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中 동계올림픽, 3월 한국 대선…北의 선택 시간 제한

1월 9일 평양에서 열린 8차 북한 노동당 대회(사진=노동신문 갈무리)
1월 9일 평양에서 열린 8차 북한 노동당 대회(사진=노동신문 갈무리)

 

올해 초반부터 한국과 미국은 다양한 루트와 방안을 들고 북한과 대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별다른 소득 없이 한해가 저물고 있다.

비핵화 협상에 관한 북한의 입장을 가늠할 시간이 다가오는 가운데 내년 3월까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따라 한반도 정세가 급변할 전망이다.

2021년은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와 문재인 정부가 북한에게 현상 타파의 손짓을 보낸 한 해였다.

올 1월 출범한 바이든 행정부는 4월 30일 새로운 대북정책을 발표했다.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목표로, 이를 위해 ‘세심하게 조정된 실용적 접근’을 한다는 게 핵심이다. 이어 바이든 행정부는 북한에 대해 아무런 전제조건 없이 만날 용의를 여러 차례 밝혔다. 최근에는 국무부 2인자인 웬디 셔먼 부장관이 10월 19일 “미국은 북한과 직접 접촉을 통해 구체적인 제안을 전달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미국의 손짓에 북한이 계속해서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문재인 대통령이 나섰다. 문 대통령은 9월 21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한국전쟁 종전선언을 제안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가 모여 한반도에서의 전쟁이 종료되었음을 함께 선언하길 제안한다”고 말했다. 

이에 북한 리태성 외무성 부상은 24일 담화를 통해 “종전선언은 시기상조”라고 일축했다. 그런데 7시간 뒤에 북한의 대남, 대미 정책을 총괄하는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별도 담화를 통해 “종전선언은 흥미있는 제안이고 좋은 발상"이라고 밝혔다.

김 부부장은 다음날인 25일 또다시 담화를 내어 “종전이 때를 잃지 않고 선언되는 것은 물론 북-남 공동연락사무소의 재설치, 북-남 수뇌 상봉(정상회담)과 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고 밝혔다.

김정은 총비서도 북-미 관계와 관련해 변화의 조짐을 보였다. 김 총비서는 올해 1월 평양에서 열린 8차 노동당 대회에서 미국을 ‘최대 주적’으로 명시했었다. 

김 총비서는 9월 29일 최고인민회의 연설에서는 미국의 대화 제의를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방송은 ”미국이 외교적 관여와 '전제조건 없는 대화'를 주장하고 있지만 이는국제사회를 기만하고 저들의 적대행위를 가리기 위한 허울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김 총비서는 10월 11일 열린 ‘국방발전 전람회’ 기념연설에서는 “우리의 주적은 남조선이나 미국이 아니”라고 밝혔다.

북한은 미국의 ‘조건 없는 만남’ 제안에 아직 아무런 답을 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바이든 행정부는 ”공은 북한에 있다”고 말하고 있다.

로버트 아인혼 전 국무부 비확산·군축담당 특보는 “김정은의 셈법이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지만 명백한 것은 북한이 미국과 관여할 의사가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국가정보원이 운용하는 남북채널을 통해 자신들의 입장을 밝혔다. 북한과 물밑접촉을 담당한 박지원 국정원장은 10월 28일 북한은 종전선언이 이뤄질려면 한-미 연합훈련 중단과 제재 완화가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11월 들어 문재인 정부는 미국과 후속 협의를 통해 종전선언의 원칙과 문안 등을 마무리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서훈 청와대 안보실장은 12월 2일 텐진에서 양제츠 중국 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원을 만나 종전선언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한-미, 그리고 한-중은 종전선언에 원칙적 합의를 했지만 최대 관건인 북한이 호응하지 않고 있다. 북한은 10월 국정원을 통해 자신들의 입장을 밝힌 이래 줄곧 침묵을 지키고 있다.

