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2021년 회화 30점…현대갤러리 8월 1일까지
기운생동 붓질...채색 사용한 '청명' 연작 눈길

'Serenity-20018' 2020, Acrylic on canvas, 112 x 145.5 cm
'Serenity-20018' 2020, Acrylic on canvas, 112 x 145.5 cm

1970년대 초반 사회적 격변기 속에서 한국사회의 동시대적 문제점을 인식하고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을 찾고자 실험미술을 주도한 이강소 작가가 단색화의 시대를 넘어 최근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세계를 오롯이 볼 수 있는 전시를 열었다. 16일 종로구 사간동 갤러리현대에서 개막한 개인전 ’몽유‘다.

2018년 9월 갤러리현대에서 열린 개인전이 실험미술을 이끌었던 1980년대까지를 조망했다면 이번 전시는 1990년대 말부터 2021년까지 완성한 회화 30여 점을 엄선했다. 빠른 붓 놀림으로 굵은 선을 표현한 '청명'과 '강에서' 연작부터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오리 모양 등이 나타나는 작업까지 다채롭다.

'꿈속에서 논다'라는 뜻의 전시 제목 '몽유'는 작가의 세계관을 나타낸다. 그는 이 세계가 실제로는 꿈과 같다고 해석한다. 우리가 보는 세계가 실재인가를 물으며, 작품으로 또 다른 시각에서 세계를 표현하고자 한다.

작가는 "내가 의도한 대로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써지고 그려지는 그림"이라고 작품을 소개했다. 작가의 주관적 감정이나 의도가 개입되는 것을 피하고, 자신도 예상하지 못한 붓질이 작품을 완성한다는 의미다.

그의 작품에는 '존재의 한계' 즉 삶과 죽음 사이 또는 존재와 부재 사이에서 남겨진 시간과 공간 속의 흔적을 통해 실존했던 존재를 유출시키는 그야말로 사물의 본질적 환원이라는 그의 미술적 관점이 절제된 방식으로 잘 나타나 있다.

'Serenity-20092' 2020, Acrylic on canvas, 97 x 130.3 cm
'Serenity-20092' 2020, Acrylic on canvas, 97 x 130.3 cm

작가의 이러한 개념을 바탕으로 시공간의 흐름 속에서 서술적 의미와 본질을 찾아 내려는 의지는 오늘날의 회화에서도 일관되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그의 추상적인 회화 속에 자주 등장하는 오리 또는 배와 같은 구상적 이미지는 그 이미지 자체에 의미를 두는 것이 아닌, 화면에는 존재하지 않는 배후의 실재를 관객에게 환기시킨다.

그에게 미술이란 작가가 만들어 놓은 재현물이나 설정 그 자체가 아닌, 작가의 설정 속에 관객을 참여시킴으로써 관객이 주체가 되어 상황을 인식하고 각자의 맥락에서 존재적 가치를 알아가게 하는 미적 체험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작가가 개막식에서 '청명'에 관해 "내가 밝고 맑은 정신 상태를 유지하면서 붓질을 했을 때, 그것을 보는 관객도 ‘청명한 기운을 공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는 "눈에 보인다고 현실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모두 각자 기억과 경험에 따라 보는 것이 다르다"라며 "작가 역시 그림을 그리는 순간마다 달라진다"고 말했다.

작가는 예술의 본질이 의식의 실존에 있고 인간의 존재는 자신이 의식의 주체가 되어 직접 경험함으로써 본질을 지각하게 된다고 본다. 삶 속에 내제 된 '인간 존재'의 문제를 예술과 연관시켜 인식시키는 본질적 환원은 작가가 초기 실험적 작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일맥상통하는 부분으로, 최근작은 연륜에서 묻어나듯 붓질은 의식을 초월하고 지극히 자연스럽다.  

회색과 흑색 선, 흰 캔버스가 어우러지는 모노톤 회화 작업으로 작가는 단색 화가로 분류되기도 했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붉은색과 노란색 등 강렬한 색채로 화면을 채운 신작을 내놓아 단색화가군과는 다른 지점을 향하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이강소 작가(갤러리현대 제공)
이강소 작가(갤러리현대 제공)

새로운 컬러 작업에 대해 그는 "20년 전 사둔 아크릴물감 꺼내 칠해보니 색이 너무 아름다웠다"라며 "색이 나를 유혹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동안 기, 에너지에 관심이 많았고,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단색이 적당하다고 생각했다"라며 "앞으로 나를 유혹하는 색채를 찾아 충분히 색을 사용하는 실험을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예술의 본질을 그려가는데 단색과 또다른 색의 경계는 무의미하며 이미 초월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전시는 8월 1일까지.

오동윤 기자 ohdy@korearepo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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