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집권 이후 당국가체제로 환원과 핵미사일 고도화로 군 위상 약화

북한 김일성 주석 사망 27주기를 맞아 김정은 총비서가 7월 8일 0시 당과 군 간부들과 금수산태양궁전을 찾았다. (사진=조선중앙TV 캡처)
북한 김일성 주석 사망 27주기를 맞아 김정은 총비서가 7월 8일 0시 당과 군 간부들과 금수산태양궁전을 찾았다. (사진=조선중앙TV 캡처)

 

북한체제는 당이 국가를 지배하는 당국가 체제이다. 당은 정책을 결정하고 국가기관은 집행을 한다. 국가조직은 당·정·군 체계이며, 당(黨)은 조선노동당으로 정치사상을, 정(政)은 최고인민회의와 내각으로 입법과 경제를, 군(軍)은 조선인민군으로 군사부문을 책임진다.

이흥석 합동참모본부 전비태세검열실 대령의 2019년 논문 '역사적 관점에서 살펴 본 북한 군 엘리트의 위상 변화' 에 따르면 김정은 총비서는 2011년 집권 이후 군부실세인 이영호를 숙청하고, 인민무력부장과 총참모장을 수시로 교체하면서 군부를 장악했다. 또한, 핵무기와 미사일을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고도화하여 미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구비했다.

김 총비서가 선대 김일성-김정일 수령의 유산인 핵무기의 고도화를 단기간에 달성하고, 전향적으로 북미간 비핵화 협상에 합의한 배경에는 당정군엘리트의 동의와 지원이 있었다.

◇ 김정은 정권, 당 기능 회복·핵미사일 고도화와 군 엘리트

김정은 총비서는 집권 10년 동안 김일성-김정일 시대를 뒷받침한 군에 변화를 주며 당 의 기능을 회복하고, 핵 미사일을 고도화하는 자위력을 갖췄다.

김정은 체제 10년 동안 군 엘리트는 적잖은 변화를 거쳤으며, '군 엘리트의 세대교체(2012~2015)' 시기와 '군 엘리트의 유지(2016~2018)'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북한은 2011년 12월 김정일이 사망한 후 김정은을 2012년 4월 11일 열린 제4차 당대표자회에서 노동당 제1비서,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 당중앙군사위원장으로 추대했다. 더불어 정치국은 35명 중 16명을 교체됐다.

군 엘리트는 8명으로 변동이 없으나 조명록, 김영춘, 리용무, 주상성, 우동측이 물러나고 현철해,김원홍, 이명수, 오극렬, 리병삼이 임명됐다. 이명수는 국방위 행정국장에서 인민보안부장으로 보직되어 위상이 높아졌다. 비대해진 군부의 세력을 견제하기 위하여 군부 원로격인 김영춘, 리용무는 퇴출하고 장년층을 새롭게 보임하면서 군부 세대교체가 시작됐다. 당 중앙위원은 총 115명을 선출하였으며 군 엘리트는 42명으로 제3차 당대표자회와 유사한 수준을 보였다.

사회주의국가에서 군대는 당의 통제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김정일시대는 선군정치로 당 기능이 사실상 정지됐다. 한편 김정일이 2009년부터 김정은 후계체제를 구축하면서 당국가체제로의 복귀를 추진하던 중 사망하였고, 더불어 후계준비가 부족하였던 김정은 총비서 입장에서는 군에 대한 당적통제가 최우선 과업이었을 것이다.

김정은 총비서는 군내 당적지도를 강화하는 가운데 2012년 4월 16일 김일성 생일 100주년 열병식에서 먼저 ‘항일빨치산 정신이 인민군대의 좌우명이며 전통’이라고 언급하고 ‘인민군대는 사상적 순결체, 조직전일체’가 되어야 하며 ‘관병일치의 전통적 미풍을 강화하자’고 강조 하면서 ‘군민일치는 사회의 근본이고 선군혁명의 천하지 대본’이라고 언급했다. 이러한 기조하에 군 엘리트에 대한 ‘강압과 회유전략’으로 인민군대에 대한 세대교체를 시작했다.

김 총비서는 가장 먼저 이영호를 2012년 7월에 숙청하고, 최용해는 12월에 대장으로 강등하여 혁명화 교육을 받도록 했다. 인민무력부장은 2012년 김영춘, 김정각, 김격식으로 교체했고 2013년은 장정남으로 2014년에는 현영철로 바뀌었으나, 현영철은 2015년 4월경 총살되었으며 후임은 정치군관 출신인 박영식을 임명했다. 총참모장은 2012년 이영호에서 현영철로, 2013년에는 김격식에서 이영길로교체했다. 인민군 핵심실세인 인민무력부장과 총참모장을 수시로 교체한 것은 김정은의 리더십을 안정성으로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군의 핵심요직을 수시로 교체함으로써 인민군대에 대한 당적지도를강화하면서 유일영도체계 확립에 반하는 세력을 제거하여 김정일시대에 비대해진 군부세력을 약화시키는 의도이다.

