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연 오일석 연구원 "군사 분야 첨단 반도체 놓고 미중 경쟁"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4월 12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반도체 화상회의에서 반도체 웨이퍼를 손에 들고 이야기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4월 12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반도체 화상회의에서 반도체 웨이퍼를 손에 들고 이야기하고 있다

 

삼성과 SK하이닉스가 11월 8일 미국이 요구한 반도체 공급망 관련 자료를 제출한 이후 한미 사이에 반도체 및 공급망 관련 협력이 강화되는 분위기이다. 지난 20년 동안 반도체 산업은 안보가 아닌 기술과 사업 효율성에 따라 지구화된 공급망으로 재편되었다.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자국 중심의 공급망 구축 필요성을 경험한 미국의 경우 어떠한 비용을 부담하더라도 국가와 국민의 생존과 번영 및 민주적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자국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 재편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중국은 반도체의 설계, 제조, 조립 · 시험의 하나에서라도 길목이 되는 기술의 우위를 확보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이처럼 반도체를 놓고 미국과 중국 간 경쟁이 가열되는 가운데 디지털 냉전이 벌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오일석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신안보전략연구실 연구위원은 26일 '반도체 공급망과 디지털 냉전' 보고서에서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미중 기술패권경쟁은 디지털 냉전(digital cold war)으로 귀착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오 위원은 "미국과 경쟁하고 있는 중국은 반도체 기술에 상당한 투자를 감행해 경제와 군사력 우위의 확보를 도모하고 있다"며 "반도체 설계를 주도하고 반도체 생산은 동맹국을 통해 지배력을 행사해 온 미국은 중국의 이런 도전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도체 공급망 문제가 단순히 코로나19와 공급망 재편에 따른 일시적인 현상이라면 시장에 의해 원상으로 회복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반도체 경쟁은 미중 기술패권경쟁에 따른 디지털 냉전의 문제이면서 ‘시장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반성에 따라 국가의 개입에 기초하여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국가안보 차원에서 반도체 문제를 전략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 삼성의 반도체 정보 제공과 미국의 반도체 공급망 점검

2021년 11월 11일 미 상무장관과 한국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기술과 투자 우선순위를 포함해 반도체 생산량의 수급 불일치 위험을 줄이는 데 있어 정보를 공유하기로 하였다.

또한 공급망 위기를 해결하고 병목 현상을 줄이기 위해 공급망을 배치하는 노력을 조율하는 데 협력하기로 하였다. 삼성과 SK하이닉스가 11월 8일 미국이 요구한 반도체 공급망 관련 자료를 제출한 이후 한미 사이에 반도체 및 공급망 관련 협력이 강화되는 분위기이다.

지난 20년 동안 반도체 산업은 안보가 아닌 기술과 사업 효율성에 따라 지구화된 공급망으로 재편되었다. 반도체 생산 공정은 크게 설계(design), 제조(fabrication)는 물론 조립(assembly)ㆍ시험(test)의 3단계로 구성된다. 반도체는 미국에 의해 설계되어, 네덜란드의 장비와 일본의 화학물질에 의해 한국과 대만에서 제조되고 말레이시아 또는 싱가포르에서 시험되고 있다.

이와 같이 국제적 분업화에 따라 반도체 공급망이 분산되어 있기 때문에 특정 지역에서 반도체를 자급자족할 수는 없다. 반도체 공급망의 상호의존성으로 인하여 한국, 미국, 대만, 일본, 유럽, 중국 등이 반도체 개발과 생산 등에 관련된 서로 다른 공정 단계를 맡아 공급망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의 공정상의 수요자와 공급자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지역 또는 자체 공급망을 통해 반도체의 자급자족을 실행하고자 하는 경우 최소 35%에서 65%의 가격 상승을 감내하여야 한다.

그런데 코로나19 대유행 초기에 미국에서는 마스크는 물론 생필품 품귀현상이 발생하였고 개인보호 장비의 부족으로 의료진이 감염 위험에 노출되었으며, 코로나19가 진행됨에 따라 반도체 부족 사태로 미국의 GM, Ford 등 완성차 업계의 생산 차질이 발생하였다.

