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다수 법조인 "명예훼손 해당"…"표현의 자유 수준 넘어"

7월 29일 서울 종로구의 한 서점 벽면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배우자 김건희 씨를 비방하는 내용의 벽화가 그려져 있다.
7월 29일 서울 종로구의 한 서점 벽면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배우자 김건희 씨를 비방하는 내용의 벽화가 그려져 있다.

지난 7월 말 서울 종로구의 한 중고서점 외벽에 이른바 '쥴리 벽화'가 등장해 논란이 일었다. '쥴리 벽화'는 국민의힘 대선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배우자인 김건희씨에 대한 의혹을 의미하는 벽화다. 김씨가 과거 유흥업소에서 일했다는 주장을 하는 이들은 김씨의 예명이 '쥴리'라고 지목했다.

벽화가 알려지자 윤 전 총장 측은 명예훼손이라고 반발했지만 반대 측에서는 표현의 자유라고 맞섰다. 현재 벽화는 지워졌지만 지난 6일엔 이번에는 1인 시위 형태로 서울 강남구에 '쥴리 벽화'가 재등장해 논란이 재점화됐다.

김씨의 이름이 직접 언급되진 않았지만, 김씨를 겨냥한 것으로 해석되는 이 벽화를 그린 사람에 대해 명예훼손 등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법조계에선 이미 많은 사람이 ‘쥴리’가 김씨 관련 의혹을 지칭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만큼, 명예훼손에 해당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다만 명예훼손의 구성요건인 ‘특정성’이나 ‘구체적 사실의 적시’가 벽화에서 명확히 드러난 것은 아닌 만큼, 다툼의 여지는 남아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 "벽화는 표현의 자유” vs “대다수 김씨로 인식, 명예훼손 해당”

29일 종로구 관철동 A중고서점 건물 1층 외벽에 그려진 벽화엔 ‘쥴리의 남자들’이라는 문구와 함께 ‘2000 아무개 의사, 2005 조 회장, 2006 아무개 평검사, 2006 양검사, 2007 BM 대표, 2008 김 아나운서, 2009 윤서방 검사’ 등의 글씨가 적혔다. 해당 벽화가 그려진 건 2주 전쯤으로, 건물주 여모씨가 한 작가에게 의뢰해 완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씨는 이날 연합뉴스 인터뷰를 통해 “김씨 본인이 쥴리가 아니라고 하는 마당에 벽화로 인해 누구의 명예가 훼손됐다는 말이냐”면서 “벽화는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의 영역에 있다”고 주장했다. 

변호사들은 해당 벽화에 김씨의 이름이 직접 언급된 건 아니지만, 대다수 사람이 벽화가 김씨를 겨냥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만큼 형법상 명예훼손에 해당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형법 제307조 제1항은 ‘공연히 사실을 적시해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며, 제2항은 ‘공연히 허위의 사실을 적시해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유광훈 변호사(법률사무소 시우)는 형법상 명예훼손의 구성요건인 ‘공연성’, ‘사실의 적시’, ‘사회적 명예의 훼손 여부’, ‘오로지 공익을 위한 것이 아닌 경우’ 등을 따져봤을 때, 이번 벽화는 김씨에 대한 명예훼손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다고 관측했다.

