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핵전력 다양화, 핵군축협상 프레임 구체화…핵 군사적 활용 속도

올 초 1월 열린 북한 노동당 제8차 대회에서 김정은 총비서가 연설하고 있다. (MBC TV 캡처)
올 초 1월 열린 북한 노동당 제8차 대회에서 김정은 총비서가 연설하고 있다. (MBC TV 캡처)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는 올 초 1월 5~7일 실시된 노동당 제8차 대회 사업총화보고에서 “핵무기 소형경량화, 전술무기화를 발전시킨다”라며 전술핵무기 개발을 언급했다. 김 총비서가 공개석상에서 전술핵을 거론한 것은 처음있는 일이었다.

김 총비서는 또한 “1만5000㎞ 사정권 안의 전략적 대상들을 정확히 타격 소멸하는 명중률을 제고해 핵 선제 및 보복 타격 능력을 고도화할 목표가 제시됐다”고 밝혀 선제 핵공격 가능성을 열어놨다.

이러한 북한의 움직임에 대해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황일도 안보통일연구부 교수는 "유사시 한반도 전구(戰區) 내에서 핵을 이른바 '실전전력'으로 활용하려는 평양의 의도를 보여주는 것으로, 최근 북한의 대외정책은 그 연장선상에서 한반도·지역 내에서 활용할 수 있는 단거리미사일·전술핵 전력을 안정적으로 혹은 신속하게 구축하는 데 전체적으로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분석했다.

황 교수는 이러한 북한의 지향점은 올해 들어 관찰되는 용어 사용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역내 사용을 전제하고 있는 단거리 미사일과 포병 체계에 대해서는 ‘전술무기’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반면, 괌이나 태평양 지역과 미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체계에 대해서는 ‘전략무기’ 라는 표현을 정확히 구분해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황 교수는 핵 전력을 미 본토에 대한 '응징억제'와 한반도·역내에서의 '거부억제'로 나눠 사고하는 이러한 구분법은, 그간 평양이 언급해온 ‘핵군축협상'의 프레임이 향후 뻗어나갈 방향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 배경: 핵전력의 다양화 

북한의 최근 역내용 전력 강화 프로그램이 일관되게 가리키는 지향점은, 재래식 교전의 와중에도 전술핵을 활용한 제한적 대군사타격을 가할 수 있다고 위협함으로써 한미연합측에 대한 재래식 전력의 열세를 상쇄하려는 시도로 요약할 수 있다고 황 교수는 분석했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할 경우 전술핵 교전으로 쉽게 확전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통해 사전억제 효과를 높이려는 시도라는 것이다. 

2013년 3차 핵실험 이후 2018년초까지 북측의 핵전력 관련 언급이나 제도적 조치는 태평양 지역이나 미 본토에 대한 응징보복을 상정해 전략핵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전력에 관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전술핵 개발이 공식화되는 2019년 이후 당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 등에서 나온 언급은 반대로 시한긴급성에 대한 우려와 즉응성을 보장하는 발사준비태세의 필요성에 초점이 맞춰져있다.

이황 교수는 이를 전술핵과 결합된 KN-23, KN-24 등의 ‘전술로켓’을 고위력핵탄두와 결합한 ICBM 전력과 구분해 사고하는 패턴으로 해석했다. 전술핵과 전략핵을 핵무기라는 한바구니 안에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재래식 전력과 전술핵을 한 바구니에 두고 전략핵을 별도로 떼어 놓는 구분법이라는 설명이다. 

◇ 분석 및 전망: 핵군축협상 프레임의 구체화

황 교수는 북한의 역내 실전용 핵 전력 강화는 평양이 ‘완전한 비핵화’보다는 '부분적·선택적  핵전력 폐기를 통한 부분적 반대급부 확보’에 주력할 공산이 크다고 봤다. 평양이 말하는 ‘핵 군축협상’의 의미가, 북한 공식담론이 최근 사용하고 있는 구분법에 따라 ‘전술무기’와 ‘전략무기’를 분리해 둘 중의 하나만을 폐기 혹은 감축 대상으로 하는 협상 프레임으로 점진적으로 전환 혹은 진화할 수 있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북측은 연쇄 미사일 발사를 이어가던 9월 들어 이른바 이중기준 문제를 제기하며 자신들의 단거리 미사일 현대화와 SLBM 강화 프로그램의 정당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한반도에서의 ‘군사적 균형’ ‘군사적 안정성' 같은 용어를 사용하거나, “미국 혹은 남측이 주적이 아니라 전쟁 그 자체가 주적”이라는 김 총비서 본인의 발언을 통해 냉전 시기 미소 핵 군축협상 당시의 논리적 프레임을 적극적으로 차용하고 있다.

북측의 관련 메시지는 ▲9월15일 미국 영국 호주가 공식 출범시킨 AUKUS 협의체를 비난하고 ▲남측의 SLBM 발사시험 등 미사일 전력 강화를 AUKUS와 동일한 성격으로 규정하는 한편, ▲이에 비추어 자신들의 역내용 전력 강화에 대한 비난은 이중 기준일 뿐이라는 주장으로 요약된다.

김 총비서는 10월11일 국방발전전람회 연설에서 역내 군비경쟁과 남측의 재래식 전력 강화로 인해 ‘국방력 강화’에 나선 것이라고 주장했다. 남측을 향해 전력도입 프로그램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던 그간의 태도와 달리, 자신들의 전력 강화 조치를 주권적 권리로 인정하라는 기조에 가깝다.

