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리번 보좌관, 역대 美정부와 다른 '실용적·외교적 접근' 기조 재확인
적대정책 철회 요구한 北에 새 제안은 안내놔…협상 재개까지 험로 예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출범 초와는 180도 바뀐 모양새다. 북한에 대한 강력한 압박 대신 '외교'를 우선하는, 심지어 북한의 입장까지 헤아릴 정도로 물러서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서다.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 전후 보여준 대북 강경 입장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북한이 미사일 발사와 말폭탄을 던진 상황에서도 '대화(외교)'로 문제를 풀어가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바이든 정부 출범 초 대북정책 '압박'에 비중 실려

바이든 정부가 출범하던 1월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대북정책의 윤곽을 내비쳤다. 사키 대변이은 1월22일(현지시간) 언론 브리핑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북한의 핵과 탄도미사일, 다른 확산 관련 활동이 세계 평화와 안전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글로벌 비확산 체제를 훼손한다고 보고 있다는 점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며 “우리는 미국인들과 동맹국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새로운 (대북) 전략을 채택할 것”고 말했다.

미국이 대북정책으로 언급한 '새로운 전략'에 대해 사키 대변인은 “현재 진행 중인 대북 압박과 미래 외교 가능성 등에 대한 한국과 일본, 다른 동맹들과 긴밀한 협의 속에 북한의 현 상황에 대한 철저한 정책 검토로 시작된다”고 했다. 다시말해 북한에 대해 '압박'과 '외교'적 접근을 병행하겠다는 의미다.  

당시 블링컨 국무장관은 역대 정부의 대북 정책이 개선되지 않고 더 악화됐다고 언급하며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나오도록 압력을 가하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어떤 외교적 이니셔티브가 가능한지 살펴보겠다"고 밝혔다.

바이든 정부가 북한에 대해 압박과 외교를 병행하겠다는 전략에 대해 국내외 전문가들은 '압박'에 무게를 뒀다. 바이든 대통령이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TV토론 등에서 북미회담의 성과를 부정하고,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를  '폭력배(thug)'라고 지칭하는 등 대북 강성 입장을 보였기 때문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김 총비서와 정상회담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진 않았지만 "핵 감축 사전 합의"를 정상회담의 전제 조건으로 내걸 정도로 북핵 문제에 완고한 태도를 보였다.

이는 바이든 대통령이 미 상원 외교위원장과 오바마 행정부 시절 부통령을 지내면서 북한 문제를 다뤄온 것과 무관하지 않다. 바이든 대통령이 외교·국방 참모진을 자신과 함께 북한을 다뤄왔던 인물로 구성하고 그들이 대북 강경 성향을 보인 것도 미국과 부관 관계가 순탄치 않을 것으로 예상됐다.

◇ 北의 반발에 美 대북정책 "적대 아닌 해결 목표" 물러서

바이든 정부가 출범한지 100일만인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밝힌 대북정책은 외교를 중심에 두고 지속해서 북한에 관여하겠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출범 초 '압박'과 '외교'를 병행하겠다는 입장에서 '외교'를 중심으로 하는 완화된 대북 전략이 수립된 것이다.

사키 대변인은 북핵 문제에 대해 "일괄타결 달성에 초점을 두지 않을 것이며, 전략적 인내에 의존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혀 도널드 트럼프 전 정부와 버락 오바마 전 정부의 대북 정책을 거부한 것으로 평가됐다. 

북핵 문제에 대한 트럼프 정부의 '일괄타결'이나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는 사실상 북한을 '압박'하는 전략이다. 바이든 정부가 앞선 두 정부의 북핵 정책을 거부한 것은 '대화'로 문제를 풀어가겠다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북한은 이러한 바이든 정부의 매우 완화된 대북정책에도 불구하고 "(대북)적대전략을 바꾸지 않았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권정근 북한 외무성 미국 담당 국장은 2일 담화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첫 의회 연설을 언급하며 "미국의 새로운 대조선정책의 근간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 선명해진 이상 우리는 부득불 그에 상응한 조치들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며 시간이 흐를수록 미국은 매우 심각한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권 국장은 "미국이 아직도 냉전시대의 시각과 관점에서 시대적으로 낡고 뒤떨어진 정책을 만지작거리며 조미(북미)관계를 다루려 한다면 가까운 장래에 점점 더 감당하기 어려운 위기를 겪게 될 것"이라며 "확실히 미국 집권자는 지금 시점에서 대단히 큰 실수를 했다"고 말했다.

