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대법 전합 당시 소수의견 그대로 따라…"대법원 가면 파기될 것"
"전합 판결문 잉크 마르지 않았는데"…강제집행·한일관계 파장 클 듯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 기업에 끌려가 강제노역에 시달린 강제징용 피해자와 유족이 일본 기업 16곳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에서 1심 재판부가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취지와 반대로 패소 판결했다. 

이번 판결은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결정을 사실상 뒤집은 것으로 법원 내부는 물론 한일관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뉴스1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부장판사 김양호)는 7일 강제징용 피해자와 유족 85명이 일본제철·닛산화학·미쓰비시중공업 등 16개 일본 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각하한다"며 원고패소 판결했다.

각하란 소송의 요건을 제대로 갖추지 않으면 본안을 판단하지 않고 재판절차를 끝내는 것을 말한다.

재판부는 "개인 청구권이 한일 청구권 협정에 의해 바로 소멸되거나 포기됐다고 할 수 없지만 소송으로 이를 행사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날 판결은 2018년 10월3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과는 정반대 결론이다. 이날 재판부는 당시 소수의견과 결론적으로 동일하다고 밝혔다. 

당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춘식씨 등 강제징용 피해자 4명이 일본제철(옛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하고 1인당 1억원씩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권순일·조재연 대법관은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된다고 봐야 한다"며 반대의견을 냈었다.

두 대법관은 "청구권협정에 따라 원고들 권리행사가 제한된다고 봐야 한다"며 "원고들은 신일본제철 상대 소송으로 권리행사를 할 수 없으며 한국이 지금이라도 원고들과 같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정당한 보상을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날 1심 재판부도 대법원 전원합의체 반대의견의 논리를 따랐다. 

재판부는 "한일 청구권협정과 그에 관한 양해문서 등의 문언, 협정 체결 경위나 체결 당시 추단되는 당사자의 의사, 후속 조치 등을 고려하면 이 사건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은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청구권협정 제2조는 대한민국 국민과 일본 국민의 상대방 국가, 그 국민에 대한 청구권까지 대상으로 하고 있음이 분명하다"며 "청구권협정을 국민 개인의 청구권과 관계없이 양 체약국이 서로에 대한 외교적 보호권만을 포기하는 내용의 조약이라고 해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민사34부는 지난 3월 고(故) 배춘희 할머니 등 12명이 일본에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승소 사건에 대한 소송구조 추심 결정에서 "국가가 소송구조결정에 의해 원고에게 납입을 유예하도록 한 소송비용 중 일본으로부터 추심할 수 있는 소송비용은 없다는 점을 확인한다"고 판단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법원 안팎 "대법 전합 판결문 잉크도 안 말랐는데"

법원 안팎에서는 이번 판결에 매우 놀라는 모양새다. A부장판사는 "판결에 동의하는지 여부를 떠나 용기가 대단하다"며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반대되는 판결을 내린 것에 놀라움을 표했다. 

B부장판사는 "우리 법원 내부에서 난리가 났는데 대법원도 난리가 났을 것"이라며 "대법 판결을 이렇게 정면으로 들이받을 줄 몰랐을 것"이라고 했다. 

A부장판사는 "법적 안정성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대법 판결이 법이 아니고 재판부가 전합 판결에 기속되는 사건이 아니긴 하지만 최근 정리가 된 사안이라 결국 대법원에 가면 파기될 가능성이 높다"며 "그런데도 대법 전원합의체 판결을 1심이 깼으니 무용하고 비효율적 절차를 유발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B부장판사도 "2심에서 파기될 가능성이 높다"면서도 "2심에서 1심이 맞고 대법 전원합의체 결론이 이상하다고 판결하면 문제가 달라지기 때문에 2심 재판부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부장판사 출신으로 대형 로펌에 근무하는 C변호사는 "최소 10년이 지나야 (전합 판결을) 치받는데 판결문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이런 일이 일어났으니 굉장히 이례적"이라고 지적했다. 

◇일본기업 자산 집행·한일관계에도 파장일듯

이번 판결이 대법원 전원합의체 승소 판결을 받은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권리행사에 법리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대법 전원합의체가 판결한 사건과 이번 사건이 강제징용 피해자가 일본 기업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이라는 점에서는 같지만 별개 사건으로 진행됐기 때문이다.

대구지법 포항지원은 지난 5월 일본제철의 한국 내 자산인 피앤알(PNR) 주식 매각 명령을 앞두고 감정을 진행했다. 미쓰비시 측은 대전지법이 공시송달한 국내 자산 압류명령 결정문의 효력이 발생한 지난해 12월 30일과 31일 즉시항고장을 제출했지만 민사항소1부(나경선 부장판사)가 지난 2월 항고를 기각했다. 울산지법에는 후지코시 보유 주식회사 대성나찌유압공업 주식 7만6500주(액면가 1만원 기준 7억6500만원)가 압류돼 있다. 

그러나 이번 판결로 집행절차를 승인해주는 법원 입장에서는 적지 않은 부담을 느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재경지법의 D 판사는 "앞선 강제징용 사건은 대법원 확정 판결로 집행만 남은 상황이라 논리적으로 집행에 지장이 없을 것 같다"면서도 "법원 입장에서는 이번 1심 판결로 실제 집행에서 한층 더 부담을 느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한일관계에 미치는 영향도 상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C 변호사는 "일본은 '한국 법원도 손해배상이 부당하다고 판결했다'며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법원 판결을 활용할 것"이라며 "정부 입장에서는 법원에 뒤통수를 맞은 격이니 한일 관계의 파장도 상당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성지 기자 ksjok@korearepo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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