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정부, 대북 원칙론에서 한 발자국도 더 못나가…'액션 플랜' 부재
북한, 핵 포기 안해…美 정부 해결 못해, 유엔에서 북핵 문제 다뤄줘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각) 뉴욕 유엔총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SBS TV 갈무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각) 뉴욕 유엔총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SBS TV 갈무리)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뚜렷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 채 모호한 태도로 상황관리에 그치고 있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지난 4월 대북정책 재검토를 마무리한 뒤 5개월이 지나도록 뚜렷한 방향성과 문제 해결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의 비판은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 기조가 원칙론 단계에서 한 발자국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데 맞춰져 있다.

◇ 바이든 정부 대북정책 '외교적 해법' 우선…구체적 내용 없어

바이든 대통령은 3월 25일 기자회견에서 이날 발사된 북한의 단거리 탄도미사일에 대한 질문에 “유엔 결의 1718호에 대한 위반이라는 점을 말한다”며, “우리의 동맹과 협력국들과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나는 또한 일정한 형태의 외교에 대한 준비가 돼 있다"며 "그러나 이는 비핵화라는 최종 결과 위에 조건한 것이어야 한다"며 외교 및 동맹과의 조율을 통해 비핵화 해법을 모색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바인든 정부의 대북정책은 그로부터 한달여 뒤, 출범 100일 만에 대북정책이 나왔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4월 30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대북정책 검토 진행 상황에 대한 질문을 받자 검토가 완료됐다고 확인했다.

사키 대변인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목표가 유지된다면서 "우리의 정책은 일괄타결 달성에 초점을 두지 않을 것이며 전략적 인내에 의존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의 정책은 북한과의 외교에 열려있고 (외교를) 모색하는 실용적이고 조정된 접근(a calibrated practical approach)"이라고 밝혔다.

사키 대변인은 “우리의 정책은 일괄타결에 초점을 두지 않을 것이며 전략적 인내에 의존하지 않을 것”이라며 빅딜을 시도했던 트럼프 정부와 전략적 인내 정책을 채택했던 오바마 정부의 대북정책과 차별화를 선언했다.

이는 바이든 정부가 재검토를 통해 오바마 정부와 트럼프 정부 대북정책의 문제점을 ‘조정’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중간지대에서 압박을 유지하며 외교적 해법을 찾겠다는 것이다.

◇ 美 대북정책 실효성 의문시돼…해결책 제시 못해 

바이든 행정부는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는 '상황 관리'와 함께 원칙에 바탕을 둔 협상이라는 외교적 수단을 통해 북핵 문제에 접근하겠다는 방침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북한의 핵 보유 사실을 전제한 상황에서 문제를 ‘한 방’에 해결할 묘책은 없다는 현실을 감안하더라도, ‘외교를 모색하는 실용적이고 조정된 접근’이라는 대북정책의 뼈대에 어떤 실효적인 방안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바이든 대통령의 지난 21일 유엔총회 연설 중 북한 관련 언급에 대해 워싱턴에서 엇갈린 평가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추구하기 위해 진지하고 지속적인 외교를 모색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그동안 밝혀온 대북정책 원칙을 재확인한 적절한 수위의 발언이었다는 평가와 북 핵 문제에 대한 미 정부의 소극적 태도를 방증하는 모호한 표현일 뿐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차장을 지낸 올리 하이노넨 스팀슨센터 특별연구원은 바이든 대통령의 연설에 대해 “이 중요한 업무를 성공으로 이끌 열쇠이자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핵심 요소인 ‘되돌릴 수 없고 검증 가능한 비핵화’와 같은 말이 없다”고 지적했다.

비핵화 로드맵을 상세히 공개할 필요는 없지만, 바이든 행정부 들어 북핵 문제에 대한 시급성, 그리고 비핵화 과정에 적용될 원칙과 구체적인 목표마저 실종됐다는 전문가들의 지적과 맥을 같이한다.

수미 테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연구원은 이같은 ‘애매성’ 비판에 대해 “바이든 행정부에서 (북한 관련) 세부 사항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타당한 지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바이든 행정부는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복귀시키고자 의도적으로 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미 정부의 공개적인 대북 메시지는 북한 문제의 우선순위와 비핵화 목표의 큰 그림을 확인하는 선에 그치는 것이 더 효과적이며, 모호한 수사를 정책이나 의지의 결여로 해석해선 안 된다는 반론도 있다.

로버트 갈루치 전 국무부 북핵특사는 “바이든 대통령의 연설에서 극적이거나 새로운 어떤 것을 보지 못했다”며 “‘완전한 비핵화’라는 말로 충분한 것이지 추가적인 수식어는 필요 없다”고 평가했다.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수석부차관보는 “미 행정부의 많은 북한 관련 성명과 마찬가지로 대통령의 유엔 발언은 광범위하고 확신을 주려는 의도로 보이지만, 향후 진로에 대한 어떤 세부 사항도 들어있지 않은 건 분명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검증 혹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라며 “그런 주장은 북한이 대화를 더욱 꺼리도록 만들 뿐이므로 나중에 북한이 혹시라도 협상 테이블로 나올 때나 꺼낼 주제”라고 밝혔다.