더불어 인민군내 당적 지도를 담당하는 총정치국장도 교체했다. 2014년 4월 26일 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를 열어 최용해를 해임하고 당 조직지도부에서 성장한 황병서를 대장으로 진급시켜 총정치국장에 보임했다. 군인출신으로 당 조직의 전문가인 황병서를 총정치국에 임명한 것은 기존 군부실세의 세력을 약화시켜 인민군대에 대한 김정은의 영도를 강화하는 조치라고 할 수 있다.

김 총비서는 군에 대한 당적지도를 강화하면서 당 기구를 정상화해 당 중심의 정치체제도 복원했다. 2013년 3월 31일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소집해 당 정치국을 재편했다. 박봉주를 정치국 위원으로, 총참모장 현영철, 인민무력부장 김격식, 인민보안부장 최부일을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임명했다. 김격식은 인민무력부장 김정각을 대신하여 후보위원으로 그리고 최부일은 인민보안부장 이명수가소환되면서 보임됐다. 현영철은 차수에서 대장으로 강등됐으나 복권후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선출됐다. 새로 선임된 3인은 기존 인물에비하여 동일한 직책에 보임됐으나 정치국 위상은 한 계단 낮아졌다.

정치국내 군 엘리트는 7명으로 2012년과 동일하나 상무위원은 임명되지 않았고, 정위원은 현철해와 김원홍 2명으로 1명이 줄었으나후보위원은 오극렬, 현영철, 김격식, 최부일, 이병삼 등 5명으로 3명이 늘어났다.

이어서 2014년 4월 8일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회의를 개최해 장성택 처형 이후 당내 세력을 재편했다. 김정각, 현철해, 이명수등 혁명 2세대는 정치위원에서 제외됐다. 또한, 정치국 후보위원은군부실세로 등장한 김격식, 최부일, 리영길이 선출됐다. 군 엘리트는 2013년과 동일하게 7명이나 정위원으로 김영춘, 리용무, 김원홍등 3명으로 1명이 늘었고, 후보위원은 오극렬, 김격식, 최부일, 리영길이 임명되어 1명이 줄었다.

'군 엘리트의 유지(2016~2018)' 시기는 핵미사일 고도화와 비핵화 협상과 맞물린다. 북한의 제7차 당대회는 2016년 5월 6일부터 9일까지 열렸다. 당 중앙위원회는 정위원 129명을 포함해 235명을 선출해 제3차 당대표자회에서 선출했던 229명에 비해 6명이 늘어났고 선출된 인원중 과반수를 넘는 129명은 새롭게 뽑혔다. 반면 군부 엘리트의 비중은 줄었다. 제3차 당대표자회에서 선출된 중앙위원회위원 중 군부의 비율은 32%였으나 제7차 당대회 결과 47명으로 28%로 감소했으며 당정군 엘리트 중 최소인원이 선출됐다.

정치국 상무위원은 2012년 김정은 체제 출범시기와 비교해 보면 군 엘리트는 이영호가 제외되고 황병서가 들어왔다. 황병서는 2010년 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으로 임명된 이후 지속적으로 직위가 상승했다. 정치국 위원은 12명에서 14명으로 증가하였으며, 군 엘리트는 총 10명이 보직되었는데 상무위원에 황병서, 정위원에 김영철,박영식, 이명수, 김원홍, 최부일 등 5명, 후보위원은 노광철, 김수길, 리병철, 리영길 등 4명으로 2014년 대비 늘어났다.

북한은 2018년 제7기 3차 전원회의를 개최하여 당 중앙위원회위원 133명을 선출했다. 군 엘리트는 4명으로 34%를 차지하였으며제7차 당대회와 유사한 수준이다. 정치국내 군엘리트는 이명수, 최부일, 김수길, 리영길, 노광철 등 5명으로 전체 비율에서 감소했다

김정은 시대 군 엘리트의 위상을 살펴보면 김정일 집권기에 개최했던 2010년 제3차 당대표자회에서 선출한 당 중앙위원회 중 군엘리트의 비율은 38%였다. 김정은 총비서가 권력을 승계한 후 열린 제4차 당 대표자회에서 군 엘리트의 비율은 37%로서 유사한 수준을 보였다. 김정은 체제에 대한 일부 연구는 당 우위의 정치체제로 전환을 하면서 군 엘리트의 위상이 낮아졌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2016년 제7차 당대회와 2018년 제7기 3차 전원회의에서 당 중앙위원회 중 군 엘리트의 비율이 34~36%라는 분석은 김정은이 집권한 이후 선당후군의 당국가체제로 정상화하였지만 군부의 위상은 변함이 없다고 볼 수 있다. 즉 북한정치체제에서 군부는 일정부분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오히려 김일성과 김정일 시대에 비해 당 중앙위원회에서 군 엘리트의 비율은 높게 나타났다.

