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시내 모습
평양 시내 모습

 

북한이 지난 9월 개정한 ‘인민경제계획법’ 내용이 공개됐다. 앞서 평양에서 제14기 제5차 최고인민회의가 열려 인민경제계획법이 개정됐는데 그 내용이 공개된 것이다.

인민경제법은 국가경제의 계획부터 실행 등 전 과정을 감독,통제하는 규정을 명시한 법이다. 6년 만에 개정된 인민경제계획법의 가장 큰 변화는 사법당국인 ‘검찰’을 경제계획의 지도, 통제 기관으로 명시한 것이다.

과거에는 ‘국가계획기관’이 경제계획을 감독하도록 돼 있었지만 개정된 법에는 국가계획기관이 빠지고 ‘검찰’이 명시됐다.

미국의소리(VOA)에 다르면 개정 법령은 “검찰기관과 해당 감독통제기관은 인민경제 계획 작성 및 시달, 설비, 자재, 자금 보장, 계획 수행 총화, 실적 보고에 대한 법적 감시와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 마디로 경제계획 수립부터 마지막 실적 보고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감시, 통제하는 권한을 검찰에 준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법 개정이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의 지시에 따른 것으로 보고 있다. 김 총비서는 지난 2월 열린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경제계획에 대한 통제 강화를 언급했었는데 이를 법으로 명문화 했다는 것이다.

북한 경제 전문가인 동용승 굿파머스 사무총장은 ”북한이라는 곳은 최고지도자가 어떤 지시를 하느냐에 따라 법도 만들어지거나 개정된다"면서 "최근 검찰소가 경제사범에 대한 조치를 많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북한 당국이 검찰을 동원해 경제계획을 감독, 통제하려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범죄 수사와 공소를 담당하는 사법기관인 검찰이 경제계획을 감독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북한 경제 전문가인 윌리엄 브라운 조지타운대 교수는 김 총비서가 검찰을 동원해 경제계획이 왜 이행되지 않는지 파악하려는 것 같다며, 경제 사정이 그만큼 나쁘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개정된 법령은 '계획에 없는 제품을 생산하거나 건설, 봉사한 경우에는 인민경제계획 실적으로 평가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이는 그동안 경제계획을 변경하거나 계획에 없던 제품을 생산하고 계획 수행 실적으로 밀어 넣는 일이 빈번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김정은 총비서는 1월 평양에서 열린 8차 노동당 대회에서 지난 5년간 추진해온 경제발전 전략이 실패했다고 인정했다.

이어 북한 당국은 새로운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을 내놓고 계획 완수에 사활을 걸고 있다.

김 총비서는 올해 10여 차례 정치국 회의와 전원회의, 그리고 강습회를 잇따라 열어 경제계획 완수를 강조했다.

또 북한 관영 TV와 라디오도 거의 매시간 “당 8차 대회가 제시한 5개년 계획의 첫 해 과업을 철저히 관철하자”는 구호를 내보내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한국의 전문가들은 북한이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정책을 추진하면 새로운 경제발전 계획도 완수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한다.

첫째로 북한의 경제계획에는 대북 제재를 풀거나 완화하는정책이나 전략이 없다. 북한이 경제난을 겪는 가장 큰 이유는 국제사회의 고강도 대북 제재이다..

유엔 안보리가 2017년 12월 채택한 대북 제재 2397호는 기계, 금속, 전기, 전자, 수송 관련 물자의 대북 수출을 금지했다. 그 결과 북한의 공장과 기업소는 기계가 고장나거나 부품이 부족해도 이를 대체할 수가 없다. 예를 들어 비료공장인 남흥청년화학연합기업소는 지난 2월 고압밸브와 고압분사기 등 수입부품 부족으로 가동이 중단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북한 당국은 ‘자력갱생’만 외치고 있다.

미국의 북한 전문가인 켄 고스 해군분석센터 국장은 김 총비서가 결단을 내려 미국과 대화에 나서야 이 문제가 풀릴 수 있다고 말한다. 미국과 대화를 시작해야 제재도 풀고 경제난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 문제는 북한의 새 경제계획 자체가 부실하다는 것이다. 통상 경제계획에는 자금조달 계획과 함께 에너지를 비롯한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 계획, 수출과 무역 계획, 농업과 공업 등 산업별 발전 계획, 소득 증대 계획 등이 망라돼야 한다. 그러나 북한의 경제발전 계획에는 그런 내용이 없다.

무역도 없고 수출도 없고 공장과 기업소 관리 방안도 없고, 전력난 해결을 위한 구체적인 정책도 보이지 않는다. 

구체적으로 숫자로 표시된 목표는 세 가지이다. “시멘트 800만t 고지 점령” “평양시 5만 세대 살림집 건설” “검덕지구 2만5천 세대 살림집 건설” 이 전부이다.

브라운 교수는 구체적인 자금과 가용자원 조달 방안이 없는 경제계획은 별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세 번째는 북한 수뇌부가 즉흥적인 결정으로 계획경제의 틀과 우선순위를 뒤흔든다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 김정은 총비서는 지난해 3월 갑자기 평양종합병원 건설을 지시했다. 그러자 군인들이 동원돼 병원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넉 달 뒤인 7월에 평양 대동강구역 건설 현장을 찾은 김 총비서는 “건설연합상무가 건설 예산도 바로 세우지 않고 마구잡이식으로 사업을 진행했다”고 질책했습니다.

당초 평양종합병원은 그 해 10월 완공이 목표였지만 지금까지도 완공됐다는 소식이 없다.

북한은 새로운 ‘경제발전 5개년 계획’ 첫 해인 올해 자력갱생의 성패가 갈릴 것으로 보고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대북 제재와 국경 봉쇄 장기화로 북한 경제는 갈수록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고 동용승 사무총장은 말했다.

동 사무총장은 “자원이 고갈되고 100% 외부에서 조달할 수 없는데 자력갱생 속에서 경제개발 계획을 한다는 것은 성공 가능성이 상당히 어렵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북한은 생산, 유통, 소비, 물가, 외환, 무역, 에너지 등 전분야에 걸쳐 경제난을 겪고있다. 전문가들은 북한 수뇌부가 총체적인 경제 위기를 어떻게 헤쳐나갈지 주목하고 있다.

민대호 기자 mdh50@koreareport.co.kr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코리아리포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