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집권 10년을 맞았다. 부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11년 12월 17일 사망한 뒤 곧바로 권력을 승계한 김 총비서는 집권 10년 간 핵과 미사일 능력 고도화에 성공했지만 ‘핵 외교’를 통해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미국과의 관계도 실패했다고 미국 전직 관리들이 평가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집권 직후부터 핵과 미사일 개발에 집중했다. 2012년 바락 오바마 행정부와 맺은 핵 활동 중단을 핵심으로 하는 ‘2.29 합의’를 두 달 만에 장거리 로켓 발사로 파기했고, 곧이어 5월 헌법에 ‘핵 보유국’을 명기하고 ‘핵무력, 경제건설 병진 노선’을 채택했다.

2013년 3차 핵실험을 비롯해 2017년 6차 핵실험까지 연이어 진행하고 이 기간 다양한 중.단거리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시험발사했다.

북한은 2017년 9월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에서 역대 최대 규모의 6차 핵실험을 실시했고, ICBM에 장착할 수 있는 수소탄을 성공적으로 실험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2017년 11월 ICBM급 ‘화성-15형’ 시험 발사와 함께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2003년에서 2006년 6자회담 차석대표를 지낸 조셉 디트라니 전 국가비확산센터 소장은 15일 VOA와 전화통화에서 김 위원장 집권 10년 기간 중 가장 인상깊은 점으로 핵과 미사일 능력 고도화를 꼽았다.

디트라니 전 소장은 “김정은이 북한의 역량을 통합해 수소탄과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 등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을 빠르게 진전시킨 점을 인상 깊게 봤다”며 “통합하고 전력 질주해 핵무기 능력을 키운 점이 인상 깊다”고 말했다.

바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대량살상무기 조정관을 지낸 게리 세이모어 박사도 15일 VOA에 지난 10년을 돌아봤을 때 “김정은이 북한의 핵 능력을 가속화하고 확대한 점이 가장 흥미롭다”고 말했다.

세이모어 박사는 김정은 위원장이 강도 높게 핵실험과 탄도 미사일 시험에 나섰다며 “아버지의 유업을 기반으로 북한의 핵무기 능력을 여러 배 확대했다”고 평가했다.

◇ 2017년 한반도 긴장 고조...정상외교로 국면 전환

김 총비서가 핵무기 완성을 선언한 2017년에는 한반도를 둘러싼 군사적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그 해 8월 8일 북한이 미국을 계속 위협하면 ‘화염과 분노’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북한이 ‘미국 본토 불바다’ 발언을 하며 미국을 자극한 가운데, 북한이 소형 핵탄두 개발에 성공했다는 미국 언론 보도에 따른 입장을 묻는 질문에 이 같이 답한 것이다.

또 트럼프 행정부 안팎에선 북한의 주요 시설을 제한적으로 타격한다는 의미의 ‘코피 전략’이 공공연하게 거론됐다.

김정은 총비서와 트럼프 대통령이 2018년 초 ‘핵 단추’ 설전을 벌이며 긴장이 계속된 가운데 반전이 시작된 것은 2018년 3월이었다.

한국 정부 특사단이 방북 후 백악관을 방문해 김 총비서의 비핵화 의지와 회담 의사를 전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즉석에서 수락하면서 첫 미북정상회담 개최가 급물살을 탄 것이다.

두 정상은 그해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만나 새로운 미북관계 수립,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노력, 미군 유해 발굴과 송환 등 4개 항에 합의했다.

김정은 총비서는 “우리는 오늘 역사적인 이 만남에서 과거를 덮고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역사적 문건에 서명하게 됐다. 세상은 중대한 변화를 보게 될 것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싱가포르 합의 뒤 의미 있는 실무 협의가 이뤄지지 못했고,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정상회담은 결렬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결렬 직후 연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요구가 지나치다고 말했다. 북한은 미국이 원하는 지역의 상당 부분을 비핵화하겠다고 했지만, 그 대가로 기본적으로 모든 제재를 해제해 줄 것을 요구했고, 따라서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는 것이다.

당시 회의에 배석했던 존 볼튼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회고록에서 김 총비서가 영변 핵시설 폐기 대가로 유엔 안보리 제재 해제만을 고집했다고 말했다.

그 해 6월 판문점에서 북미 정상이 짧게 회동한 뒤 10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북-미 실무협상이 열렸지만 곧바로 결렬됐고, 협상은 이후 장기 교착 상태이다.

◇ “김정은, 대미 관계·핵 외교 모두 실패”

전직 고위 관리들은 집권 10년차인 김정은 위원장이 대미 관계와 핵 외교에서 모두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1990년대 북한과 제네바 핵 협상과 미사일 협상 등에 나섰던 로버트 아인혼 전 국무부 비확산·군축담당 특별보좌관은 16일 VOA에 “미국과의 외교에서 상당한 성과를 내려 했던 김정은의 희망은 하노이 회담 결렬과 함께 좌절됐다”고 말했다.

미국과 북한 관계는 현재 심각한 답보 상태에 있고 오랜 기간 서로 관여하지 않았기에 김정은의 대미 외교가 성공적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아인혼 전 특보는 김 총비서가 대미 외교를 통해 자신과 북한의 위상 강화, 경제 제재 해제 등을 얻으려 했고, 핵보유국으로 인정 받으려 했다고 분석했다.

디트라니 전 소장도 김 위원장이 대미 외교를 통해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으려 했다며 이러한 목표에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디트라니 전 소장은 김 총비서가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원했던 것은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였지만, 하노이 정상회담을 통해 미국의 우선순위는 북한과의 양자관계가 아닌 비핵화에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분석했다.

게리 세이모어 전 조정관도 김 총비서가 대미 정상외교에 나선 목적은 미국과 관계를 정상화하면서 북한의 핵 억지력을 유지하려는 것이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목표가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세이모어 전 조정관은 집권 10년차를 맞은 김 위원장이 현재 경제난을 겪고는 있지만 그럼에도 아직 기로에 서 있지는 않다고 평가했다. 그는 “비록 많은 주민들이 가난과 결핍으로 고통받고 있지만 북한 경제는 지금 상태로 버틸 수 있고, 심각한 정치적 위협도 없으며, 중국이 북한을 완충국으로 유지하길 원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아인혼 전 특보도 김 총비서가 핵과 번영 사이에 선택을 해야 할 상황에 몰리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그는 “김정은은 핵능력을 확대하고 다양화하고 있으며, 경제 상황이 어렵다고 스스로 시인하긴 했지만 그에게 있어 번영이 목적이 아닌 생존이 목적”이라고 주장했다.

아인혼 전 특보는 그러면서 김정은 총비서가 “지금 단계에서 근본적인 선택을 꼭 해야 한다고 보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김정은 총비서의 대미 외교 기간 동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친분도 국제사회의 관심을 끌었다. 두 정상은 세 번 만나고 28건 이상 서한을 주고 받으며 친분을 나타냈다.

전직 미국 관리들은 김 총비서가 앞으로도 미국 대통령과 관여할 수 있을 것이라며, 다만 실무 차원의 심도 깊은 협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디트라니 전 소장은 지금 시점에서 북한이 미국과의 협상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북한이 미국과의 관계를 정상화하고 국제사회로부터 적법성을 얻기 위해 지금 협상장으로 돌아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상연 기자 lsy@korearepo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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