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개 지자체 '특별 인연' '문화 발전' 등 내세워 유치 나서
유족, 국립현대미술관, 국립중앙박물관 '컬렉션 전시실' 선호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이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현대에서 열린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기증품' 관련 기자회견에서 이중섭의 '황소'를 소개하고 있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이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현대에서 열린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기증품' 관련 기자회견에서 이중섭의 '황소'를 소개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삼성은 이 회장의 국보급 소장 미술품 2만3000점을 국가에 기증하겠다고 발표한 이후 문재인 대통령이 이른바 '이건희 미술관' 건립을 언급하면서 전국 지자체마다 유치전이 전개되고 있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지난 2일 가장 먼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건희 미술관, 부산에 오면 빛나는 명소가 됩니다’라는 글을 올려 유치 의사를 내비쳤다. 박 시장은 이 글에서 수도권의 삼성 리움 미술관, 호암미술관을 거론하며, 고인의 유지를 살리려면 수도권이 아닌 남부권에 짓는 게 온당하다고 주장했다. 

다른 지자체들도 이런저런 '인연'을 내세워 유치 경쟁에 뛰어든 상황이다. 고인의 선친이자 삼성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이 태어난 경남 의령군과 이병철 회장이 유년시절을 보낸 진주시는 고인과의 특별한 인연을 강조하며 유치전에 뛰어들었다. 의령군은 이병철 회장의 생가가 정곡면에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이건희 회장도 어린 시절 이곳에 살며 할머니 손에서 자란 것으로 알려졌다. 진주시는 선친이 유년시절 다녔던 지수초등학교가 있어 이 회장과도 인연이 깊은 곳이라며 영호남의 중간에 위치한 지리적 이점을 강조했다.

 대구시도 고인의 출생지이자 삼성그룹의 모태라는 점을 들어 미술관 건립 의사를 밝혔다. 대구시는 “(대구시가) 서울, 평양과 더불어 한국 근대미술 3대 거점으로 기능해왔다”고 강조했다. 수원시는 삼성전자 본사와 이건희 회장 묘소가 자리한다며 미술관 유치를 위한 내부 검토에 들어갔다. 지난 4일 염태영 시장 주재로 열린 비공개회의에선 참석자들이 정부의 움직임과 지역 여론을 공유했다. 

이 밖에 이춘희 세종시장은 최근 황 장관을 만나 유치 의사를 건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국립현대미술관 창원관 유치를 희망해온 창원시도 대열에 합류했다.

◇지자체 '특별 인연' 내세워 유치 경쟁…유족 뜻도 중요

이후 미술관 건립을 둘러싸고 곳곳에서 예측이 난무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미술계 인사 100여명은 이 회장 기증품을 기반으로 국립근대미술관 건립 추진 주비위원회를 결성하고 독자적으로 건립 준비에 나섰다.

그런데 이건희 미술관 유치 경쟁 속에서 정작 중요한 유족의 뜻은 빠져 있다. 삼성가는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에 꼭 있어야 할 소장품을 신중하게 골라 각각 문화재와 고미술품 9797건(2만1600여점), 한국·서양 근현대미술품 226건(1488점)을 기증했다. 

'이건희 컬렉션' 중 고미술품은 △도자기 2938건(3596점) △금속 484건(2122점) △서화 783건(1500점) △전적 4176건(1만2558점) △목제 389건(407점) △석제 458건(834점) △토제 400건(451점) △민속 169건(225점) 등이다. 

이 가운데 국가지정문화재는 △도자기 8점(국보 2, 보물 6) △금속 16점(국보 6, 보물 10) △서화 5점(국보 1, 보물 4) △전적 31점(국보 5, 보물 26)이다. 

이 중 국보 제216호 정선 필 '인왕제색도'는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고 이건희 회장의 소장품 가운데 가장 눈에 띤다. '인왕제색도'는 1751년 당시 75세였던 겸재 정선이 비가 내린 뒤의 인왕산을 그린 진경산후화다.

보물 제2015호 '고려 천수관음보살도'는 관음보살의 자비를 1000개의 손과 손마다 눈으로 상징화한 고려시대 불화다. 이 불화는 오랜 세월로 인해 변색됐지만 화려한 색감과 섬세한 필력을 통해 매우 우수한 조형감각을 보여주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된 ‘이건희 컬렉션’ 총 1488점은 한국 근현대미술 작가 238명의 작품 1369점, 외국 근대작가 8명의 작품 119점이다. 회화 412점, 판화 371점, 한국화 296점, 드로잉 161점, 공예 136점, 조각 104점 순이다.

국내 작가별로는 유영국 187점(회화 20점, 판화 167점)으로 가장 많다. 이중섭의 작품이 104점(회화 19점, 엽서화 43점, 은지화 27점 포함), 유강열 68점, 장욱진 60점, 이응노 56점, 박수근 33점, 변관식 25점, 권진규 24점 순이다.

특히  '이건희 컬렉션'에는 이중섭의 '흰 소'(1953~54), 청전 이상범의 '무릉도원도'(1922) 등 행방이 묘연했던 작품들이 포함돼 있다. 또한 근대미술 희귀작으로 나혜석 작품 진위평가의 기준이 되는 '화녕전작약'(1930년대), 이중섭의 스승이기도 했던 여성 화가 백남순의 유일한 1930년대 작품 '낙원'(1937), 총 4점만 전해지는 김종태의 유화 중 1점인 '사내아이'(1929) 등이 있다.

해외 거장 작품으로는 모네, 고갱, 피카소, 호안 미로, 살바도르 달리, 마르크 샤갈 등의 작품이 있다. 특히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1919년작)과 르누아르의 '책 읽는 여인'(1890년대작) 등은 희귀 소장품으로 평가받는다. 

이건희 회장 유족은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에 '이건희 컬렉션 전시실'이 생기길 바랄 뿐, 이미 기증한 미술품을 모두 회수해 소장하는 이건희 미술관 건립을 원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이건희 컬렉션'의 작품들이 미술관 유치 경쟁을 벌이고 있는 지자체로 분산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박물관 전공자이자 미술평론가인 한 교수는 "이른바 '이건희 컬렉션'으로 불리는 작품들은 미술사적으로 국내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의미가 있는데 지자체로 분산될 경우 종합적인 관람과 연구가 어렵게 된다"며 "작품 전체는 국립현대미술관이나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 전시하되 필요할 경우 각 지자체별로 순회 전시를 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박소연 기자 psy@korearepo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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