통일연구원 조한범 선임연구위원은 이는 북한 수뇌부가 종전선언 수용 여부를 놓고 고심하고 있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조 연구위원은 "북한은 싫으면 바로 싫다고 말한다. 한-미, 한–중 간에 많은 얘기가 오가는데 북한은 조용하다. 이게 싫으면 벌써 입장을 냈을 것이다. 그런데 관망하는 이유는 종전선언을 할 수도 있다, 자신들이 원하는 내용이 담기면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현재 김정은 총비서는 종전선언을 받을 수도 거부할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처했다고 말한다.

우선 한국과 미국이 준비한 종전선언 프로그램은 주고받기식 비핵화로 보인다. 종전선언이라는 입구를 통해 북-미 대화를 재개하고 핵 동결과 영변 비핵화를 제재 1-2개와 맞바꾸자는 것이다.

또 한국과 미국은 북한이 종전선언을 수용할 경우 백신과 식량, 그리고 기타 인도적 지원을 하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북한은 제재 완화와 적대시 정책 철폐를 종전선언의 선결조건으로 삼고 있다. 따라서 북한이 한국의 종전선언을 수용한다면 이는 기존 입장에서 상당히 후퇴하는 셈이 된다.

이런 이유로 워싱턴의 북한 전문가인 켄 고스 해군분석센터 국장은 미국이 먼저 제재 완화를 보장하기 전에 북한이 먼저양보할 생각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종전선언을 거부하기에는 북한 내부의 경제난이 너무나 심각하다. 북한은 지난해 1월부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유입을 막기 위해 북-중 국경을 봉쇄했다.

북-중 국경이 차단되자 북한 내 400여 개 종합시장과 장마당이 큰 타격을 입었다. 특히 밀가루와 식용유 같은 생활필수품이 들어오지 않자 물가가 급등했습니다. 또 외화난이 가중됐다. 원부자재가 수입되지 않아 많은 공장과 기업소가 돌아가지 않거나 개점휴업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북한의 지난해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전년보다 4.5% 감소했다. 이는 `고난의 행군' 시절인 1997년(-6.5%) 이후 23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뒷걸음질 친 것이다.

미국의 북한 경제 전문가인 윌리엄 브라운 조지타운대 교수는 올해도 북한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할 것으로 전망했다.

브라운 교수는 "만일 북한이 새로 내놓은 경제발전 5개년 계획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경우 김 총비서의 권위는 한층 더 실추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현재 김정은 총비서 앞에 두 가지 전략적 선택지가 있다고 말한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의 종전선언에 호응해 북미대화에 나서는 것이다. 12월 또는 1월에 남북 화상 정상회담을 통해 모종의 공감대와 절충을 이룬 뒤 2단계로 종전선언과 북미대화에 나서는 것이다.

그러면 대북 제재 완화와 백신을 비롯한 지원, 그리고 북미관계 정상화의 길이 열릴 수 있다.

또 다른 선택지는 기존의 고립노선을 고수하는 것이다. 한국의 종전선언을 거부하고 남북대화와 북미대화도 거부하는 것이다.

미사일 발사 등 도발을 할 수도 있다. 이 경우 대북 제재와 압박은 계속되고 경제난은 한층 가중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고 말한다. 베이징동계올림픽은 내년 2월 4일 시작되고, 이어 3월 9일에는 한국의 대통령 선거가 실시된다. 또 11월에는 미국 중간선거가 실시된다.

따라서 아무리 늦어도 내년 3월 이전에는 김 총비서가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조한범 연구위원은 말했다. 조 연구위원은 "3월에는 한국 대선 또 중국도 양회에 들어가기 때문에 종전선언을 도출하기 위한 시간은 2월 말까지가 유효한 시간이다”고 말했다. 

북한 수뇌부의 선택에 따라 한반도 정세는 대화와 비핵화 진전 쪽으로 나아갈지, 아니면 도발과 제재의 악순환을 반복할지 여부가 결정될 전망이다.

백민일 기자 bmi21@korearepo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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