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종전선언에 대한 한미 협의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북한은 이런 움직임에 대해 직접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어 향후 추이가 주목된다.

한미 간 종전선언에 대해 이견을 보이는데다 북한이 자신들이 내건 전제조건의 수용 여부를 지켜보고 있겠다고 히면서 정치적 상징 수준의 종전선언에 부정적 인식을 내비치는 상황이다.  

한국과 미국의 종전선언 문안 조율이 거의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다는 전언들이 우리 정부 고위 당국자들로부터 이어지고 있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지난 11일 국회에서 “미-한 간에 상당히 조율이 끝났다”고 했고, 최종건 외교부 1차관도 지난 14일 “조만간 좋은 결과가 있지 않을까 싶다”고 밝힌 바 있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26일 강원도 고성에서 열린 ‘2021 DMZ 평화경제 국제포럼’ 기조연설에서 종전선언은 한미 대북 적대정책 철회를 요구하는 북한 입장에서도 “유의미한 해법을 향해 나아가는 좋은 출발점이 될 것”이라며, “한미 간 종전선언 협의가 막바지에 접어든 만큼 조속한 성과가 도출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미국 정치 전문매체 ‘폴리티코’는 23일 “한미가 종전선언 문안에 ‘비핵화’에 대한 표현을 어떻게 포함할 것인가를 두고 이견이 있어 교착 상태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북한은 종전선언과 관련한 직접적인 언급을 삼가고 있다.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가 지난 9월 29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제안한 종전선언에 대해 “서로에 대한 존중이 보장되고 타방에 대한 편견적인 시각과 불공정한 이중적인 태도, 적대시 관점과 정책들부터 먼저 철회돼야 한다”고 주장한 게 마지막이었다.

북한은 다만 유엔군사령부 해체 등을 꾸준히 제기했고 신형 단거리 미사일 시험발사와 핵 시설 가동 정황 노출 등을 통해 미국과 한국을 압박하는 행보를 보였다.

신범철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김정은 총비서가 이중기준과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 등의 전제조건을 제시한 이후 북한은 그런 기조에서 한국 정부가 추진하는 정치적 상징적 선언 수준의 종전선언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평가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의 수령체제라는 독특한 통치시스템을 감안하면 최고지도자인 김 총비서가 종전선언의 전제조건을 제시한 마당에 북한의 침묵은 이상할 게 없다고 말했다. 중요한 것은 김 총비서 요구에 대한 수용 여부이지 한미 간 협상 진전 여부가 아니라는 게 박 교수의 설명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연구위원도 김정은 총비서가 이미 핵무기 고도화를 통한 국방력 강화를 우선 목표로 천명했기 때문에 미-한 종전선언 협상 진전이 주요 관심사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홍 위원은 북미 정상회담이 진행됐던 2018년엔 비핵화와 상응 조치라는 포괄적 협상의 첫 단추로 종전선언이 북한에게도 의미있는 의제였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며, 북한으로선 섣부른 종전선언이 자칫 자신들의 족쇄가 될 수 있다는 판단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미가 종전선언의 전제로 지금의 전술 전략 무기 개발을 동결시키거나 하지 말라고 할 수읶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홍 위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한미 간 종전선언 협의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선 북한이 그동안 종전선언의 필요성을 주장해왔기 때문에 노골적으로 이를 거부할 명분이 약한 때문으로 풀이했다.

신범철 센터장은 북한이 자신들의 전제조건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을 미리부터 배제할 필요가 없고 이 과정에서 한미관계에 틈이 벌어지는 상황도 노리고 있다고 말했다.

김형석 전 한국 통일부 차관은 종전선언이 성사될 경우 유엔군사령부 존치와 주한미군 주둔 등에 대한 논란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북한에게 유리할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 북한이 종전선언 논의에 나오긴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한편, 한미 간 문안 조정 과정에서 비핵화 문구 삽입 문제가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언론보도와 관련해 신범철 센터장은 북한의 호응을 끌어내는 데 부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강조하는 이중기준과 적대시 정책 철회라는 전제조건과 충돌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신 센터장은 “김정은 총비서가 내놓은 조건은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라는 것"이라며 "종전선언 본문에 비핵화 문제가 들어간다면 새로운 비핵화 합의가 될 수 있어 북한이 거부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최근 한반도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중국이 종전선언에 개입하려는 의지를 보이는 움직임도 종전선언 성사를 더 어렵게 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홍민 위원은 "중국이 종전선언 문안 협의에 참여할 경우 유엔군사령부 해체 등을 거론할 수 있다"며 "이는 중국과 전략경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의 동북아시아 전략 차원에서 부담일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백민일 기자 bmi21@korearepo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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