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꽉 막힌 남북관계 풀려면 신뢰회복이 우선…민간단체가 역할해야"
"정부·민간 역할 구분하되 소통, 협력해야…北 수용 가능한 일부터"

이기범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 회장·어린이어깨동무 이사장 Ⓒ북민협
이기범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 회장·어린이어깨동무 이사장 Ⓒ북민협

4·27 판문점 선언 3주년 기념식이 27일 오전 경의선 남북출입사무소 북단 DMZ 통문 앞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이인영 통일부 장관을 비롯해 기념식을 주최한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한국종교인평화회의,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등 민간단체 주요 인사들이 참석했다.  

민간단체들은 호소문을 발표해 2018년의 평화를 만들어낸 의지와 공감이 무엇이었는지를 성찰하고 그것을 새로운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가운데 민간단체 중 대북지원에 가장 앞서고 있고, 실질적인 성과로 남북협력의 주춧돌 역할을 해온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북민협) 이기범 회장의 감회는 남달랐다. 남북이 좀처럼 대화 창구를 찾지 못하면서 대북지원이 막혁있고, 특히 어린이어깨동무 이사장으로서 북한 어린이와 병원 시설 지원이 어렵게 된 것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이 회장은 1996년 어깨동무 창립에 참여해 사무총장과 상임이사를 지냈고 '공동육아와 공동체교육' 공동대표를 역임한 후 2016년 6월부터 (사)어린이어깨동무 이사장을 맡고 있다.

또한 1999년 창립해 현재 56개 시민단체가 참여하고 있는 북민협을 2018년 1월 회장에 취임해 이끌고 있다.  

남북관계 경색이 지속되고 코로나19 상황으로 남북 접촉이 불가능에 가까운 상황에 어떤 해법이 바람직한지 기념식 현장과 전화 인터뷰를 통해 이기범 회장의 견해를 들어봤다.

27일 4·27 판문점 선언 3주년 기념식이 열린 경의선 남북출입사무소 북단 DMZ 통문 앞에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한국종교인평화회의,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등 민간단체 주요 인사들이 참석했다. Ⓒ통일부 
27일 4·27 판문점 선언 3주년 기념식이 열린 경의선 남북출입사무소 북단 DMZ 통문 앞에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한국종교인평화회의,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등 민간단체 주요 인사들이 참석했다. Ⓒ통일부 

-2019년 ‘하노이 노딜’ 이후 남북관계 경색이 지속되고 있다. 어떻게 풀어가야 한다고 보나 
“남북이 경색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신뢰를 회복하는 게 시급하다. 북한이 남한과의 대화를 단절하고 비난 공세를 계속하는 이면에는 현 정부에 대한 ‘불신’ 때문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정부가 직접 나설 경우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으므로 민간단체가 주축이 돼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게 현실적이다. 정부가 직접 나서면 국내외 제약으로 어려운 것도 민간단체의 역할을 요구하게 된다. 북한에 가장 필요한 것을 국제 제재에 해당되지 않으면서 그들의 자존심도 지켜주는 방식으로 하려면 민간단체가 최적이다.”

-남북관계 변화를 위해 우리 측에서 역점을 둬야할 부분이 있다면. 
“국면 전환을 위한 사회적 동력을 획득해야 한다. 현 정부는 이전 정부에 비해 전향적인 정책을 표방하고 있다고 하지만, 남북관계에 관해서는 여전히 정부 주도의 관성에 머물러 있다는 평가가 있다. 현 정부의 임기 만료가 다가오더라도 시민들의 지지가 확대되면 북과 대화할 수 있는 동력이 생긴다. 통일에 관한 담론은 잠시 접어두고 통일의 필요조건인 ‘평화상생’에 관한 사회적 공감대를 이루어야 한다. 많은 지자체에서 북과의 협력에 열의를 보이는데 그 이유는 협력이 성장동력을 확대하는 실질적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반면 시민들, 특히 젊은세대는 통일 이야기만 나와도 짜증을 낸다. 그러니 남북관계 개선을 향한 담론은 통일 대신 경제 발전과 삶의 질 개선에 집중하여 그 토양을 다져야 한다”

―미국의 바이든 정부가 들어섰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 ‘인도적 지원은 할 수 있다’고 했다.
“바이든 정부의 대북정책이 아직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인도적 지원’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으나 단순히 굶주림을 면할 정도의 식량을 긴급구호 차원에서 주는 것은 인도주의가 아니다. 인간의 존엄성 인정이란 전제 아래에서 그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인류적 책임으로 인도주의를 적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국 정부는 비핵화 협상과 더불어 코로나 비상시기에서 북한 주민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도록 이들의 요구를 파악해야 한다고 본다.”

