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 기생충이 미국 아카데미 제92회 시상식에서 4관왕의 주인공이 되며 그동안 오스카상에 쏟아졌던 인종차별이나 여성차별 등에 관한 편견을 한방에 날렸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9일(현지시간) 비영어권 영화로는 최초로 오스카 작품상을 비롯해 감독상, 각본상, 국제 장편영화상을 받아내며 아카데미상 92년 역사를 새로 썼다. 

사실 아카데미 시상식은 그동안 유색인종과 여성을 차별하고 '백인 남성들만 가득한 그들만의 잔치'라는 오명을 들어왔다.

흑인의 경우 아카데미 역사상 감독상 후보에 오른 것은 단 6차례였으며 수상은 한 건도 없었다. 작품상도 11번의 노미네이트 중 2013년 스티브 맥퀸 감독의 '노예 12년'이 유일했다. 이 밖에도 남우주연상은 4차례, 여우주연상은 1차례에 불과했다. 아카데미의 '백인남성 편견'이 크게 부각된 지난해 스파이크 리 감독이 각색상을 받았다.
 
히스패닉과 라틴계 출신으로는 2013년에야 처음으로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그래비티로 감독상을 받았다. 수상 사례는 이를 포함해 5차례였다. 작품상도 2차례였으며, 남우주연상이 1차례, 여우주연상은 수상 사례가 없었다.

아사아계로는 일본의 데시가하라 히로시 감독이 1964년 '모래의 여자'로 처음 후보에 올랐지만 수상은 불발됐다. 이후 대만의 이안 감독 2013년 제85회에서 감독상을 수상했다. 작품상은 봉감독이 수상하기 전까지 한 차례도 없었다. 남우주연상은 1956년 할머니가 몽골계인 러시아계 미국인 율 브리너가 '왕과 나'로 수상했고, 2003년에는 인도계인 벤 킹슬리가 있었다. 여우주연상은 전무하다.
 
여성 수상에도 인색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여성 감독의 경우는 후보에 오른 사람이 5명에 불과하며 이중 2009년 '허트 로커'의 캐스린 비글로가 유일하다.

오래 전 일이지만 1939년에 제작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스칼렛 오하라(비비언 리 분)의 유모 역할을 했던 하티 맥대니얼은 흑인 최초로 여주조연상 수상 당시 반대 여론 속에서 갑론을박 끝에 겨우 시상식에는 참석할 수 있었다. 당시 남자 주인공이었던 클라크 게이블이 인종차별에 강력한 항의하며 아카데미의 보수성에 맞서기도 했다.

제88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은 특히 20명의 주연상·조연상 후보가 백인 배우 일색이어서 유색인종을 차별한다는 강력한 비판이 쏟아졌다. 이에 윌 스미스와 스파이크 리 등 흑인 영화인들은 시상식 참석을 거부했다. 이를 무마하기 위해 사회자로 나섰던 흑인 배우 겸 코미디언 크리스 록은 되레 아시아계 어린이들을 향해 인종주의적 농담을 했다가 비난을 샀다.

아카데미 시상식을 하루 앞둔 8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 극장 앞 레드카펫 현장에 오스카 대형 트로피 모형이 놓여져 있다.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는 봉준호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기생충’이 국제극영화상(구 외국어영화상),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편집상, 미술상까지 총 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됐다. 2020.2.9/뉴스1 © News1 권현진 기자

아카데미는 이 같은 비판에 직면해 변화를 꾀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지난해 91회에는 사회자 없이 행사를 진행했다. 원래 사회를 맡을 예정이었던 케빈 하트가 과거 SNS에 게시한 성 소수자를 비하 발언이 문제가 됐다. 다행히 이 같은 형식이 나름성공적이어서 올해도 이어져 사회자 없이 진행됐다.

아카데미는 올해 좀더 진일보한 모습을 보여줬다. '외국(foreign)어영화상'을 올해부터 '국제(International)장편영화상'으로 바꾼 것이다. 그리고 그 최초 수상은 한국 영화인 '기생충'이 차지했다. 봉 감독은 수상 소감에서 그 의미를 제대로 짚었다.

기생충은 영어가 주 대사가 아닌 영화로는 최초로 작품상을 거머쥐는 쾌거를 올렸다. 뿐만 아니라 한진원 작가와 봉준호 감독에게 아시아 최초로 각본상을 안겼으며, 봉 감독을 아시아계 감독 중 두 번째 수상자로 결정했다.

봉 감독은 국제 장편 영화상 수상 소감에서 "아카데미 시상식이 추구하는 방향에 지지와 박수를 보낸다"고 밝혔다.

이어서 감독상까지 받은 직후에는 "국제 장편영화상을 받은 후 오늘 할 일은 끝났구나 릴렉스하고 있었다"고 말해 그 역시 아카데미상의 변화에 놀라움을 표시했다. 감독상을 발표하며 시상한 사람이 흑인 영화의 대명사격인 스파이크 리 감독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더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기생충'이 "완전하게 미국 영화 토굴 밖에서 생산된 영화"란 점에서 할리우드 영화가 중심이 돼왔던 오스카상의 패러다임을 바꿨다고 의미를 부연했다. 또한 이는 아카데미 측에도 "대단한 일"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가디언은 더 나아가 앞으로 아카데미는 아예 '국제장편영화상' 부문을 없애고 "이제 오스카상(아카데미상)은 영어로 된 영화만이 아닌 전 세계 모든 언어를 대상으로 하는 상으로 바뀌어야 과거 전성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박소연 기자 psy@korearepo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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