유 변호사는 “(이 벽화를) 예술 행위의 일환으로 볼지, 사실적시의 방법으로 볼지, 둘 다에 해당한다고 볼지는 보는 사람마다 다르게 판단하겠지만, 제가 볼 때는 그림이라는 방법으로 ‘사실을 적시한 것’은 맞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표현의 자유를 중요시하는 미국의 경우 ‘진실된 사실’을 적시하는 것은 처벌하지 않지만, 한국은 진실된 사실을 적시하는 것도 처벌하기 때문에 진실된 사실인지, 허위의 사실인지를 떠나서 적용법조만 다를 뿐 형법상 명예훼손죄가 성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법무법인 가로수의 김필성 변호사는 "표현의 자유로 보호받을 범위를 넘어선, 명예훼손이라고 생각한다"며 "표현의 자유가 매우 중요한 기본권이지만 이 자유가 무제한으로 보호받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다른 기본권이나 공익과 충돌하는 경우엔 표현의 자유를 인정할 수 있는 범위를 조화롭게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이 사례는 김건희씨의 인격에 대한 권리, 인간의 존엄성 등의 기본권과 표현의 자유 사이에 충돌이 있다고 볼 수 있다"며 "이 사안은 윤석열 후보 본인이 아니라 가족인 김건희씨에 대한 것이고, 벽화에서 문제 삼은 것이 김건희씨의 결혼 전 남자관계에 대한 루머이기 때문에, 윤석열 후보의 청렴성이나 대통령으로서의 직무수행능력 등과는 별 상관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벽화는 김건희씨의 결혼 전 남성 관계에 대한 루머를 다룬 것이고, 김건희씨의 여성성에 대한 공격으로 볼 수도 있다"며 "표현의 자유나 공익 등의 이름으로 정당화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명예훼손 사건 전문 김수열 변호사(뉴로이어법률사무소)는 “(이 벽화의 경우) 기본적으로 명예훼손 소지가 다분한 행위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다만 김 변호사는 “벽화를 그린 사람은 사건화가 되면 벽화 상의 ‘쥴리’가 김씨를 특정하는 것이 아니라고 변명하거나, 의혹에 오른 남자들 목록을 단순히 적은 것일 뿐 어떠한 구체적인 사실의 적시를 한 것이 아니라고 다툴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 공익 목적의 경우 예외지만...허위 사실 여부 관건

이번 벽화는 명예훼손의 위법성 조각 사유인 ‘오로지 공익적 목적’에 해당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형법 제310조는 사실 적시 명예훼손 행위를 하더라도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김 변호사는 “(이 벽화의 경우) 공공의 이익 목적으로도 보호받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유광훈 변호사는 “보는 사람마다 판단이 다르겠지만, 제가 볼 때는 (오로지 공익적 목적이) 인정되기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정치와 관련된 표현의 자유는 보호할 필요가 크기 때문에 처벌하는 것이 옳은지 입법적 또는 사법적으로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면서 “입법적으로는 진실된 사실적시를 처벌하지 않는 법 개정 방법이 있고, 사법적으로는 정치적 표현은 공익성을 넓게 인정하는 방법이 있다. 단, 허위사실 적시의 경우 처벌해야 하는 점은 논의의 여지가 없다”고 덧붙였다.

◇ 본인이 쥴리가 아니라고 하고, 벽화 글씨 지워도 명예훼손?

김건희씨는 본인이 쥴리가 아니라고 했고, 벽화 그린 사람도 김건희씨를 그린 게 아니라 쥴리라는 여성을 그린 거라고 했다.

그럼에도 법조인들은 명예훼손이 적용된다고 말한다. 김필성 변호사는 "그 벽화가 누구를 지칭하는 것인지 국민들 모두가 다 알고 있고, 건물 주인의 인터뷰 등을 보면 건물 주인 역시 김건희씨를 대상으로 그린 벽화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명예훼손 인정에 필요한 특정성은 인정된다"고 말했다.

김건희씨가 자신이 쥴리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그 벽화의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는 주장이어서, 그 벽화가 허위사실적시 명예훼손이라는 의미로 볼 것이지, 이를 김건희씨를 대상으로 하는 벽화가 아니라고 볼 근거로 삼을 수는 없다는 설명이다.

벽화에서 글씨를 지운 것에 대해서도 김 변호사는 "이미 글씨 등을 기재한 벽화를 공개한 순간 범죄는 성립한다"며 "글씨를 지웠다는 사실은 사후적인 사정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미 성립한 범죄를 범죄가 아닌 것으로 바꾸진 못한다"고 말했다. 글씨를 지웠다는 사실은 범죄 성립을 전제로 해 양형에서 고려할 내용일 수는 있지만, 범죄 성립에는 영향이 없다는 것이다.

김성지 기자 ksjok@korearepo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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