경제적 효율성에 기초하여 시장의 자율에 맡겨 두었던 제품의 생산과 공급망 문제가 개인의 생존은 물론 국가 기능의 작동을 위협하고 국가의 번영에 지장을 일으키며 민주적 가치에 대한 회의적 시각을 양산하는 국가안보 위기 상황을 초래하였다. 이에 바이든 대통령은 2021년 2월 24일 미국 공급망 행정명령(Executive Order on America’s Supply Chains: E.O. 14017)을 발표하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 행정명령을 통해 미국은 경제적 번영과 국가안보를 위해 공급망의 회복력, 다양성 및 안정성을 확보하여야 한다고 하면서 주요 공급망에 대한 취약성평가와 강화 방안을 마련하도록 지시하였다. 즉 공급망의 해외 의존도를 낮추고, 유연하고 안정적인 조달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미국의 주요 공급망을 점검하고 구체적인 조치를 마련하도록 하였다.

이 연장선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4월 12일 세계 주요 반도체 기업과 화상회의를 열고 반도체 문제를 논의했다. 이 회의에는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브라이언 디스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 등이 참석했으며, 한국의 삼성, 대만의 TSMC 등 주요 반도체 제조업체는 물론 GM 등 완성차 업체 등 19개 기업 대표가 초대되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반도체의 미국내 생산을 위해 행동에 나서야 하며, 반도체를 다른 나라에 의존하는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자체 공급망을 구축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후 미 바이든 행정부는 9월 23일 삼성, 인텔, TSMC 등 반도체 제조사 관계자를 모아 제3차 ‘반도체 대책 화상회의’를 열고 45일 안에 재고, 수요, 물동량 등의 정보를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반도체에 관한 대체적인 현황을 점검하거나 미국 내 생산시설 확충을 제안한 앞선 2차례 회의와 비교하면 훨씬 강경한 조치를 내놓은 것이다. 이에 따라 삼성과 SK 하이닉스가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관련 정보를 미국에 제공한 것이다.

◇ 미중 반도체 경쟁

코로나19에 따른 재택근무, 원격학습, 원격의료 등 디지털 전환은 반도체의 수요를 폭증시켰고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봉쇄와 격리 및 경제적 불안정성은 반도체 공급 차질을 발생시켰다. 여기에 2021년 3월 수에즈 운하 사고, 2020년 겨울 텍사스 정전 사태에 더하여 미중 기술패권경쟁이 반도체 공급망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과 경쟁하고 있는 중국은 반도체 기술에 상당한 투자를 감행하여 경제와 군사력 우위의 확보를 도모하고 있다. 반도체 설계를 주도하고 반도체 생산은 동맹국을 통해 지배력을 행사해 온 미국은 중국의 이러한 도전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와 같이 반도체가 필요한 첨단 신기술은 현재 진행 중인 미중 갈등을 장기화시켜 끊임없는 경쟁 모드를 촉발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에너지와 군사 분야에서 요구되고 있는 첨단 반도체 기술을 중국이 생산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이러한 첨단 반도체 기술에 대한 접근을 모색할 것이며, 미국은 첨단 신기술 경쟁에서의 우위를 확보하기 위하여 중국의 이러한 시도를 차단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미국은 동맹국의 협력을 얻어 자국 내에서의 반도체 생산능력을 강화하고자 할 것이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미중 기술패권경쟁은 디지털 냉전으로 귀착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냉전 시대에도 유럽이 소련의 가스를 매수하였고 소련이 IBM의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사용하였던 것처럼, 디지털 냉전이라고 하여 특정 국가를 완전히 배제하거나 분리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중국은 당분간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 의존할 것이며 미국은 첨단 반도체 관련 기술 이외의 구기술을 중국에 판매하는 것은 허용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효율성과 경제성을 바탕으로 진행된 반도체 공급망에 대한 기존의 정책 결정은 이제 국가안보와 지정학에 기초하여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미국은 반도체 설계에 대한 우월적 지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동시에 동맹국에 대한 협력을 통해 반도체 제조에 대한 지배력도 지속하고자 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자국 중심의 공급망 구축 필요성을 경험한 미국의 경우 어떠한 비용을 부담하더라도 국가와 국민의 생존과 번영 및 민주적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자국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 재편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중국은 반도체의 설계, 제조, 조립ㆍ시험의 하나에서라도 길목이 되는 기술의 우위를 확보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 향후 전망: 시장 자율에서 국가안보 차원의 개입 확대로 전환

신기술 발전의 토대인 반도체 경쟁은 플랫폼 체계의 승자 독식 구조를 창출함으로써 경제적 번영의 문제가 안보적 생존의 문제는 물론 민주적 가치의 문제와 결합하여 새로운 안보 문제가 되고 있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자유주의 체계 하에서 시장에 맡겨 두었던 반도체 설계, 제조, 조립 및 시험의 문제에 국가 권력이 개입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의 시장개입은 공공재의 창출로 효율성을 반감시켰지만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의료체계에 대한 공평한 접근이나 방역물품과 백신의 공적 분배의 필요성을 절감한 서구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공공재의 필요성과 효용성을 다시금 인식하게 되었다. 중국에서의 코로나19에 대한 강압적 대응과 차별적 봉쇄는 공산주의적 통제의 효율성을 보여주었으며 안보의 공산(공유)에 대한 지지를 오히려 얻게 되었다.

