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계승' 정통성 강조하는 북한, 유적 소식 꾸준히 보도
고구려 우물 '보존 유적'으로 등록…'19줄 고구려 바둑판'도 조명

1호 우물 내부와 정사각 나무방틀, 발굴된 유물들 (사진-노동신문 갈무리)
1호 우물 내부와 정사각 나무방틀, 발굴된 유물들 (사진-노동신문 갈무리)

북한은 21일 평양시 대성구역 림흥동 일대에서 현재까지 발굴된 유적 유물들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를 진행한 결과, 고구려 역사를 고증하는데 성과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이날 김일성종합대학 역사학부에서 1991년부터 2020년까지 평양시 대성구역 림흥동 일대에서 고구려 시기의 유적 유물들을 발굴 고증하는 과정에 "1세기 초부터 고구려가 림흥동 일대를 중요한 지역적 거점으로 삼았으며 평양성으로 수도를 옮기고 발전된 문화를 창조하였다는 사실을 새롭게 해명했다"라고 밝혔다.

신문은 이날 학술연구집단이 이 일대에서 발굴한 고구려 시기 건물터의 일부, 고구려 우물 1호와 2호, 벽돌로 축조한 1개의 지하구조물과 기와·질그릇 조각 중 일부 사진을 공개했다.

그 중 1호 우물은 밑바닥을 잔자갈과 모래, 진흙으로 다진 다음 한 변의 길이가 98㎝, 높이 56㎝인 정사각형의 나무방틀을 설치하고 그 위에 사각추 모양으로 다듬은 돌들로 처음에는 팔각형, 다음에는 원형의 평면을 이루게 벽체를 쌓아올렸다고 신문은 묘사했다. 또 우물 안에서는 돌바둑판·기와·질그릇.쇠가마·수레굴통쇠·나무단지 조각 등 유물이 나왔다고 한다.

이 가운데 1호 우물에서 처음 발굴된 돌파둑판 조각은 고구려의 바둑판으로, 세계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속하는 19줄짜리 바둑판이며 한줄에 5개의 화점이 있는 고구려의 바둑판이 고려를 거쳐 조선봉건왕조 말까지 이어져왔다는 걸 보여준다고 부연했다.   

2호 우물 내부와 정팔각 나무방틀, 발굴된 유물들 (사진-노동신문 갈무리)
2호 우물 내부와 정팔각 나무방틀, 발굴된 유물들 (사진-노동신문 갈무리)

2호 우물은 밑바닥을 1호 우물과 같이 다진 다음 직경이 100㎝되는 정팔각형의 나무방틀을 설치하고 그 위에 160㎝ 높이까지는 강자갈로, 나머지는 납작한 돌로 우물벽을 쌓아올렸으며 이 안에서도 많은 유물들이 나왔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신문은 또 우물에서 지하수를 다시 여과하였다는 것과 세척에 편리한 나무방틀의 사명(기능)을 해명함으로써 고구려 시기 우물의 '수질제고기술'도 밝혔다고 부연했다.

특히 북한 고고학학회는 이 유물 유적들의 학술적 의의가 크다고 봤고, 비상설 물질유산심의평가위원회에서는 림흥동 고구려 우물 1호와 2호를 보존 유적으로 등록했다.

이처럼 고구려의 역사를 계승했다며 정통성을 강조하는 북한은 최근 들어 유적 발굴 소식을 꾸준히 보도해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달 말에는 황해남도 안악군 월지리 일대에서 발견된 고구려 시기 무덤과 유물을 공개했다. 당시 북한은 이 일대에서 고구려 시기 돌칸 흙무덤 9기와 금보요, 금방울, 은팔찌, 은가락지, 관못, 질그릇 조각 등을 발굴했다고 전했다. 작년 9월 월지리에서 6세기 경 축조된 고구려 벽화무덤 2기와 유물들을 새로 발굴했다고 밝힌 북한은 이후 이 지역에서 조사발굴사업을 계속 진행해 왔다.

민대호 기자 mdh50@korearepo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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