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사상 첫 정상회담 '승부수'…불투명한 북 비핵화 의지에 공전
정상국가화 꾀했지만…핵개발 전력 질주에 중국과도 갈등·밀착 오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집권 10년간 북미·북중 등 대외관계는 그야말로 롤러코스터 같은 궤적을 그렸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집권 초반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에 모든 것을 걸며 미국과 대결 구도를 극한까지 밀어붙였고 중국과도 전례 없는 냉각기를 보냈다.

그러나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뒤에는 전격적으로 핵을 건 '담판 외교'에 나서 역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을 성사시켰고 북중 정상회담도 복원했다. 핵능력 자신감을 바탕으로 정상외교의 장에 과감하게 등판하며 정상국가로 이미지 변신을 꾀하기도 했다.

하지만 북한의 핵 담판 외교는 북미관계의 실질적 개선과 대외환경 전환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소강상태를 맞았다. 이는 결국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증명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김 위원장이 2011년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으로 권력을 넘겨받은 뒤 미국과 처음으로 맺은 합의는 2012년 '2·29 합의'다.

그는 선대의 협상 결과물인 '2·29 합의'를 장거리 로켓 '은하 3호' 발사로 2개월 만에 깨버리고 핵 보유를 위한 전력 질주에 돌입했다.

2013년 3차 핵실험에 이어 '핵무력·경제건설 병진노선'을 채택해 핵무력 강화를 국가적 목표로 공식화했다. 이후 2017년까지 각종 중·단거리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발사 및 4∼6차 핵실험을 연이어 감행하며 미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핵능력을 조기에 완성하는 데 몰두했다.

미국 역시 대북 압박 강화에 초점을 맞춰 북미 대결 구도가 고조됐다.

'최대의 압박과 관여'를 내세운 트럼프 행정부가 제재에 더해 대북 군사 옵션 검토까지 시사하면서 북미는 극한 대치로 치달았는데, 특히 2017년에는 한반도를 둘러싼 군사적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직접 나서서 '화염과 분노', '완전 파괴', '핵 단추' 등 거친 언사를 주고받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후일 "(전쟁에) 그 누가 아는 것보다 훨씬 가까이 갔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2017년 11월 ICBM급 '화성-15형' 발사로 '국가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후 2018년 돌연 대화로 방향을 틀었다. 북한이 미국을 상대로 핵무기와 안전보장을 교환하는 담판에 나섰다는 해석이 나왔다

2018년 3월 한국 정부 특사단이 방북 후 백악관을 방문해 김 위원장의 비핵화와 회담 의사를 전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즉석에서 수락하면서 역사상 첫 북미정상회담 개최가 급물살을 탔다. 이후 북한이 ICBM 발사 중단을 선언하고 풍계리 핵실험장까지 폐기하면서 기대감은 더욱 커졌다.

북미 정상은 마침내 그해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처음 마주해 ▲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 ▲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노력 ▲ 미군 유해 발굴 및 송환 등 4개 항에 합의했다.

그러나 두 정상이 톱다운 방식으로 도출한 싱가포르 합의는 비핵화와 상응 조치 교환을 위한 유의미한 실무 협의로 이어지지 못했다.

결국 바통은 다시 두 정상에게 넘어갔다.

북미는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2차 정상회담을 열고 영변 핵시설 폐기 카드를 중심으로 또다시 담판을 시도했지만 아무것도 합의하지 못하는 '노딜'로 막을 내렸고 이후 협상 동력은 다시는 회복되지 못했다.

올해 출범한 조 바이든 행정부는 '조율되고 실용적인' 대북 접근을 통한 단계적 해법을 시사하며 북한에 대화 복귀를 촉구하고 있지만, 적대정책 철회를 대화 복귀 조건으로 내걸었던 북한은 꿈쩍하지 않고 있다.

북한은 최근에는 유엔 결의로 금지된 탄도미사일 개발을 비롯한 자신들의 무력 증강을 용인하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는 대북제재를 무력화하고 사실상의 핵보유국 지위를 확보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물론 북한이 심각한 경제난 타개 등을 위해 다시 협상장으로 돌아올 가능성도 있지만, 현재로선 낙관하긴 힘들다는 관측이 많다. 또 협상장에 돌아오더라도 북한의 핵포기 의지에 대한 회의론이 커진 상황이어서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지기 더 어려워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정은 집권 후 북중관계 역시 북미관계 굴곡과 함께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북한이 핵능력 고도화에 몰두한 2013∼2017년 북중관계는 전통 혈맹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싸늘하게 식었다.

김 위원장이 2013년 북중경협을 주도하던 고모부 장성택을 잔혹하게 처형하고, 중국이 북한의 잇단 핵·미사일 실험에 대응해 강력한 대북제재에 동참하면서 북중관계가 소원해졌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이 취임 후 북한보다 먼저 한국을 방문한 게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장면이다. 반면 김 위원장은 집권 후 무려 7년간 중국과 정상회담을 갖지 못했다. 2017년에는 북한 관영매체가 대북 압박 수위를 높이는 중국을 향해 '파국적 후과'를 각오하라며 비난전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북미가 대화국면으로 돌아서면서 북중관계도 급격히 반전했다.

김 위원장은 남북·북미정상회담을 앞둔 2018년 3월 첫 해외 방문으로 전격 방중했고, 이후에도 북미정상회담 전 시 주석과 만나 전략을 조율하는 모습을 연출하며 혈맹관계임을 입증했다.

김 위원장의 총 4차례 방중에 2019년 시진핑 주석의 방북까지 이어지며 양측은 혈맹 복원에 박차를 가했다. 김 위원장은 '하노이 노딜' 직후인 2019년 4월 북러 정상회담에 나서며 전통적 우군 확보를 위한 행보에 속도를 더했다.

그러나 비핵화 협상 답보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국경까지 닫아걸면서 최근 북한의 외교는 크게 위축된 상태다.

여기에 미·중의 전략경쟁 격화가 한반도 정세의 상위 변수로 작용하면서 북한도 독자적으로 움직이기보다 중국에 밀착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평가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21일 "미중경쟁 격화로 북한에 대한 관심이 떨어지고 코로나19로 국경을 차단하면서 북한도 내부 단속과 자력갱생에 치중하는 상황이 됐다"며 "의도치 않게 다시 폐쇄국가가 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태훈 기자 thk@korearepo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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