끊임없이 효율성을 추구하는 시장과 지속적인 확산을 갈망하는 권력 사이에서 시장에 대한 국가의 개입과 권력에 의한 통제를 어느 정도의 수준에서 결정할 것인지가 반도체 공급망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이 될 것으로 보인다. 즉 시장에 대한 국가의 개입으로 비효율이 발생하고 그로 인한 가격과 물가 상승이 일반 시민들에게 전가되더라도 다시 말해 공공재의 비효율을 감내하더라도 안전한 반도체 공급망을 확보하여 국가의 번영을 담보하고 디지털 전환에 따른 편의성에 시민들이 비차별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공유지를 창출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서구 선진국들의 공유지 창출에 우리의 이익이 일방적으로 희생되지 않도록 협력과 연대가 필요한 때이다.

반도체 공급망 문제가 단순히 코로나19와 공급망 재편에 따른 일시적인 현상이라면 시장에 의해 원상으로 회복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반도체 경쟁은 미중 패권경쟁에 따른 국가 안보의 문제이면서 ‘시장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반성에 따라 국가의 개입에 기초하여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국가안보 차원에서 반도체 문제를 전략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 우리의 대응

미중 반도체 경쟁에 있어 안보적으로는 미국에 의존하고 경제적으로는 중국과 밀착되어 있는 한국은 원칙적으로 중립적인 노선을 추구하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다. 미국의 반도체 설계 기술이 없다면 한국은 반도체 제조기술 경쟁력을 지속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울러 한국은 중국 정부의 반도체 산업 보조금 정책과 지적재산권 탈취의 위험성(특히 해킹은 물론 반도체 관련 한국 기업에 대한 중국의 인수합병을 통한 탈취)도 고려하여야 한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9월 23일 제3차 ‘반도체 대책 화상회의’에서 미국은 삼성과 TSMC 등에 대해 11월 8일까지 반도체 재고, 수요, 물동량 등의 정보를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삼성과 SK 하이닉스도 11월 8일에 맞추어 미국이 요구한 정보를 제공하였다.

이제 우리는 미국 측의 협력을 구하여야 한다. 즉 미국 당국으로 하여금 해당 자료를 미국의 경쟁업체에 제공하지 않도록 요구하여야 한다. 만일 미국 당국이 이를 공유하기로 결정하는 경우 인텔 등과 같은 미국 경쟁 기업들의 자료도 삼성과 TSMC 등 ‘반도체 대책 화상회의’에 참가한 기업들과 공유되도록 요구하여야 한다. 아울러 2021년 3월 네덜란드 기업 ASML이 초자외선(EUV) 14나노미터(nm) 반도체 생산장비를 중국 기업에 판매한 것을 미 상무부가 허용한 것을 참고하여, 삼성과 우리 정부는 첨단 기술이 아닌 구기술에 대한 중국 이전이나 판매를 허용할 것을 미국에 요구하여야 한다. 또한 중국에 대해서는 사이버
공격이나 악의적 기업 인수합병 및 산업기밀 유출 등을 통해 한국의 반도체 기술을 탈취하는 것을 금지하도록 강력하게 요구하여야 한다.

한편 반도체 공급망은 설계, 제조, 조립 및 시험 등에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이 얽혀있지만 우리는 제조와 같이 공급망의 길목이 되는 부문에 있어 경쟁 우위를 확보하고 있다.

이러한 경쟁우위가 지속될 수 있도록 정부는 연구개발 등에 필요한 자금을 투입하고 전문 인력을 적극적으로 양성하며 지나친 규제를 개혁하여야 할 것이다. 또한 미국이 백악관에 사이버안보신기술 담당 국가안보부보좌관을 신설한 것을 참고하여 우리도 국가안보실에 제3차장을 신설하여 사이버안보와 신기술 안보에 관한 문제를 담당하도록 거버넌스 구조를 개편할 필요가 있다.

이상연 기자 lsy@korearepo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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