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스가 이어 '조건 없는(?) 정상회담' 제안 반복
납치문제 해결 요구에 北은 "완전히 끝난 일" 일축

오른쪽부터 외무상 시절의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아베 신조 전 총리, 관방장관 시절의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
오른쪽부터 외무상 시절의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아베 신조 전 총리, 관방장관 시절의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이끄는 새 일본 내각이 공식 출범하면서 향후 북일관계 전망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기시다 총리가 지난 4일 취임 후 첫 기자회견에 이어 국회 연설에서도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 총비서와의 이른바 '조건 없는 북일정상회담' 의사를 밝히면서다.

기시다 총리는 8일 국회 소신표명연설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과 일본인 납치 문제는 "용인할 수 없다"면서도 '조일(북일)평양선언'에 따른 국교정상화 실현 목표를 강조하며 "나도 조건을 달지 않고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총비서와 직접 마주할 결의"라고 말했다.

'조일평양선언'이란 2002년 9월 평양에서 열린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일본 총리 간 정상회담에서 채택된 것으로서 △북일 국교정상화의 조기 실현과 △일본의 과거 한반도 식민지배에 대한 사죄 및 그 보상 차원의 경제협력 추진 등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다.

특히 북한은 당시 선언에서 '북일 양측의 비정상적 관계 속에서 발생한 일본 국민의 생명·안전에 관한 현안문제'란 표현으로 납북 일본인 문제를 거론하며 "이런 유감스러운 문제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에 따라 2004년 5월 평양에서 열린 김 위원장과 고이즈미 당시 총리의 두 번째 정상회담 땐 납북 일본인 5명의 귀국이 실현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 같은 납북 일본인 귀국은 오히려 일본 내 반북 감정을 자극하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평가가 많다.

현재까지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납북자(납치피해자)는 모두 17명이며, 이 가운데 귀국한 5명을 제외한 12명에 대해 북한은 '8명은 이미 사망했고, 다른 4명은 북한에 온 적이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 측은 이 같은 북한의 주장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런 가운데 북일 양측은 2014년 5월 납북 일본인 문제에 대한 재조사와 2006년 북한의 제1차 핵실험 이후 시행 중인 일본의 대북제재 해제 등의 내용을 담은 '스톡홀름 합의'에 이르기도 했지만, 이 합의는 현재 유명무실해진 상태다.

북한은 기시다 총리가 이달 4일 회견에서 납북자 문제가 대북현안 가운데 "가장 중요하다"며 북일정상회담 의사를 밝힌 데 대해서도 "이미 다 해결됐고, 완전히 끝난 문제"(리병덕 외무성 일본연구소 연구원)라며 재차 일축했다.

일본 정부가 북한의 이 같은 '냉대'에도 불구하고 계속 북일정상회담을 얘기하는 건 최근 수년간 진행돼온 북한 비핵화 등 일련의 한반도 문제에 관한 협의에서 미국·중국·러시아 등 다른 주변국과 달리 "일본만 소외돼왔다"는 지적과도 관련이 있다는 평가가 많다.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총비서는 2018~19년 기간 비핵화 문제를 화두로 우리나라와 미국·중국·러시아와 잇달아 정상회담을 열었지만, 아베 신조 당시 일본 총리는 만나지 않았다.

아베는 남북·북미·북중정상회담에 이어 2019년 4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북러정상회담까지 열리자 그해 5월2일자 산케이신문 인터뷰를 통해 김 총비서와 "조건을 붙이지 않고 만나 솔직하고 허심탄회하게 대화해보고 싶다"고 밝혔고 이후에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북일정상회담 개최를 주장해왔다.

그러나 당시 북한은 "일본이 '조건 없는 정상회담'과 '핵·미사일·납치문제 해결'을 동시에 얘기하는 건 모순"(송일호 북한 외무성 북일 국교정상화 교섭담당 대사)이라며 아베의 제안을 거부했다.

아베 퇴임 뒤 작년 9월 총리직에 오른 스가 요시히데도 아베 마찬가지로 북일정상회담을 연거푸 제안했지만, 북한은 아예 반응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에 대해 북일관계에 밝은 한 소식통은 "북한은 아베와 스가를 북일관계를 최악으로 몰고 간 원흉으로 보고 있다"며 "과거 고이즈미 내각에서 관방부장관(차관)을 지낸 아베가 갑자기 인기 정치인이 된 배경엔 '북한 때리기'가 있었다. 아베는 납북자 문제 등과 관련해 경제제재도 불사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왔고, 이 같은 대북 강경론이 여론의 지지를 얻으면서 그를 고이즈미의 후임 총리로 만들었다"고 전했다.

아베 내각에서 관방장관과 납치문제담당상을 지낸 스가도 납북자 문제에 대한 관심 때문에 아베와 연을 맺게 됐다고 밝힌 적이 있다. 기시다 총리는 아베 내각에서 외무상을 지냈으며 아베가 스가에 앞서 일찌감치 '후계자'로 점찍었던 인물이다.

게다가 기시다는 미군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원자폭탄을 투하한 '피폭지' 히로시마 출신으로서 북핵 대응과 관련해서도 상당히 강경한 입장에 서 있다는 평을 듣는다.

기시다는 지난달 자민당 총재 경선 후보자 토론회 땐 유사시 자위대가 북한의 핵·미사일 기지를 선제 타격하는 '적 기지 공격력' 보유도 "하나의 선택지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소식통은 "기시다 총리는 아베·스가 정권의 대북정책을 답습한다면 향후 북일관계에도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기시다 총리는 스가 전 총리와 마찬가지로 아베 정권 시절 발탁된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상을 계속 기용하기로 했고, 아베의 친동생인 기시 노부오 방위상도 유임시켰다. 

이상연 기자 lsy@korearepo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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