북한의 대미 강경 대응에 바이든 정부는 크게 물러섰다. 미국은 2일(현지시간) 바이든 대통령의 대북 정책 기조를 문제삼은 북한의 반발에 대해 적대가 아닌 해결을 목표로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또 과거 미 행정부의 대북정책 노선에서 탈피해 실용적 접근을 통한 외교적 해법을 모색하겠다는 방향을 재확인했지만, 새 제안을 내놓는 대신 북한의 호응을 주문하는 쪽에 방점을 뒀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이날 미 ABC방송 인터뷰에서 "우리의 대북 정책은 적대를 목표로 한 것이 아니다"라며 "이는 해결을 목표로 한 것이고,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궁극적으로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첫 의회 연설에서 북한을 '심각한 위협'으로 규정한 데 대해 권정근 북한 외무성 미국 담당 국장이 한국 시간 2일 담화를 내고 "대단히 큰 실수", "실언"이라며 "심각한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 데 대한 반응이다.

북한은 같은 날 외무성 대변인 담화 형태로 최근 미 국무부 대변인의 북한 인권 상황을 비판하는 성명에 두고서도 "대조선 적대시정책의 집중적인 표현"이라며 "최고존엄까지 건드리는 엄중한 정치적 도발을 했다"고 강력 반발했다.

설리번 보좌관은 이날 새 대북 정책이 '전부 또는 전무'(all for all, or nothing for nothing) 방식이 아니라 조정되고 실용적인 접근법이라고 언급하며 과거 정부와 다른 접근법을 취하겠다는 기조 역시 재확인했다.

설리번 보좌관은 또 "우리는 외교에 관여할 준비가 돼 있다"며 북한과 대화 의지를 강조했지만 북한의 관심을 끌 만한 새로운 제안이나 유인책을 제시하진 않았다.

이는 북한에 제재 완화 등 당근을 먼저 내놓는 방식으로 대화의 장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조건 없이 협상 테이블을 꾸려 양측이 일단 만나는 것이 수순이라는 미 행정부의 인식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미국은 바이든 대통령이 공약한 이란 핵합의 복귀 협상도 비슷한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바이든 취임 초기 미국은 이란의 핵합의 준수, 이란은 제재 완화를 선결조건으로 요구하며 기 싸움을 벌이다 결국 핵합의 당사국이 꾸린 협상 틀을 통해 양국이 간접대화를 하는 방식으로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이런 기류에는 미국이 북한에 제재 완화같은 유화책을 먼저 제시하는 데 대한 미국 내 조야의 부정적 인식이 매우 강한데다 설령 당근을 내놓더라도 북한이 쉽사리 대화에 응하지 않을 공산이 크다는 상황 판단의 결과라는 시각도 있다.

미 고위 당국자는 지난달 30일 워싱턴포스트에 "우리가 고려하는 것이 북한의 도발을 방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인식을 내비치며 기존의 대북 제재 압박을 유지할 것이라는 입장을 취했다.

결국 적대정책 철회와 '강대강, 선대선' 원칙을 제시한 북한과, 조건 없이 대화 테이블로 나오라고 주문하는 미국 간 치열한 기 싸움과 줄다리기 속에 미국이 한발 물러선 모양새다.

이는 설리번 보좌관이 "우리는 그 목표(비핵화)를 향한 길에서 진전하는 것을 도울 수 있는 실용적 조처에 노력할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한 데서도 읽혀진다.

백민일 기자 bmi21@koreareport.co.kr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코리아리포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