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김정일 사망 직후 20대에 최고지도자 등극
집권 10년 만에 두 선대와 비슷한 입지 구축

편집자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는 2011년 12월 선대인 김정일의 사망과 동시에 28세의 나이로 최고지도자가 됐다. 올해는 그가 집권 10년을 맞는 해다. 젊은 지도자에서 북한의 총비서가 된 김정은과 북한의 10년을 정리한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는 지난 2009년 그 존재가 처음 확인됐다. 선대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장남인 김정남(사망)이 아닌 셋째 김정은을 후계자로 결정하면서다. 

김정은은 2010년 인민군 대장 칭호를 받고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에 오르며 공식적으로 후계자가 된다. 그리고 1년 만인 2011년 12월 김정일 위원장이 사망하며 짧은 후계자 시절을 마치고 북한의 최고지도자에 등극했다.

뉴스1에 따르면 김정은은 김정일 위원장이 사망(12월17일)한 지 약 2주 만에 군 최고사령관 호칭을 받으며 공식적인 집권을 시작한다. 그의 집권 시작 시점에 대해 학계에서는 2011년 12월30일 군 최고사령관 호칭을 받았을 때와 2012년 4월 당 직함(제1비서)을 받았을 때로 보는 시각이 공존했는데, 북한이 올해를 김정은 총비서의 집권 10년이라고 밝히며 논쟁이 정리됐다.

집권 초기 김정은은 그야말로 전 세계의 '불안한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김정은은 20대 후반이라는 젊은 나이에, 후계자 시절까지 짧았던 탓에 20년에 걸친 후계자 시절을 거쳐 최고지도자에 올라 뛰어난 장악력을 보였던 아버지와 비교가 되며 체제 장악력에 대한 의구심이 크게 제기됐다.

김정은 체제는 '숙청'으로 표현되는 대대적인 인적쇄신을 통해 기반을 다졌다. 김정은은 특히 당, 정, 군의 인선을 수시로, 큰 폭으로 개편하며 선대의 흔적을 지우고 자신의 입지를 굳혀갔다.

2013년 김정은의 삼촌이자 아버지의 큰 신임을 받았던 장성택을 부정비리를 이유로 처형한 것은 살징적 사건이었다. 이로 인해 북한 체제의 불안정성에 대한 각종 분석이 가장 크게 제기됐고, 동시에 장악력이 낮은 그의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시선도 일부 있었다.

2017년에는 그의 이복형이자 한때 북한의 후계자로 유력시됐던 김정남이 사망했다. 김정은의 집권 후 북한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외국에 살던 그가 말레이시아 공항에서 '암살'됐는데 북한은 제기된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

김정은은 집권 초기부터 할아버지인 김일성 주석 방식의 '당 중심'으로 체제를 개편했다. '선군 정치'로 군 중심의 국정을 운영했던 아버지와 달리 그는 모든 결정을 시스템, 특히 당 회의를 통해 결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외모마저도 할아버지를 따온 모습을 자주 드러냈다.

2016년 5월 36년 만에 7차 당 대회를 연 것은 이 같은 그의 국정 운영 방식을 잘 보여 주는 대목이다. 김정일 시대 때는 제한적으로, 형식적으로 열렸던 당 전원회의, 정치국 회의는 매해 수시로 열렸다.

'은둔의 지도자'였던 김정일 위원장과 달리 그는 수시로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냈고 대중 연설도 즐겼다. 할아버지 방식의 당 중심의 통치가 굳어지면서 북한에서 점차 '선군 정치'의 흔적이 사라졌다.

7차 당 대회에서는 '노동당 위원장'에 오르며 당 중심의 통치 체계도 완전히 정립했고 그 역시 선대와 동등한 정치적 입지에 한 발짝 더 다가갔다.

같은 해에 국무위원회가 신설되고 그가 위원장에 올랐다. 선대 시절의 통치 기구였던 국방위원회가 폐지되고 외부에서 '정상국가화'로 부르는 차원의 조치들이 취해졌다. 그는 그 이후 대외적인 활동을 할 때는 국무위원장 직함을 앞세운다.

2019년 사회주의 헌법이 개정되며 국무위원장이 '국가수반'의 지위를 갖게 된다. 사실상 '비상 국정' 체제였던 국방위원회 시절에는 북한의 헌법상 국가수반의 지위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에게 부여됐다.

지난 1월에 열린 8차 당 대회는 당 대회 개최를 '5년에 한 번'으로 재확립하며 당 중심의 국정운영을 더욱 공고화하는 계기였고, 동시에 당의 '위원회' 체제를 다시 '비서' 체제로 돌리면서 김정은은 김정일이 썼던 직함인 '총비서'를 부활시켜 자신이 그 자리에 올랐다.

최근에는 '수령'이라는 호칭도 북한 매체에 자주 나타나며 그에게 종종 '위대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경우도 포착되기 시작했다. 둘 모두 주로 선대 지도자들에게만 썼던 것이기 때문에 김정은의 정치적 지위를 계속 공고화하는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는 분석이 뒤따랐다. 내부적으로는 '김정은주의'라는 말도 사용되기 시작했다는 정부 당국의 분석도 있었다.

하지만 북한 사정에 정통한 베이징의 소식통은 "김정은의 대외적 모습이나 호칭에도 불구하고 김정일 때와 같이 당을 장악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다만 세대교체를 통해 이른바 '김정은 사람들'이 점차 당의 주축에 들어서고 있지만 당 정통세력의 파워를 넘어서진 못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정은은 각종 건설 사업을 통해 북한이 주장하는 '인민의 이상향'을 가시적으로 주민들에게 선보였다. 집권 초기 마식령스키장, 원산 관광지구, 평양 순안공항 재건 등으로 '건설 중시' 행보를 시작한 그는 최근에는 '혁명의 성지'인 백두산 초입의 삼지연시 건설을 마친 것은 물론 평양과 지방 주요 도시들을 모두 재건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2017년의 '핵무력 완성' 선언과 2018년 사상 최초의 북미 정상회담은 선대 수령들이 겪거나 해내지 못했던 '김정은 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비록 비핵화 협상을 통한 경제 문제 해결이라는 목표를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이로 인해 그는 외교 무대에서 의미 있는 흔적을 남겼다.

2018년 한 해에만 총 세 차례 진행된 남북 정상회담 역시 김정은 특유의 외교 행보가 두드러진 모습이었다.

대북 제재 문제의 해결, 이를 통한 경제난 극복은 그가 최고지도자로서 반드시 해내야 하는 과업이 됐다. 여기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라는 예상치 못한 사태로 계획했던 국정에 큰 그림자가 드리워진 것도 그가 해결해야 할 문제다.

그는 지난 1월 당 대회에서 새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이전의 경제 계획이었던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 목표에 이어 또 한 번의 김정은식 경제 정책이 시험대에 올랐다.

김정은 집권 10년째인 올해 '정비와 보강' 전략으로 경제 정책을 구성, 추진한 북한은 이미 성공을 선언했다. 김정은의 경제 정책이 성공을 이어간다면, 그는 선대를 넘는 또 하나의 자신만의 성과를 갖게 될 것으로 보인다.

민대호 기자 mdh50@korearepo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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