반면, 당 핵심엘리트로 볼 수 있는 정치국내 군 엘리트의 위상은 편차가 많았다. 제3차 당 대표자회부터 제7차 당대회까지 군 엘리트는 25~30% 수준을 보였으나, 제7기 3차 전원회의에서 14%로대폭 감소했다. 김일성과 김정일 시대에 당 정치위원의 비중이 대략25% 수준을 유지한 것을 고려한다면 현저하게 낮아졌다

◇ 김정은 정권과 군 엘리트의 위상 변화

당 정치국에서 군 엘리트의 비율은 제1차, 2차 당대회는 5% 미만이나 제3차 당대회부터 제4차 당대표자회까지 20% 중반 수준을 유지했다. 그러나 김정은 체제가 안정화 된 것으로 볼 수 있는2016년은 36%, 2018년은 17%로 진폭이 크다.

정치국내에서 군 엘리트 비율은 1946년 제1차 대회에서는 0%, 제2차 당 대회는 4%였으나 제3차 당 대회이후 증가했다. 김일성은 제3차 당대회에서 개인숭배에 대한 당내 비판을 극복하고 박헌영 등 국내공산주의파, 허가이 등 소련파를 숙청했으며, 이에 따라 반사적으로 김일성계열의 빨치산이 부상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당권력구조에서 패권적 연합질서가 무너지고 김일성파의 독점화가 이루어진 것으로 설명한다. 빨치산의 당 권력 독점은 인과적으로군 엘리트의 위상을 견인하면서 제3차 당대회 이후 6차 당대회까지20% 중반 수준을 유지했다.

한편, 김정일 집권시기는 선군정치로 말미암아 국방위원회 중심의 국정운영이 이루어지면서 군 엘리트가 정치전면에 등장했다. 반면에 정치국의 기능은 형해화되면서 구성원에 대한 충원도 원활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정치국의 기능을 대체한 국방위원회의 위상이높아지면서 군 엘리트의 비율은 평균 64%를 유지했다. 김정은 후계체제 구축과정에 열린 2010년 제3차 당대표자회에서도 25%로서 김일성 집권기와 비슷한 수준을 보였다.

당 정치국에서 군 엘리트의 비율은 김정은 집권 이후 열린 제4차 당대표자회에서 26% 수준으로 기존과 비교해 차이가 없다. 김정은 총비서는 집권 이후 군 엘리트에 대한 세대교체를 단행하고 인민무력부장과 총참모장을 빈번하게 교체하면서 당이 군을 통제하는 당 우위의 체제를 확고히 했다. 제7차 당대회는 김정은이 대내외적으로 권력의 안정성을 과시하는 정치행사였으며 군 엘리트의 비율은 36%로서 최대치를 나타냈다.

이러한 현상은 군의 위상이 약화되었다는 일부 연구와 상이한 결과로볼 수 있으나 김정은이 당 우위의 체제 안정을 바탕으로 핵미사일의 고도화를 이루는 과정에서 야기된 유엔제제, 북미갈등 등 대외안보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군부를 배려한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2018년 11월에 열린 제7기 3차 전원회의에서 정치국내 군엘리트의 비율은 17%수준으로 감소했다. 1948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의 군 엘리트 비율을 보이고 있다. 이것은 대외 안보환경 변화에따라 북한의 핵미사일에 대한 북미 협상이 진행되면서 협상력 제고를 위해 당정 엘리트의 입지를 강화한 것으로 볼 수 있으나, 향후 군 엘리트 위상의 변화를 추적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당 중앙위원회의 경우 김정은 총비서 집권 이후 열린 제4차 당대표자회부터 2018년 제7기 3차전원회의까지 군엘리트의 수준은 평균 35% 이상의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북한 정치체제가 당이 군을 통제하고 있으나 북한이 처한 대내외적 안보환경을 고려하면 군 엘리트는 핵심적인 정치세력으로 영향력을 가지고 있으며 체제 안정에 중요한 기반임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 군 엘리트의 위상 변화와 그 함의

북한은 군 엘리트를 항일빨치산 세력을 기반으로 제도적으로 재생산했다. 김일성시대에 생산된 군 엘리트는 김일성 유일지배체제확립의 후원세력이었으나, 군의 영향력 확대는 역풍을 맞아 1969년을 기점으로 당과 수령의 군대로서 군사분야에 충실했다.