―바이든 정부가 인권을 강조하는데, 대북정책이 강성으로 나올 가능성도 있다.
“인권의 기본은 자기 힘으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역량을 갖는 것이다. 우리가 북측 인권을 우려할 때 주로 정치권, 시민권만을 이야기하는데 경제적 권리, 사회적 권리, 문화적 권리도 포함된다. 바이든 정부가 북측의 인권을 강조할 때 정치권·자유권에 국한하거나 비핵화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려는 방편으로 쓰는 것은 인권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 바이든 정부의 인권 중시를 환영하면서 평화, 인도주의, 개발협력을 병행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우리는 막힌 남북관계를 뚫기 위해 보건협력 등을 제시했지만 북한은 올 초 제8차 노동당 대회에서 이런 게 비본질적이라고 거절했다
“앞서 남북 간 신뢰 회복을 얘기했는데 북한은 현 정부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 여긴다. 2018년 남북 정상 합의 중 가장 중요한 것이 군사 긴장 완화인데, 우리 국방예산이 매년 큰 액수로 늘어났고 첨단 무기를 계속 수입하고 있다. 북한은 이를 위협으로 인식할 수 있고, 배신감 때문인지 우리 정부를 거듭 비난하고 있다. 물론 작전권 이양 등의 배경이 있다고 해도 긴장을 완화할 수 있는 조치가 이루어져야 다음 단계의 개선을 기대할 수 있다.”

-남북관계 개선과 협력을 보장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도 중요한데.
“그렇다. 남북관계의 법제도화는 국내 합의기반 구축, 남북 간 합의, 국제적 보장을 촉진한다. 문재인 정부는 남북관계의 법제도화를 국정과제의 하나로 제시했으나 현재까지 별 진전이 없다.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은 다시 개정돼야 하고, ‘인도지원개발협력에 관한 특별법’도 속히 제정돼야 한다. 북민협이 만든 법안과 정부 법안이 발의된 상태이고 여러 국회의원들에게 그 필요성을 설명하고 있지만 여야의 대립 때문에 언제 입법될 지 요원하다.  ‘남북기본합의서’를 기초로 남북관계의 모법(母法)을 제정하고, ‘통일국민협약’, ‘남북기본협정’, ‘평화협정’ 등을 법제화하려는 사회적 공론을 증진해야 한다.”

-대북전단 살포 문제가 국내는 물론, 국제사회에서도 이슈가 됐다. 시민단체의 역할이 있다면. 
“대북전단 살포는 궁극적인 남북관계의 미래를 위해 자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대북전단 살포 금지법’이 해외에서 일부 곡해되면서 미국 정부와 충돌하는 모습으로 비춰졌다. 이런 일을 국제사회에 균형 있게 설명하는 데 시민단체가 나서야 한다. 시민사회는 미국과 중국 등의 국제사회와 북 당국 그리고 우리 시민들에게 평화와 협력의 필요성을 설명하는 일에 더 주력해야 한다. 가령 범시민단체들이 전 세계 1억 명 서명을 목표로 펼치는 ‘한반도 종전 평화 캠페인’에 더 힘을 모아야 한다. 북 당국에도 우리 시민사회의 평화와 협력 의지를 전달하는 일을 계속해야 한다.”

-남북관계에서 북민협의 역할과 정부에 제언할 것이 있다면. 
“남북관계는 정부와 민간이라는 남북협력의 두 바퀴가 함께 돌아가야 바람직한 성과를 낼 수 있다. 정부가 남북협력에서 우월자 지위에서, 전면적으로 나서면 일이 성사되기 어렵다는 것은 여러차례 증명됐다. 또 그렇게 되면 시민사회가 남북관계에 개입할 수 있는 공간이 좁아진다.
따라서 북민협은 정부 내 거버넌스와 민관 거버넌스가 소통, 협의, 역할분담 등을 하는데 일정 역할을 할 계획이다. 또한 민관 거버넌스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정부의 의지도 있어야 하지만 민간의 대표성이 있고 건전성이 있어야 하는 만큼 이 부분에도 주력할 생각이다.

김태훈 기자 thk@korearepo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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