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이 전세계에 직간접으로 영향을 미치는 가운데 한반도는 그 중심부에 처해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미중의 전략적 경쟁 아래서 남북관계 변화를 고려한 한국과 북한은 상이한 대응을 해왔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에도 지속되고 있는 미중 전략경쟁에 대해 한국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까지도 고려한 대응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과거 강대국 국제정치에 대해 북한은 체제생존 전략 차원에서 대응을 해왔고, 그로 인해 한반도 정세가 변화함으로써 한국의 대응이 불가피하다.

이중구 통일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 선임연구원은 미중관계 변화에 따라 남북한이 어떻게 대응전략을 펴왔는지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바이든 행정부 시기에도 미중 전략경쟁이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하에서, 새로운 미중관계에 체계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과거 남북한의 대응까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미중관계에 대한 한국의 대응은 독립된 것이 아니라, 북한의 미중관계에 대한 대응으로부터 불가피하게 영향을 받는 사안이다. 

탈냉전 이후 미중관계는 크게 미국 패권확립 시기, G2시기, 미중 전략경쟁 시기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으며, 각 시기의 남북한의 안보외교는 서로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어왔다. 우선, 구소련의 해체 이후 미국의 패권이 확립되자, 북한은 체제생존을 보장받기 위해 핵문제를 통한 대화를 추구했다. 그 결과, 북한은 994년 10월 북미제네바합의를 얻어냈지만, 제네바합의는 2000년대 초반 부시행정부의 출범 이후 결국 붕괴되었다. 이후 북한은 미국과 적대관계하에서 생존을 보장받기 위해 핵개발로 나아갔다. 

한편, 한국의 김영삼 행정부는 1990년대 초반 북한의 북미대화 시도에 직면하여 북미관계개선을 남북대화 이후로 제한하고자 했지만, 다만, 이러한 접근법이 남북·한미관계 모두에 부담을 야기했고, 김대중 행정부는 북미관계 진전을 지지하는 햇볕정책을 추진하게 된다. 2000년대 중반에는 북핵 2차위기로 북미갈등이 심화되었지만, 한국은 남북협력을 유지하고 북미대화를 중재하고자 했다. 

다음으로,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로 미중협력의 필요성이 증대되면서 중국의 영향력이 신장된 G2 시기에 들어서자 북한은 김정일 와병과 후계체제 구축에 따른 내부적 곤란함을 해소하기 위해 중국에 접근했다. 이를 바탕으로, 북한은 천안함 사건 등 한국에 대한 도발을 감행했고, 남북 간, 미중 간의 갈등을 증폭시켰다. 이후 김정은 정권이 출범한 G2 시기의 중반에 북한은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경계했고, 결국 G2 시기 말인 2016년 경에 전략도발로 중국의 입장과 배치된 행보를 보였다.

이에, G2 시기에 걸쳐 한국은 북한의 예상치 못한 행보로 인한 한반도의 불안정에 대처하기 위한 대외전략을 발전시켜갔다. G2 시기 초반에는 천안함 사건에 한미동맹 강화로 대응했고, G2 시기 중반에는 한중관계 내실화로 중국의 대북영향력을 활용하고자 했으며, G2 시기 말기에는 북한의 4차 핵실험으로 중국의 대북 영향력에 한계를 느끼고 북한의 핵위협 억제를 우선시하여 사드배치를 발표했다. 이것은 G2 시기 중반에 구축된 중국을 통한 북한관리체제도 결국 와해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국가안보전략서(National Security Strategy) 발표와 더불어 2018년에 본격화된 미중 전략경쟁 시대에, 북한은 앞선 시기의 G2 공조하에서 구축된 국제적 압력과 제재를 벗어나고자 했다. 북한은 사드 배치 전후부터 미중 전략경쟁이 대북제재와 미중협력을 약화시킬 기회라는 인식을 갖고 있음을 시사해왔다. 실제로 북한은 미중 전략경쟁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2018년부터 북미 비핵화 협상을 재개하고 북중관계를 복원했다. 한편, 한국은 2018년 초에 시작된 평화 프로세스를 계기로 미중 사이의 선택 압력을 벗어날 수 있었고, 평화체제 구축을 목표로 대미, 대중 외교를 고르게 전개하고 있다.

정리해보면, 미중관계 요인은 북한과 한국의 대응을 이끌어내면서 결과적으로 남북관계를 변화시켜왔는데, 여기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었다. 첫째, 미중관계가 구조적으로 변화한 때에는 공통적으로 북한이 먼저 대응을 시도했다. 이것은 미중관계 변화에 대한 북한의 위기감이 크거나 북한이 외부의 지원을 필요로 했기 때문으로 이해된다.

둘째, 한국도 미중관계에 대한 북한의 초기 대응을 뒤따라 대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중관계 변화 후 북한의 초기 대응은 통미봉남, 대남도발, 대화전환 등 한국에게 민감한 대북정책 문제를 야기했던 것이다.

셋째, 미중관계의 매 시기 중반 이후에는 한국의 새로운 정책 시도에 따라 남북관계가 변화하는 과정이 전개되었다. 특정한 미중관계의 시대 중반에는 햇볕정책처럼, 앞서 형성된 남북관계, 대강대국 관계의 곤란을 극복하려는 한국의 성찰적 대응이 존재했다는 의미이다. 넷째, 한국의 이러한 변화 시도는 일정 기간 한반도 문제의 관리에 성과를 내었지만, 기존의 시도들은 결국 미국 혹은 북한에 의해 거부되었다

한편, 각 시기의 한반도 안보구조(남·북·미·중 구도)에 따라 남북관계의 안정성도 변화해갔다. 물론, 한국의 대북정책에 따라 남북관계가 협력적이거나 갈등적이어서 안정적이거나 불안정적일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영향을 통제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남북관계가 협력적이었던 경우와 악화되었던 경우를 나누어 미중관계가 남북관계의 안정성 수준에 미친 영향을 파악해보았다. 

그 결과로 세 가지 함의를 도출하였다. 첫째, 미국의 대한반도 영향력이 높을수록 남북관계는 보다 안정적이었다. 남북관계 양상이 협력적이었던 경우와 악화되었던 경우 모두 패권확립 시기의 안정성이 G2 시기, 전략경쟁 시기의 전반적인 안정성 수준보다 높았던 것이다.

둘째, 남북관계가 협력적일 때, 북미관계가 제한적이었던 경우에 남북관계가 보다 안정적이었다. 2000년대 초의 햇볕정책 시기(2000~2002)보다 그 이후 북핵 2차위기 시기(2003~2008)의 남북관계가 더 안정적이었다는 점에서이다.

셋째, 남북관계가 악화되고 미국의 대한반도 영향력이 약화되더라도, 한국이 중국의 영향력을 활용하는 경우에 남북관계는 보다 안정적이다. 남북관계가 악화되었던 G2 시기 중 남북관계가 가장 안정적이었던 기간은 한중관계가 순조로웠던 G2시기 중반(2013~2015)이었다. 

미중경쟁의 전망이 뚜렷해지는 가운데, 향후 한반도 국제정치에서 한국의 선택은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미중관계의 매 시기 중반에 한국이 시도한 새로운 정책은 그 이후의 남북관계 변화를 이끌어왔다. 한국이 한반도의 안정을 위해 외부의 영향력을 활용함에 따라 남북관계는 가치와 이념에 입각한 안보외교의 양상을 띨 수도 있고, 남북관계를 심화함으로써 보다 자주적인 양상을 보이게 할 수도 있다.

김태훈 기자 thk@korearepo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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