김정일 집권기는 대내외적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선군정치를 추진하면서 군 엘리트의 위상이 높아졌다. 이후 김정은 후계체제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후원세력의 역할을 하였으나, 당 우위의 정치체제로 환원하는 과정에서 강제적인 세대교체를 했다. 특히 김정은이 승계한 이후 핵미사일 수준을 고도화하면서 상대적으로 재래식 전력은 노후화됨으로써 이를 관장하는 군부 엘리트의 위상이 낮아졌다는 평가가 있었다.

이흥석 대령은 논문에서 북한 정치체제에서 권력의 중핵이라고할 수 있는 당 정치국과 당 중앙위원회 위원에서 군 엘리트의 위상 변화에 대한 함의를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첫째, 김정은 총비서 집권 이후 당 우위의 정치체제로 환원되고, 핵미사일능력 고도화에도 불구하고 군부의 위상은 유지되고 있다. 북한 권력의 중핵으로 볼 수 있는 당 정치국과 당 중앙위원회에서 군 엘리트의 비율은 제3차 당 대회 이후 20~30%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에 뿌리를 둔 역사 재해석은 군사를 기반으로한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은 최고지도자의 세습 승계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김정일과 김정은 후계구축 과정에서 인민군 계급과 최고사령관직을 우선 부여한 것, 또한 민간인 신분이었던 최용해, 장성택, 김경희에게 인민군 계급을 달아준 것은 군부가 북한체제의 근원임을 확인한 조치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대내외적 정치환경의변화에도 불구하고 군 엘리트의 위상은 견고하다.

둘째는 당정군 주요직위에 대한 겸직이다. 겸직은 당정군엘리트상호간 견제하고 내부 경쟁과 대외적인 배타성을 유지하면서 수령에 대한 충성심을 결집하는 순기능을 한다.

북한은 당국가체제이므로 당과 국가기관에 대한 이원화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군을 당적으로 지도하는 당중앙군사위원회, 당 정책을 결정하는 당 정치국과 당중앙위원회, 국가정책을 집행하는 국무위원회에는 군부 실세가 포함돼 있다. 총정치국장 김수길, 인민무력상 노광철, 인민보안상 최부일, 국가보위상 정경택은 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 정치국위원, 국무위원회 위원을 맡고 있다. 총참모장 이영길은 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 정치국 후보위원을 겸직하고 있다. 이러한 겸직은 체제내에서군엘리트가 정치엘리트의 역할도 병행하면서 위상을 유지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셋째는 엘리트 충원에 대하여 계서적이며(階序的) 폐쇄적이다. 북한은 수령에 대한 충실성, 사상성, 출신성분을 종합적으로 검증한 인물 중에서 엘리트를 충원하여 체제 안정을 도모하고 세습체제를지원한다. 당정군 간부들은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서 출발하여 이후당 대회나 당대표자회에서 당 중앙위원회에 선출되는 계서적 절차를 거친다. 또한 대부분의 핵심 보직은 당 중앙위원회 위원이나 후보위원 중에서 선출되고 교체되므로 당정군엘리트에 대한 충원은폐쇄적이다. 군 엘리트로 이러한 과정을 거친다.

넷째, 체제 보위와 세습 승계에 기여하면서 노장청배합과 원로예우의 원칙을 유지했다. 빨치산 출신을 중심으로 형성된 최용건,김광협, 최현 등의 혁명 1세대 군부엘리트는 김일성 집권시기 유일지배체제확립에 기여했다. 혁명 1세대 군부엘리트는 김정일의 세습을 지원하였고, 김정일시대에 성장한 조명록, 김영춘, 리용무 등 혁명 2세대가 중추가 되어 김정은의 세습을 후원하였다. 김정은시대는 혁명 2세대 군부엘리트와 김수길, 노광철 등 혁명 3세대 군부엘리트가 3대 세습의 안정에 기여하고 있다.

북한에서 군 엘리트는 체제 보위의핵심세력으로 3대 세습의 중요한 지원세력이다. 그러나, 김정은 집권 이후 당국가체제로 환원과 핵미사일 고도화에 따른 재래식 전력의 가치 저하는 군부의 위상이 약화될 수 있는가능성을 포지하고 있으며, 이것은 체제의 안정을 위협하는 잠재적 긴장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김태훈 기자 thk@korearepo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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