로버트 매닝 애틀랜틱카운슬 선임연구원은 “미국 정책이 ‘너무 모호하다’는 비난을 이해할 수 없다”며 “바이든 행정부는 전제조건 없이 북한과 대화를 모색하고 싶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김정은이 외교가 어떤 모습이 될지에 대한 사전 논의조차 꺼린다면 미국이 일방적으로 유인책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을 의무는 없다”고 말했다.

매닝 연구원은 “바이든 대통령은 (유엔 연설에서) 좀 더 긴급성을 주입하고 포괄적인 외교적 해결에 대한 미국의 갈망을 강조하면서 본질적으로는 현 미국 정책을 되풀이한 것”이라며 “‘돌이킬 수 없는’ 혹은 ‘검증 가능한’과 같은 표현을 빠뜨린 것이 미국의 목표와 관련해 어떤 변화도 의미하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이어 “핵 프로그램을 재건할 가능성은 언제나 있기 때문에 ‘되돌릴 수 없는’이라는 표현은 지나친 열망이지만, 1994년 제네바합의와 6자회담이 투명성 문제로 결렬된 것을 고려할 때 검증은 미국이 서명할 어떤 합의에서도 전제 조건이 돼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가 외교적 해법을 고수하며 북한과의 대화 의사를 밝히는 데만 집중하는 것은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비판은 여전하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비확산·생화학방어 선임국장을 지낸 앤서니 루지에로 민주주의수호재단(FDD) 선임연구원은 “바이든 대통령의 유엔 연설은 ‘관여 일변도(engagement only)’ 대북 정책의 연장선”이라며 “불행하게도 미국의 우리의 동맹국들은 이미 이 정책을 시도했고 그때마다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바이든 대통령은 김정은을 협상으로 이끌기 위해선 경제·외교·군사 압박을 포함한 모든 수단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정책을 수용해야지, 관여와 상당한 제재 완화를 제공하면서 느슨한 핵 관련 약속을 받아내 봐야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접근법에 대한 이같은 불만은 아프가니스탄 철군, 프랑스와의 외교적 갈등과 맞물려 ‘바이든식 동맹’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낳고 있다.

세바스찬 고르카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부보좌관은 “바이든 정권의 지난 9개월은 국내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완전한 재앙”이었다”며 “아프가니스탄에서 항복함으로써 북한과 같은 독재 정권을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대담하게 만들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자문관을 겸했던 세바스찬 고르카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부보좌관은 “김정은은 바이든의 무기력하고 약한 태도를 이용해 한국을 훨씬 더 위험에 빠뜨릴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접근법 등 외교 정책 전체를 겨냥한 혹독한 비난에 대해 워싱턴 일각에서는 전임 트럼프 행정부의 실책이 북한 문제를 키운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에반스 리비어 전 부차관보는 “김정은은 이미 트럼프 대통령의 무력함과 반동맹적 태도를 이용해 한국과 미국의 안보를 심각하게 훼손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미사일 계속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며 “확실히 바이든 대통령은 그것보다는 잘하고 있다”고 맞받았다.

미 전직 관리를 비롯한 전문가들은 진영 논리를 떠나 이미 오래전 미궁으로 빠져든 북핵 문제에 뾰족한 해결책이 없다는 근본적인 딜레마를 지적했다. 백악관의 주인이 누가 되든 한반도 위기를 고조시킬 강제적 비핵화 압박 대신 상황 관리에 초점을 맞추는 양상이 굳어지고 있다는 우려다.

수미 테리 연구원은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 문제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지, 혹은 다음 단계는 무엇인지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것도 대북 정책을 의식적으로 광범위하고 모호하게 놔두는 이유”라고 분석했다. “바이든 행정부의 당면 목표는 북 핵 문제가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위기관리에 맞춰져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미국·영국⋅호주 3국의 잠수함 계약 관련 문제 등 다른 우선순위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상황”이라며 “이런 현실에서 바이든 행정부는 사실상 북한 문제에 대한 해법이 없고 구체적인 계획도 없음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리비어 전 수석부차관보도 “북한이 원하는 일방적 양보와 유인책을 제공하려는 게 아니라면, 현재로선 모호하고 일반적인 표현 외에 미 행정부가 제시할 수 있는 건 거의 없다”며 이같은 분석에 동의했다.

리비어 전 수석부차관보는 “미국은 북한이 받아들이지 않을 비핵화를 마땅히 계속 주장하고 있고, 북한은 미국이 받아들이지 않을 핵보유국 인정을 요구하고 있다”며 진퇴양난에 빠진 북 핵 문제의 현실을 지적했다.

베이징의 정통한 대북 소식통은 "북핵 문제는 트럼프 집권시에 보였듯 미국이 나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며, 바이든 정부도 마찬가지다"며 "유엔에서 해결하는 게 현실적 방안"이라고 말했다.

소식통은 "미국도 유엔이 북핵 해결사로 최적임자라는 것을 알면서도 명예와 자존심 등으로 인해 그 얘길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바이든정부의 의도와 무관헤게 결국 유엔에서 북핵 문제가 다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민대호 기자 mdh50@korearepo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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