다. 새로운 이데올로기의 명칭이 ‘김정은주의’가 될 것인지 아니면 ‘김정은사상’이 될 것인지는 어쩌면 부차적인 문제일 수 있다. 명칭이 무엇인지에 상관없이 새로운 이데올로기의 핵심적인 내용은 김정은 정권이 집권 10년 동안 ‘김일성-김정일주의’를 내세우며 강조해왔던 ‘인민대중제일주의’와 ‘우리국가제일주의’, ‘자력갱생’ 등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다만, 주체사상 및 선군사상과 달리 새로운 이데올로기에 김정은 위원장의 성명이 그대로 포함될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에서 새로운 이데올로기는 선대의 사상과 업적을 발전적으로 계승하면서도 차별화되는 김 위원장만의 독자적인 사상으로 선전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한편, 앞으로 북한에서 김정은 정권의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공식화된다면 아마도 북한의 이데올로기는 ‘개인에게 일관되고 의식적인 세계관을 제공하는’ 순수(pure) 이데올로기와 ‘개인에게 행동의 합리적 도구를 제공하는’ 천(practical) 이데올로기로 분화하면서 위계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김일성 시대 주체사상이 북한의 공식 이데올로기로 채택된 이후 기존의 이데올로기였던 마르크스-레닌주의가 순수 이데올로기로 변화되고, 새로운 이데올로기인 주체사상이 실천 이데올로기의 자리를 차지한 바 있다. 김정일 시대에는 주체사상이 순수 이데올로기가 되고, 당시에 새로운 이데올로기로 제시된 선군사상이 실천 이데올로기로 자리잡았다. 이러한 연장에서 향후 북한에서 공식화될 김정은 시대의 새로운 이데올로기는 실천 이데올로기로, 김정은 집권 초반 10년 동안 북한의 이데올로기였던 ‘김일성-김정일주의’는 순수 이데올로기로 추상화될 가능성이 있다.

백민일 기자 bmi21@korearepo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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