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금지법제정연대, 10만행동 국민동의청원 선포 기자회견
동아제약 채용 성차별 피해자 직접 청원···"국회는 응답해야"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주최로 24일 열린 '차별금지법 10만행동 국민동의청원 선포' 기자회견.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주최로 24일 열린 '차별금지법 10만행동 국민동의청원 선포' 기자회견.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편집자주] 우리는 불확실성이 극대화된 시대를 살아가고 있으며, 탈산업 사회와 디지털 자본주의가 강화시키는 불평등은 고착화되가고 있는 상황이다. 그동안 국가와 시장이 개인과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주역으로 충분한 역할을 해왔으나 불확실성이 일반화되면서 점차 문제해결에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강한 공동체와 시민사회 영역이 국가와 시장으로 기울어졌던 사회의 균형을 회복시킨다고 말한다. 동시에 국가 뒤에서 소극적 위치에 머물렀던 시민권력과 시민사회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현시대의 문제를 해결해가며 더 나은 세상을 열어가기 위해서는 적극적 시민과 역동적 시민사회가 요구된다. 기획 <시민, 세상을 바꾸다> 는 그러한 개인과 시민사회를 주체로 세우는 작업이다.

 

국내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지속적인 활동과 요구에도 불구하고 15년 동안 잠들어 있는 법안이 있다. 바로 ‘차별금지법’이다.  

한국의 차별금지법은 2006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제정 권고로 그 모습을 처음 드러냈다. 차별금지법은 △고용 △교육 △재화·용역 △행정이라는 네 가지 사회 영역에서 발생하는 차별을 예방하고 시정한다. 

헌법상 평등권은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영역에 걸친 기본권인데, 이 중 가장 중요한 공공성을 지닌 네 영역에서만큼은 국가가 법률로 차별을 시정하고 평등을 실현해나가겠다고 약속하는 것이다.

하지만 ‘차별’ 시정과 예방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법률의 제정은 15년 동안 정당한 이유 없이 보류됐다.

이제 모두의 존엄과 평등을 위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국민동의가 본격화됐다. 

◇ 차별금지법 제정 위한 '10만행동 국민동의청원' 선포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24일 오후 서울 여성미래센터에서 ‘차별금지법 제정하자! 10만 행동’ 국민동의청원을 선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차별금지법은 성별, 장애, 성적지향 등 23개 항목으로 인한 고용과 행정서비스 등의 영역에서 차별 받지 않도록 규정하는 법이다. 
국회는 2007년, 2010년, 2012년, 2020년 네 차례에 걸쳐 차별금지법 입법을 시도했으나 번번이 무산됐다.

이번 국민동의 청원은 지난해 11월 동아제약 하반기 신입사원 채용 성차별 면접 피해 당사자 A씨가 시작했다. 

A씨는 지난해 11월 동아제약 하반기 신입사원 채용 면접에서 성차별적인 질문을 받는 등 부당한 대우를 당했다. A씨는 이 피해 사실을 인터넷을 통해 공론화하며 공분을 샀고, 결국 동아제약사 대표의 사과를 받아낸 바 있다.

A씨는 법률대리인인 김두나 변호사가 대독한 국민동의청원에서 “나는 대부분의 인생을 이성애자 비장애인이자 정규직이라는 기득권으로 살아왔지만, 면접에서 나의 성별을 이유로 힘없이 바스라지는 경험을 했다”며 “모든 권력은 상태적이기에 나 또한 언제든 약자, 즉 배척과 혐오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A씨는 “차별금지법 논의가 시작될 때마다 국회는 늘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되풀이한다. 이는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 실시 국민인식조사다. 그 외 여론조사를 살펴보면 틀렸다는걸 알 수 있다”며 “차별금지법에 대한 국민 인식은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다. 국민이 국회인식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국회가 국민인식을 따라오지 ‘않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한희 변호사(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대표)는 “차별이 해소되기 위해서는 개인이 자신이 겪은 무수한 차별경험을 온전히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며 “그러나 포괄적 차별금지법 없이는 개인이 불이익을 당해도 구제받기가 어려워 호소 자체를 포기하게 되는 게 현실”이라며 차별금지법 제정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빅 변호사는 “남녀고용평등법 등 개별적 차별금지법은 그 사유가 한정돼 있고 국가인권위원회법은 포괄적 차별금지 사유를 갖고 있지만 강제성이 없어 차별을 말하지 못하고 결국 소송을 포기한다”며 “차별금지법 제정을 통해 포괄적으로 차별금지 사유를 규정하고, 효과적인 구제수단을 제공하고, 입증 책임의 전환 등 소송에 있어서 필요한 조치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하영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공동대표는 “대한민국은 OECD 국가 중 성별임금격차 부동의 1위 국이다. 텔레그램 n번방 사건 등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고 착취하는 범죄가 잇따르고 있다”며 “차별금지법은 인권을 말하기 위한 최소한의 합의다”라고 주장했다. 

박정은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93%가 차별금지법 제정에 동의했다”면서 “차별금지법은 소수자 인권만 다루는 게 아니다. 그걸 넘어서는 차별금지법에 압도적인 찬성 여론이 있는데도 국회가 움직이지 않고 있는 건 문제"라고 비판했다.

박희은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인간답게 살 권리, 행복할 권리 차별받지 않을 권리는 동의의 문제가 아니다. 차별은 노동의 문제이기도 하다”며 “계속되는 노동자들 죽음을 들여다보면 고용형태에서 차별이 시작되고 있다. 비정규직은 안전하게 일할 권리조차 없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안전한 일터와 성평등한 조직 문화, 기본적 노동권을 보장받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종걸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대표는 “‘차별의 시대를 끝내고 평등의 시대를 열자’는 촛불정신을 계승하겠다고 자임한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4년이 지났고, 21대 국회가 개원한 지 1년이 지났다. 하지만 차별금지법에 대한 책임있는 논의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며 “거대 여당 더불어민주당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혐오와 차별의 심각성을 모르기 때문인가”라고 반문 한 뒤 “참여정부에서 차별금지법의 여정, 이제는 제정하고 평등을 향해 한 발 내딛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종걸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대표는 촛불정신을 계승하겠다고 자임한 현 정부가 출범한지 4년이 지났는데도 차별금지법에 대한 책임있는 논의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종걸 공동대표는 “수많은 시민들의 평등에 대한 열망을 모아 ‘10만 행동’으로 이어지게 하고 그 힘으로 차별금지법이 제정될 수 있도록 국회를 움직이게 하려고 한다”며 “‘10만 행동’은 더불어민주당, 21대 국회만 움직이게 하는 게 아니라 평등의 초석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국민청원은 다음달 23일까지 진행된다. 등록한 청원이 30일 이내에 10만 명의 동의를 받으면 국회 소관위원회로 회부돼 청원 심사가 이뤄지게 된다. 

오동윤 기자 ohdy@korearepo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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