북측 관영언론은 김정은 총비서가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 동향 ▲미국의 국내정세 전망 ▲국제정세의 급변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대외사업부문에서…공화국 정부의 대미전략적구상을 철저히 집행하기 위한 전술적대책을 마련하는데 만전을 기할데 대한 과업”을 제시했다고 전한 바 있다. 

황 교수는 이러한 움직임은 현재 상황을 미소 냉전기와 동일시하고 자신들 역시 핵군축협상의 당사자 지위를 갖고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핵보유를 기정사실화하려는 시도라고 풀이했다. 

하노이 회담을 전후해 확인된 북측의 ‘부분적 양보’는 영변 핵단지를 중심으로 전체 핵 능력의 향후 완성 및 강화 가능성을 중단 혹은 지연시키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러나 현재와 같이 핵전력의 다종화가 이뤄진 상황에서는 전체 전력 가운데 한 부분만을 선택해 폐기하는 방식으로 ‘부분적 양보’의 초점을 바꿀 수 있게 됐다.

이러한 협상 프레임은 2018년 당시 북측이 ‘미래핵'을 포기하거나 그 건설속도를 늦추는 대가로 제재 해제를 요구했던 것에 비하면 ‘가격’이 매우 높아진 것이라고 환 교수는 해석했다. 즉 당시의 북측이 내심 대미 응징억제 전력에 일정한 불확실성이 남아있는 상태로 두는 것을 초기 비핵화 조치의 결과로 상정했다면, 현재는 대미용이든 역내용이든 둘 중 한 축의 전력만을 우선적으로 논의하고 다른 한 축은 온전하게 유지하는 그림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황 교수는 2019년 이후 평양이 이들 역내용 전력에 쏟아붓고 있는 에너지와 자원의 크기가 워낙 크다는 사실이나, 최근의 외교 메시지가 주로 이들 전력의 국제법적 정당성을 주장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음을 감안하면, 오히려 재진입 기술 등에서 여전히 불확실성이 남아있는 장거리 ICBM을 협상 대상으로 삼고 현재 구축중인 역내용 실전전력과 전술핵을 남겨두는 쪽에 무게를 실을 공산이 더 커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핵 협상 프레임의 전환은 북한의 비핵화라는 근본적인 목표와 거리가 멀고, 북한의 핵무장 국가로서의 위상이 상당기간 유지됨으로써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의 심각한 균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구도이다. 특히 미국과 역내 동맹국들 사이의 이해관계를 충돌하게 만든다는 점 역시 수용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반면 평양으로서는 이러한 이해관계의 차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핵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 협상이 이뤄지지 않는 경우에도 미국과 한국·일본의 입장 차이를 극대화할 수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이는 장차 협상의 구체적 로드맵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정책적 대응방안…북핵 전력 종합적으로 살펴야

2018년 이후의 협상 국면에서 북측은 ‘비핵화’라는 최종목표에 대해 암묵적인 방식으로나마 공감을 표시하며 논의 테이블의 유지에 공을 들여 왔다. 반면 최근의 움직임은 핵 능력을 활용해 재래식 전력 열세를 상쇄하겠다는 핵의 군사적 효용을 조기에 현실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황 교수는 분석했다. 이에따라 협상을 통한 최종적 비핵화의 개연성은 그에 비례해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황 교수는 이러한 상황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핵 전력을 종합적으로 사고할 때 한반도에서의 핵 사용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에 초점을 맞추는 새로운 차원의 정책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전술핵 개발을 포함한 북측의 핵 실전전력화가 달성될 경우 한반도에서의 핵 사용 가능성은 비약적으로 커지고, 결국 동북아 전체의 핵 안정성 혹은 전략적 안정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논리를 활용할 수 있다고 했다.  

북한의 핵 실전전력 확보에 대해 워싱턴은 역내 동맹국에 대한 안심시키기 강화 차원에서 저위력 핵탄두 SLBM/SLCM 전력의 역내 증강 혹은 상시배치로 대응할 공산이 크고, 이 경우 베이징은 미국 측이 해당 전력을 자신들을 상대로 활용할 수 있다는 우려를 강화시킬 것이 전망된다. 

황 교수는 한국은 이러한 리스크를 적극적으로 경고하면서 북한의 한반도·역내용 실전전력을 우선적으로 해결하는 것만이 미국의 국익이나 인도태평양 전략 차원에서 한층 합리적인 경로임을 워싱턴에 설득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북측의 역내용 핵 실전전력 강화와 관련 교리의 발전이 갖고 있는 위험성은 중국과 러시아에도 상당한 리스크이다. 황 교수는 두 나라가 북중·북러 회담을 통해 평양에 그 위험성을 설득하고 실전전력화 교리의 수정을 압박하도록 유도하는 방안을 외교 과제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중국은 전술핵 교리의 유용성이나 핵의 실전전력 활용 방안을 오랜 기간 부인해왔고, 이에 의거해 최소억제 방침을 유지하며 전술핵 개발에 나서지 않고 있다. 즉 베이징이야말로 최근 북한이 나아가고 있는 핵전력 강화의 방향성이 가진 불안정성과 한계를 가장 뚜렷이 인식하고 있는 나라라는 의미이다.

황 교수는 "한국은 북한의 전술핵 개발과 교리 변화가 갖는 동북아 안보상의 위험성을 중국·러시아측에 설득하고, 더불어 압도적 핵우위를 점하고 있는 미국을 상대로 유효할 수 없으리라는 점을 북측과 논의하도록 이들 국가를 견인하는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상연 기자 lsy@korearepo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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